
연극이나 전시면 모를까 영화를 보고 와서는 뭐를 잘 안 적는데, 이번에 본 영화 [인셉션(Inception)]은 너무나도 충격이라 한 마디 안 적을 수 없다. [인셉션]을 보고 난 후 깨달았다.
‘아! 내가 늘 꿈꾸고, 만들고, 창조해내고 싶던 이야기가 저런 것이었구나!’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다. 나도 어서 빨리 나의 회심의 역작 [땅전(Land War)]을 완성시켜야겠다.
조만간 닥칠 미래에는 사람의 꿈속에서 작업을 하는 직업이 있다. ‘추출자’라는 용어를 쓰던데 조만간 등장할 직업이니까 다들 잘 기억해뒀다가 대학교에 추출공학과나 추출심리학과가 생기면 바로 입학해야 한다. 미래 유망 직종이다.
추출자도 그 역할에 따라 여러 분야가 있는데, 그 중에서 특히 괜찮은 분야가 ‘설계자’다. 꿈속 세상을 창조해내는 사람으로 현재는 건축공학과나 토목공학과 출신이 유리할 것 같다. 조만간 닥칠 미래야 과도기니까 건축공학과나 토목공학과 출신이 쓰이지 조금만 있으면 바로 추출건축공학과나 추출토목공학과가 생길 테니까 그 때는 이 과에 바로 입학해야 한다. 추출 분야 중에서도 꽃이라 할 수 있다.
추출자들의 작업단계는 이렇다.
1. ‘대상자’의 성향을 파악한다.
2. ‘설계자’가 대상자의 성향과 추출 대상물에 맞춰 꿈속 공간을 창조한다.
3. ‘추출자’들이 설계자의 꿈속 공간에 함께 들어가서 꿈속 공간을 공유한다.
4. 누구의 꿈에 들어갈 건지 선택한다. 공유됐기 때문에 누구의 꿈이라도 상관없다.
5. 현실에서 대상자와 추출자들이 함께 잘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한다.
6. 수면제를 이용해서 대상자를 깊은 잠에 빠뜨린다.
7. 꿈을 공유할 수 있는 기계를 대상자와 추출자들의 팔에 붙인다.
8. 기계에 타이머(Timer)가 있어 그 시간에 맞춰 잠에서 깨어난다.
정말 멋진 생각이지 않은가? 배우의 연기력, 감독의 연출력, 영화의 완성도 등을 따지기 전에 나는 이미 이 황홀한 소재에 매료돼있었다. 여기에 배우의 연기력과 감독의 연출력과 영화의 완성도까지 뒷받침됐으니 정말 근래에 본 내 인생 최고의 영화다.
이까지는 이해가 다 됐을 테니, 이제 영화 [인셉션]이 창조해낸 직업의 한 단계 더 깊은 논리 속으로 들어가 보자. 예로써 영화 내용을 약간 언급할 수밖에 없으니 이해해주세요. 혹시 이런 걸 극도로 싫어하시는 분께서는 이쯤에서 글읽기를 그만두시기 바랍니다.
첫 번째, 꿈속에서 죽으면 현실로 돌아온다. 우리는 보통 꿈인지 생시인가 알아보기 위해 뺨을 꼬집어보지만, [인셉션]에서는 잠이 와서 든 잠이 아니라 약물을 이용해서 잠들었기 때문에 그 정도로는 깰 수 없다. 그래서 무조건 죽어야 된다. 죽지 않으면 타이머에 의해 깰 수밖에 없다. 그리고 죽지 않는 이상 고통은 그대로 느껴진다. 꿈속에서 아픈 것이 실제로 깨고 나면 하나도 안 아프지만 꿈속에서는 계속 아픈 것과 같은 원리다. 꿈속에 있는 동안 계속 고통스러운 거다.
그런데 꿈속의 꿈속의 꿈속까지 들어가야 하는 상황에 사용되는 아주 강력한 수면제의 경우, 꿈속에서 죽으면 깨긴 깨되 그 사람의 의식은 여전히 꿈속에 남아있게 된다. 몸은 현실에 있되 생각은 현실에 있지 않은 거다. 그 사람은 의식은 영원히 꿈속에 있게 되는 거다. 이 상태가 림보(Limbo)인데, 림보의 정의는 아래와 같다.
