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 올슉업(All Shook Up)

[올슉업(All Shook Up)]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

*. All Shook Up : 정신적으로 진짜 동요되어 있는, 마음이 진짜 산란한, 기력을 완전히 상실한

 

 

네이버(Naver)에서 찾은 ‘shook up’이란 단어의 뜻에 내가 ‘all’의 의미를 갖다 붙여 정의한 것이다. 이럴 땐 미국에 있는 사촌에게 물어보는 게 최고인데……. 지난 번에 물어서 그 뜻을 확실히 알게 된 유고걸(You Go Girl)처럼 말이다. ‘All Shook Up’은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의 노래 제목이기도 하다.
 
근래 본 영화나 공연을 통틀어 가장 유쾌하고 재미있는 공연이었다. 역시 미국이다. 미국 원작의 이 뮤지컬(Musical)은 어떻게 하면 관객이 즐거워하는지, 어떻게 하면 관객이 자지러지는지, 어떻게 하면 관객이 까무러치는지 잘 알고 있었었다. 공연을 보는 내내 누군가 내 속내를 읽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한 예로 공연의 배경이 되는 시골동네에 남자주인공 채드(Chad)가 처음 등장했을 때, 채드가 “찌그덕 삐그덕” 하며 요상한 몸짓을 할 때마다 동네 처녀 한 명이 픽~ 쓰러졌다. 나는 이 장면을 보며,
 
‘역시 미국이다…….’
 
하고 생각했다. 뮤지컬 [올슉업]은 ‘이래도 안 웃을 거야?’ 하는 장치를 마련했고, 그 장치에 안 넘어가는 사람은 없었다. 대놓고 의도하면 안 웃기게 마련인데 희한하게도 진짜 웃음이 났다. 게다가 그 장치는 도를 넘지 않았다. 어느 정도 반복하다가 멈추는 고도의 기술까지 구사하고 있었다. 이건 아주 작은 예일뿐이고, 뮤지컬 [올슉업]에 박혀있는 이러한 장치는 정말 수도 없이 많았다.
 
또 한 가지 예를 들자면 파란 가죽구두가 있다. 극 중 이름으로는 블루 스웨이드 슈즈(Blue Suede Shoes)가 되겠다. 별것 아닌 구두에다 의미를 부여하고, 구두로 웃음을 요리하는 능수능란함에 혀를 내둘렀다. [올슉업]을 보고 있는 이라면 어느 누구라도 파란 가죽구두의 의미를 금새 알아차릴 수 있다. 그리고 나중에는 파란 가죽구두만 나오면 웃을 수밖에 없게 된다. 또 한 번 얘기하지만 정말 대단한 뮤지컬이었다. [올슉업]을 본 사람이라면 다들 뒤따르는 제 마음에 동의하지 않나요?
 
‘파란 가죽구두나 하나 사볼까?’
 
이유가 궁금하다면 이런저런 설명을 들을 필요 없이 [올슉업]을 한 번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이 자리에서 꼭 언급하고 싶은 예가 하나 더 있다. 바로, “딱 하루만~ 그대와 지새는 밤~”이란 가사다. 노래 제목은 [One Night With You]인데, 이 노래만 나오면 웃겨 죽는 줄 알았다. 여자주인공 나탈리(Natalie)가 남자주인공 채드에게 반했을 때 처음 부르지만 그 때는 솔직히 별로 안 웃기다가, 나중에 누구라도 첫 눈에 반한 상대를 만났을 때, 절묘한 순간에 이 노래를 부르는 걸 보고 미치는 줄 알았다. 어쩌면 그리도 박자를 잘 맞춰내는지…… 연기, 노래, 무대조명, 음악 등 모든 것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 내 머릿속에 너무나 강렬히 남아있는 곡이라 요즘도 은영이에게 써먹고 있다. 하루에 한 번은 부르는 것 같다. 지금껏 본 뮤지컬 중에서 이 정도로 강렬히 남은 노래는, 뮤지컬 모차르트(Mozart)에서 듣고 본, “아름답고 우아한 것~ 소용없어~ 성실하고 바른 생활~ 소용없어~” …… 이 노래밖에 없다.
 
