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오펑후(보봉호,Baofeng Lake)에서 유람선을 즐긴 후 등산을 시작했다. 등산로는 호수 반대편에 서 있는 잉워자이(응와채,Yingwazhai)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었다. 잉워자이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은 모두 두 갈래였다. 하나는 인공폭포 맞은편에서 올라가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승선선착장 부근 절에서 올라가는 길이었다. 우리는 인공폭포 맞은편에서 등산을 시작했다. 두 갈래 길 중에 밑에서 시작하는 길이었다. 안내판에 적혀 있기로 잉워자이 정상까지는 약 2400 개의 계단으로 이뤄진 2 Km 길이었다. 완만한 육산이 아니라 우뚝 솟은 암봉을 에누리 없이 올라가야 하기에 등산로 대부분이 계단으로 이뤄져 있었다. 약 80 분이 걸린다고 되어 있었다.
등산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지난한 협상 과정을 거쳤다. 바오펑후 하선선착장을 내려오며 한 번, 바오펑후 관광지를 출입구 근처에서 한 번, 마지막으로 등산로 입구에서 한 번, 이렇게 총 3 번의 실랑이를 벌인 끝에 등산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은영이도 내가 이런 건으로는 절대 양보하지 않는다는 걸 안다. 그럼에도 자꾸 딴지를 거는 건 뭔가 얻어내려는 술책이다.
사람이 지나다니도록 길이 만들어진 건 맞는데, 마치 귀신 소굴로 들어가는 것 같은 으스스한 기운이 느껴졌다. 길을 따라 좁은 계단이 지겹도록 이어졌고, 좁은 계단의 전후좌우는 모두 까마득한 절벽이 막고 있었다. 잉워자이 정상까지 올라가서 되돌아 내려오는 동안 내가 본 사람이라곤 우리 둘뿐이었다. 직접 오르고 나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 등산로의 의미는 이렇다. 잉워자이라는 걸출한 봉우리와 주변 봉우리 사이로 실낱 같은 계단길이 하나 나 있다. 사람은 이 계단길을 따라 봉우리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다. 물론 바오펑후를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봉우리 중에 단 하나의 봉우리를 올라갈 수 있단 말이다. 올라가면 장자제(장가계,Zhangjiajie)의 독특한 풍경을 이루는 준봉들이 겹겹이 서 있는 모습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그 아래 일부이긴 하지만 우링위안(무릉원,Wulingyuan)의 모습도 한 눈에 들어온다. 한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는 봉우리와 그 아래 자리잡은 우링위안을 보고 있으니, 잉워자이라는 봉우리의 이름 그대로 나 자신이 한 마리의 매가 되어 둥지에 앉아 세상을 굽어보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가까이 두고 있어 까마득한 절벽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봉우리들 사이를 걷는 동안 하늘에서 뭐가 자꾸 떨어졌다. 조그만 우박이 내리는 것 같기도 하고, 절벽 위에서 유리조각을 던지는 것 같기도 했다. 비록 조그만 얼음조각이었지만 사방이 절벽이다 보니 떨어지는 소리가 차르르르 차르르르 제법 실하게 들렸다. 길바닥에는 조그만 콩알탄 같은 얼음조각이 쫙 깔려 있었다. 이 의문은 나중에 상층부에 올라가서 풀렸다. 이 얼음조각들은 모두 나뭇잎 끝에 매달려 있던 고드름이었다. 희한하게도 나뭇잎 끝마다 얼음방울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는데, 이것들이 잎으로부터 떨어진 것이었다. 예상컨대 나뭇잎에 서리 같은 게 끼어 있다가, 이것들이 낮 동안 녹으면서 물이 되고, 물은 나뭇잎 끝으로 이동해 물방울이 되어 떨어지려다가, 차가운 날씨에 거기에 얼어 붙어버리고, 이것이 고드름이 되어 조금씩 커지다가, 제 무게에 못 이기거나 바람이 불면 떨어지는 것이다. 너무 장황한 소설인가? 여하튼 그런 것 같았다. 올라가는 내내 요 조그만 고드름이 하늘에서 내렸다. 절벽이 너무 높아 꼭 하늘에서 내리는 것 같았다.