[ 림보(Limbo,고성소,古聖所) : 가톨릭 신학에서 이미 죽은 사람들이 지복직관(至福直觀)에 완전히 들지는 못하였지만 벌을 받고 있지는 않은 상태에서 머무르는 곳을 말한다. 거품 또는 경계(境界)처럼 무엇인가 주변에 덧붙여지는 것을 의미하는 튜튼족의 말 림보 (limbo)에서 유래한다. 고성소는 두 종류로 나누어진다. 그리스도가 강생하여 이 세상을 구할 때까지 구약의 조상들이 기다리던 곳과 명오(明悟)가 열리지 않은 상태에서 세례를 받지 못하고 죽은 어린이들이 머무르는 곳이다. 메시아를 기다리던 구약의 조상들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받았다고 보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
그러나 세례를 받지 않고 죽은 어린이의 경우, 이들이 이성(理性)을 사용하여 죄를 지은 일이 없지만, 세례를 통한 은총을 받지 못했으므로 완전한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물과 성령으로 새로 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요한의 복음서 기록대로, 세례를 통한 은총은 다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세례받지 못하고 죽은 어린이들이 머무르는 상태나 장소로서의 고성소라는 개념은 성서에도 교부들의 저작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고성소라고 번역된 라틴어 ‘inferi, inferna’는 문자 그대로 ‘지옥, 저승, 명부, 사계(死界)’라는 의미로 히브리어의 ‘셰올(Sheol)’이나 그리스어의 ‘하데스(Hades)’를 뜻한다. 이 용어는 원래 죽음을 넘어선 경지를 표현한 것이다. 언제부터 이 용어가 내세의 영혼 상태를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분명한 사실은 토마스 아퀴나스 이후 이 용어가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토마스 아퀴나스와 스콜라 신학자들은 세례를 받지 못하고 죽은 어린이들이 천국 본향(本鄕)에 가지 못한 실향의 아픔과 슬픔을 겪을 뿐 자연 상태에서는 최고로 행복한 경지에 머무른다고 보았다.
가톨릭 교회에서 고성소의 존재에 대하여 명확히 정의를 내린 적은 없다. 아직까지도 뚜렷한 해결이 신학상 문제로 남아 있는 상태이다. 1958년 교황청의 권고(AAS 50)는 신중한 태도를 잘 드러내고 있는데, 불확실한 구원을 고려해 어린이에게도 되도록 빨리 세례를 베풀라고 권면하고 있다. - 네이버(Naver) - ]
두 번째, 보통 타이머를 이용해서 꿈에서 깨지만 위급한 상황이라면 ‘킥(Kick)’을 이용해야 한다. 현실에 대기하고 있던 사람이 잠들어있는 추출자를 심하게 떨어뜨림으로써 깨우는 거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현실은 꿈속 세상이 아니기에 추출자를 떨어뜨릴 때 그 사람이 다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적다 보니 아주 당연한 이야기를 아주 당연하게 적은 것 같은데, 영화 [인셉션]을 보고 나면 내가 왜 이렇게 뻔한 이야기를 언급할 수밖에 없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그 이유를 살짝 언급하자면, 꿈속에서 한 단계 더 꿈속으로 들어갔을 때는 꿈속의 꿈에서 깨어나기 위해 꿈속에서 사용하는 킥에 온갖 영화적 상상력을 동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적 상상력을 총동원할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꿈속의 꿈속에서 빠져 나오기 사용한 꿈속의 킥이 제아무리 위험한 것이라 해도 대상자와 추출자들이 그 킥에 의해 죽으면 바로 현실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첫 번째에서 언급한 아주 강력한 수면제의 경우 꿈속의 꿈속의 꿈에서 깨기 위해 꿈속의 꿈에서 사용하는 킥은 대상자와 추출자를 죽여도 되지만 꿈속의 꿈에서 깨기 위해 꿈에서 사용하는 킥은 대상자와 추출자를 죽이면 안 된다. 이유는 첫 번째에서 이미 언급했다.