지난 번에 아주 안 좋은 자리에서 관람한 뮤지컬 몬테크리스토(Monte Christo)를 반면교사 삼아 이번에는 1 층 정중앙 좌석에 앉았다. 이 자리 역시 배우의 표정까지 관찰하기엔 조금 먼 감이 있었지만 그래도 뮤지컬을 뮤지컬답게 즐기기엔 무리가 없었다.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로 이어지는 이야기 구성에서 뮤지컬 [올슉업]은, 발단에서는 관객을 발단시키고, 전개에서는 관객을 전개하고, 위기에서는 관객에게 위기감을 조성하고, 절정에서는 관객이 최고의 희열을 맛보게 했다. 그리고 결말에서는…… 이상하다…… 결말에서도 최고의 희열을 맛봤는데? 그러면 [올슉업]의 이야기 구성은 발단, 전개, 위기, 절정, 절정을 따른다. 결말은 집에 오면서 은영이와 나눈 [올슉업]에 대한 ‘생각 정리하기’로 여기면 되겠다. 정말 인생을 밝게 보도록 만드는 뮤지컬이었다. 그리고 지금 먹고 있는 나이를 서글프게 만드는 뮤지컬이기도 했다.
 
뮤지컬 장면 중에 여자주인공 나탈리가 남자주인공 채드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남장을 해서 채드의 절친이 되는 장면이 있었다. 남장했을 때의 나탈리 이름은 애드다. 이 장면이 있기 전까지는 나탈리 역을 맡은 박은미님이 그다지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더니, 남장을 하고 나오면서부터 그만 박은미님의 자태에 뿅가고 말았다. 남자 바지와 여자 바지가 그렇게 달랐나? 박은미님이 남자 청바지를 입고 춤을 추니 몸매가 확 죽어버림과 동시에 묘한 매력이 발산됐다. 춤추는 모습이 마치 아장아장 거리는 것 같아 여간 귀여운 게 아니었다. 나…… 변태일까? 예뻐서 미치는 줄 알았다.
 
그렇다면 이제 [올슉업]의 전체적인 줄거리에 대해 얘기해보자. 음악 없이 못 사는 남자주인공이 나온다. 좋아하는 음악은 구세대의 가치관에 다소 저항적인 로큰롤(Rock and Roll)이다. 그러고 보면 [올슉업]의 시대적 배경이 50 년대 말이나 60 년대 초쯤 될 것 같다. 당시 미국의 사회상은 로큰롤을 금기시할 때였다. 우리나라 근대사도 아닌데 내가 어떻게 이렇게 잘 아는지 모르겠지만, 그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미국 문화가 뿌리 깊이 박혀있다는 증거도 된다. 남자주인공이 구세대의 가치관이 팽배한 한 시골마을에 우연히 들어가면서 이야기가 시작되고, 이 청년 덕분의 마을 분위기가 젊고 활기차게 바뀐다. 끝!
 
너무 싱겁나……? 그러면 좀 더 내용을 보태서, 그렇게 마을 분위기가 바뀌는 동안 여러 갈래의 갈등이 있고, 삼각관계에 삼각관계가 더해간다. 하지만 갈등은 갈등이되 심각하지 않고, 질투는 질투돼 웃으며 한다. 여자주인공의 아버지 짐(Jim)이 어리게 차려 입고, 어린 짓을 하면서, 새파랗게 어린 산드라(Sandra)를 쫓아다니는 장면에서 다소 위기감을 느끼긴 했지만, 이것 역시 뮤지컬 [올슉업]답게 아버지가 잠시 젊어졌다고 착각한 것일 뿐, 금새 제정신을 찾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여자주인공 나탈리의 아버지 짐이 딸 또래밖에 안 되는 산드라에게 사랑고백을 한다. 당연히 거절당하게 되고, 그러자 아버지 짐은 이내 자신의 현실을 깨닫고 돌아서서 나이에 맞는…… 지금껏 함께한…… 사랑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사랑하고 있던 술집 주인 실비아(Sylvia)에게 간다.”
 
등장인물들 모두 유쾌 그 자체였다. 이들의 관계 또한 유쾌 그 자체였다. 뮤지컬에 포함된 노래들 또한 하나 같이 주옥이었다. 마음 놓고 웃고, 마음 놓고 즐거워하다 공연장을 나섰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마지막에 다들 나와 인사를 할 때 사진을 왜 못 찍게 하는지 모르겠다. 마지막 인사를 할 때라면 한 장 정도는 찍게 해줘도 되지 않나? 내가 본 공연의 채드는 송용진님이었고, 나탈리는 귀엽고 깜찍하고 연기 잘하고 노래 잘하는 박은미님이었다. 아, 조금 전에 얘기했구나…….

글쓴날 : [10-10-13 21:20] 이한설기자[dondog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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