얼마 올라가지 않아 은영이가 나보고 먼저 올라가란다. 자기도 곧 뒤따라 올라가겠다면서. 은영이와 함께 어떻게든 끝까지 올라가고 싶었지만 길이 너무 험한데다, 다음날부터 진짜 강행군이 시작돼야 하기에 마냥 끌고 갈 순 없었다. 이미 3 시가 훨씬 넘어버린 시간도 문제였다. 나는 혼자서 걸음을 재촉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은영이는 올라오는 것을 포기하고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렸단다…… 그 절벽 사이에서…… 별 것 아니게 들릴지 몰라도 우링위안이라는 물 설고 산 선 중국땅에서, 까마득한 절벽 사이에 홀로 끼어 있는 기분은 그리 만만치 않다. 하늘에서는 연신 이상한 얼음조각이 떨어지지, 간간이 들려 오는 동물 울음 소리와 나뭇잎이 떨리는 소리가 사방의 절벽을 타고 기묘하게 변하지, 곧 해가 질 것만 같지, ……. 정말로 괜히 무서운 길이었다. 뭐라도 나타나면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길이라 더욱 그랬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사람이 나올까 봐 제일 무서웠다. 은영이는 너무 무서워서 나를 불렀다는데 나는 하나도 듣지 못했다. 그리고 은영이는 너무 무서워서 혼자 밑으로 내려갔다. 그 시각, 나는 그것도 모르고 계속 정상을 향해 올라가고 있었다. 하긴 알았어도 달라질 건 없었다. 인생이 다 그런 거지, 뭐.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는 거다! 나는 은영이를 그리 약하게 키우지 않았어!

계단길을 거의 다 올라가자 시야가 트이며 장자계의 준봉들이 나를 반겼다. 하지만 시야가 아직 완전히 트인 건 아니었다. 시야가 반쯤 트인 그 곳에서 등산로는 잉워자이를 관통하며 나아갔다. 굴 안도 모두 오르막 계단이었다. 지겨운 계단……. 굴을 통과하자 그제서야 시야가 완전히 트이며 장가계의 준봉과 우링위안이 나를 맞았다. 그러니까 줄곧 바오펑후 쪽에서 오르던 등산로가 굴을 통과하면서 바오펑후의 반대쪽으로 완전히 나간 것이다. 장자제를 이루는 봉우리들의 장쾌한 모습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나는 이런 풍경을 정말정말 좋아한다. 부분을 떼어놓고 보아 아름다운 풍경 말고, 다 담을 수 없어 아름다운 풍경 말이다. 하늘만 청명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었을 텐데…… 옅게 드리워진 안개구름이 천추의 한이었다. 옅은 안개구름은 풍경에 몽환을 흩뿌려 선계를 더욱 선계답게 만들어 제 할 일을 다 했지만, 그렇다고 청명한 대기를 뚫고 저 멀리 있는 한 점까지 아껴 보는 것만 같지 않았다.
굴을 통과한 길은 절벽을 옆으로 파내며 나아갔다. 이 구간의 등산로를 보면서, 자연을 대하는 중국인들의 태도가 우리의 태도와 많이 다름을 알 수 있었다. 우리 같으면 봉우리의 언저리를 파내고 굴을 뚫으면서까지 길을 내진 않았을 텐데 말이다. 중국인들은 필요하다면 어떻게든 길을 뚫어 놓는 것 같다. 자연을 개조하는 걸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중국인들이고, 그런 것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으로 여기는 우리들이다. 우리나라 사람과 중국인 중에 어느 쪽이 더 낫다는 게 아니라 그저 다른 것 같다.
절벽을 따라 걷는 동안 나만을 위해 서 있는 준봉들이 서로 위치를 바꿔가며 나를 쳐다봤다. 나는 그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몇 번이고 고개를 돌려 준봉을 마주보았다. 하긴 매 걸음마다 고개를 돌려 준봉과 시선을 맞춘 건 준봉들의 시선을 의식해서만은 아니었다. 올라온 걸음이 너무 아까워, 아끼고 아껴가며 보고 싶은 나의 욕심이기도 했다.
절벽을 따라 잉워자이를 돌던 등산로가 바오펑후 방향으로 완전히 돌아섰다. 등산로가 굴을 통과하여 바오펑후 바깥으로 나갔다가 다시금 절벽을 돌아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저 밑으로 절집 지붕이 보였다. 절은 까마득한 절벽 사이에 마치 똥 낑기듯 껴 있었다. 조금 더 걸어가니 또 다른 굴이 등장했다. 봉우리 정상부에 짧지 않은 2 개의 굴을 뚫어 등산로를 만든 것이다. 정말 대단한 중국이다. 굴을 통과한 후 조금 걸으니 갈림길이 나왔다. 한 쪽은 아까 전에 본 절로 내려가는 길이었고, 다른 한 쪽은 잉워자이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이었다. 절 쪽으로 내려가면 바오펑후 승선선착장 쪽으로 바로 내려가는 하산길이었다. 나는 절로 내려가지 않고 잉워자이 정상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잉워자이 정상에 다다를 수 있었다. 큰 기대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잉워자이 정상에 서고 보니 우거진 수풀 때문에 제대로 보이는 풍경이 없었다. 실망이었다.