세 번째, 꿈속 세상에서는 대상자와 추출자의 무의식이 큰 영향을 끼친다. 설계자가 꿈속 세상을 아주 현실처럼 창조해놓았다 해도 대상자와 추출자가 갖고 있는 무의식이 꿈속 세상을 망쳐놓을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자신에게 위험이 닥치면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보호하려 들기 때문이다. 이건 현실에서나 꿈속에서나 마찬가지다. 무의식이란 바로 뼛속 깊이 박혀 있는 자신을 방어하려는 본능, 지난날의 큰 후회 같은 것이다. 주인공 코브가 갖고 있는 아내 멜에 대한 죄책감처럼 말이다.
위험이나 큰 후회 같은 게 아니더라도 설계자가 꿈속 세상을 너무 비현실적으로 수정해나가면, 설계자 자신의 무의식이 자신을 주목하고, 공격하게 된다. 어서 깨라고 말이다. 이건 현실이 아니니 어서 깨라고 말이다.
네 번째, 설계자가 꿈속 세상을 창조할 때 기억에 의존해선 안 된다. 그 이유를 뭐라고 막 설명하긴 했는데 확실히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 이 자리에서 내 머리에 남아있는 기억 반의 반과 은영이의 기억 반의 반과 내 논리적 상상력 반으로 유추해보면, 기억에 의존해서 세상을 설계하게 되면 그 사람의 기억이 꿈속 세상 구석구석에 끼어들게 되고, 이것들이 꿈을 공유하는 추출자들의 작업을 방해하게 된다. 게다가 공유자들의 기억까지 끼어들 수 있으니 극도로 위험해지는 거다.
다섯 번째, 어떤 생각을 대상자에게 주입할 수 있다. 대상자를 꿈속에 끌어들여 중요한 사실을 캐낼 수 있듯, 대상자에게 중요한 사상을 심을 수도 있다. 그런데 심는 작업은 사실을 캐내는 작업보다 훨씬 힘들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보통 꿈속에서 보고, 듣고, 배운 것을 현실에서 그대로 실천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냥 꿈속에서 일어난 일들이니까……. 그런데 꿈속의 꿈속의 꿈속인 무의식까지 들어가게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 안에다 어떤 생각을 집어넣으면 현실에서는 본능적으로 그렇게 행동하게 되는 거다. 예를 들어 소녀시대 9 명이 당신의 꿈속에 나타나,
“우리는 당신의 애인이에요. 우리와 함께 놀아요. 그리고 먼 곳으로 함께 떠나요. 당신은 몸만 와요. 우리가 모든 걸 준비해놓을게요.”
이렇게 말했고 또한 이대로 질펀하게 놀았다면, 당신은 꿈속에서 보낸 그 황홀한 낮과 밤이 미치도록 아쉽겠지만 어쩌겠어요? 깨고 나면 입맛만 다실 뿐이죠……. 하지만 꿈속의 꿈에서 이런 속삭임을 듣고 또한 이대로 행동했다면 TV 를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소녀시대가 진짜로 나를 좋아하고 있는 게 아닐까? 내가 지금 저기 가있어야 되는 게 아닐까?’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만약 이런 속삭임과 행위를 꿈속의 꿈속의 꿈에서 당했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 당신은 소녀시대가 자신을 좋아하고 있다는 믿음을 갖고 방송국, 공연무대, 소녀시대의 숙소 등을 찾아다니며 9 명 중에 한 명이라도 잃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쓸 것입니다. 안간힘을 쓰면 쓸수록 정신병자 취급을 당하겠지만…….
그래서 피셔라는 대상자와 6 명의 추출자는 추출자 중 한 사람의 꿈속으로 들어가고, 그 꿈속에서 다시 또 한 추출자의 꿈속으로 들어가고, 거기서 다시 또 피셔의 꿈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영화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주인공 코브의 꿈속으로 한 단계 더 깊이 들어간다. 주인공 코브의 꿈속에 들어가는 이유는…… 아무래도 이 자리에서 얘기하면 안 될 것 같다. 맛보기로 살짝 언급만 하자면, 주인공 코브의 무의식은 부인 멜의 무의식과 닿아있고, 죽은 피셔를 살리기 위해서는 부인 멜을 무의식의 세상에서 만나야 했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언급을 마친다.