잉워자이 정상 바로 아래에서 길이 다시 나뉘었다. 앞으로 계속 나아갈 수도, 아니면 조금 전의 갈림길로 되돌아갈 수도 있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 앞으로 계속 나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절 방향으로 하산하면 절벽 사이에 끼어 너무 답답할 것 같았다. 올라올 때 줄곧 그런 길을 걷는 바람에 더 이상 그런 길을 걷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이게 정말 잘못된 선택이었다. 앞으로 나아가는 길은 수풀이 우거져 있어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다. 그저 축축하고 추운 숲 속을 통과하며 쭉 내려왔다. 이럴 줄 알았으면 뒤로 가서 절이라도 구경하는 건데……. 게다가 아주 오랫동안 사람이 다니지 않았는지 낙엽이 수북이 쌓여 있어 걷기조차 성가셨다. 길은 올라갈 때 지나간 계단길과 합류했다.
이로써 나는 처음 출발했던 위치로 다시 돌아왔다. 등산로 시작점에 도착하자 땅바닥에 펑펑대고 앉아 있던 은영이가 득달같이 일어나 내게 화를 냈다. 무서워서 죽는 줄 알았다고…… 여행 그만 하고 싶냐고…… 너랑 다니면 여행이 아니라 훈련이라고…….

유람선도 탔겠다, 등산도 했겠다, 이제 남은 것은 절 구경뿐이었다. 잉워자이(응와채,Yingwazhai) 정상 갈림길에서 절 방향으로 내려오기만 했어도 이렇게 절 구경을 따로 나설 필요가 없었는데, 순간의 잘못된 선택이 이렇게 오르막을 다시 오르게 만들었다. 나는 화가 머리 끝까지 난 은영이를 꼬시기 시작했다. 이번만큼은 은영이도 호락호락 넘어오지 않았다. 빈틈을 찾기 위해 은영이의 마음을 이리저리 흔들어보았지만, 은영이의 심리적 저항선이 생각보다 완강했다. 결국 나는 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호텔(Hotel)로 돌아가기 위해 바오펑후(보봉호,Baofeng Lake) 구역을 벗어났다. 짧은 겨울해였지만 아직 해가 많이 남아 있었다. 다행이었다. 바오펑후는 우링위안(武陵源:무릉원,Wulingyuan) 중심가에서 대충 1 Km 떨어진 곳에 있었다. 바오펑후 안에 사람이 그렇게 없더니, 바오펑후를 나와도 역시 거리에 사람이 거의 없었다. 따라서 택시(Taxi)도 없었다. 우리는 중심가까지 걸어나가야 했다. 중심가에 나가서는 기왕 내친 걸음이라 호텔까지 그냥 걸어가버렸다.
우링위안 중심가와 바오펑후를 잇는 도로 주변은 온통 숙박시설, 상점 등 관광객을 위한 시설들뿐이었다. 우리가 거기 갔을 때가 정확히 중국 설날 전날이었는데, 그래서 그런 건지 숙박시설이나 상점 등이 모두 문을 닫고 있었다. 아주 썰렁했다. 오른쪽으로 절집처럼 보이는 건물 몇 채가 경사 급한 언덕에 소복이 들어서 있었다. 예사롭지 않아 보여 지도를 꺼내 살펴보니, 지샤관징취(자하관경구,Zixiaguanjingqu)로 지정되어 있는 도교사원 구역이었다. 나는 은영이를 한 번 쳐다봤다. 그러자 은영이는 아주 싸늘한 시선으로 나를 째려보더니 가던 길을 계속 갔다. 일언반구 하나 없이 나를 완전히 무시한 것이다.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잉워자이에서 지은 죄도 있고 해서 그냥 고분고분히 은영이 뒤를 따랐다. 여기저기서 대포 같은 폭죽소리가 연신 들려왔다. 이 소리는 우리가 우링위안에 있는 동안 아주 멀리, 조금 멀리, 가까이, 근처에서 계속 들려왔다. 정말 지겹도록 들었다.
강을 건넜다. 제법 큰 강이었지만 강물은 개천처럼 좁고 얕게 흐르고 있었다. 강가에 나와 강물로 빨래하는 사람이 제법 있었다. 강을 건너자 바로 조그만 시장이었다. 물건을 파는 사람도, 물건을 사는 사람도 모두 고만고만한 조그만 시장이었다. 한 소년이 시장 길가에서 양꼬지를 팔고 있었다. 꼬지 하나에 1 위안(원,Yuan)이었다. 이 곳이 우리가 우링위안에 있는 동안 양꼬지를 사먹을 수 있는 유일한 가게였다. 어찌나 맛있던지 장가계시에서 버스를 타고 오다가도 이 양꼬지를 먹기 위해 일부러 중간에 내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