많이 복잡한 것 같아 위 내용을 영화 속 장면과 맞춰보면 이렇다. 현실은 일본에서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이고, 1 단계 꿈속은 약물제조사가 모는 승합차 안이고, 2 단계 꿈속은 호텔(Hotel) 528 호고, 3 단계 꿈속은 설산 속 깊은 요새고, 4 단계 꿈속은 주인공 코브가 부인 멜과 함께 50 년에 걸쳐 창조해놓은 세상이다. 4 단계까지 들어가게 되면 거기서는 늘 해변에 널브러진 것 자신에서 꿈이 시작되게 된다.
여섯 번째, 꿈속에서의 시간은 더디게 간다. 즉, 현실의 5 초가 꿈속에서는 몇 십 분이 되고, 꿈속의 꿈속에서는 몇 시간이 되고, 꿈속의 꿈속의 꿈속에서는 몇 일이 되는 식이다. 정확한 계산식이 있던데 그까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이것 또한 영화 속 장면과 맞춰보면 이렇게 된다. 대상자와 추출자들이 탄 일본발 미국행 비행기 안 10 시간이면 꿈속에서는 몇 일이 되고, 꿈속의 꿈속에서는 많은 나날이 되고, 꿈속의 꿈속의 꿈속에서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나날이 되는 거다. 정말 멋진 창조력이지 않나? 어느 것 하나 나의 상상력을 자극하지 않는 게 없는 영화다.
이쯤에서 촌철살인의 웃긴 장면이 하나 나오는데, 일본발 미국행 비행기에서 대상자와 추출자 6 명이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잠에 빠져있기 위해서는 1 등석을 통째로 써야 하고, 승무원을 매수해야 하는 등 여러 정지작업을 해둬야 하는데, 이 때 사이토가 한 마디 한다. …… 이 말을 적어도 되나? 아니다, 적으면 안되겠다. 너무 웃긴 장면이었는데 발설하면 안 될 것 같다. 어쨌든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아주 진중하게 가는데, 이런 식으로 촌철살인 웃기는 장면이 군데군데 나온다. “사나이가 꿈을 크게 가져야지” 와 같은 별 것 아닌 대사가 큰 웃음을 줄 수 있는 이유도 모든 것이 꿈속 세상이기 때문이고, 은근슬쩍 하는 키스(Kiss)도 꿈속이기에 가능하다, 큭큭큭…….
일곱 번째, 추출자는 어쩔 수 없이 꿈속 공간과 현실을 헷갈릴 수밖에 없다. 꿈이 너무 현실 같고 꿈속에 주로 있다 보니, 현실이 꿈인지 현실인지, 꿈이 현실인지 꿈인지, 현실이 현실인지 꿈인지 현실인지, 꿈이 현실인지 꿈인지 꿈인지 현실인지 헷갈리는 거다. 나 지금 뭐 하는 거니?????? 그래서 꿈과 현실을 구분하는 물건을 늘 지니고 있는 게 좋은데, 이게 무슨 특별한 작용을 하는 건 아니고 그저 내가 지금 꿈속에 있는지, 현실에 있는지 알아보는 정도의 역할만 한다. 주인공 코브의 경우 쇳덩어리 팽이를 들고 다닌다. 이걸 돌려서 넘어지면 현실이고, 안 넘어지면 꿈인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이 관객 모두를 엄청나게 짜증나게 만든다. 지금 이 자리에서 뭐라 말씀드릴 없으니, 모두들 가서 그 짜증을 한 번 제대로 느껴보세요.
정말 멋진 영화였다. 줄거리가 살짝 어설프게 진행되는 부분이 있었지만 괜찮다. 다 용서된다. 위에 적은 여러 논리를 기반으로 나머지 부분은 각자의 상상력에 맡긴다. 어차피 영화에는 뚜렷한 결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