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과 흙과 불의 도시 부여에서 만난 백제요

 

백제의 마지막 수도였던 부여의 옛 이름은 사비(泗?)입니다. 그리고 부여라는 지금의 지명은 백제의 첫 이름인 부여(夫餘)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사비라는 이름은 한자라기보다는 아마도 옛 고어에서 비롯된 것 같습니다만, 한자 그대로 해석하면 ‘좋은 물과 모래가 있는 냇가’라는 의미가 됩니다.

 

부여 역시 옛 고어를 한자로 적은 것인데, 부여라는 고어에 대한 해석 중 하나는 바로 부여가 ‘불’의 고어라는 것입니다. 고조선 멸망 이후 우리 민족이 건국한 국가 중 가장 북쪽에 자리 잡았던 부여는 북방과 중국의 앞선 철기 문화를 가장 먼저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또한 부여는 당시 가장 발달한 동아시아 토기 문화를 제일 먼저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높지요.

 

토기와 철기 제조 기술의 핵심은 ‘불’입니다. 좋은 토기와 우수한 철기를 만들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관건은 불을 얼마나 잘 다루느냐는 것이었지요. 북방의 앞선 ‘불’ 문화를 갖고 있던 부여에서 갈라진 것이 고구려와 백제이지요. 그리고 그 백제의 ‘불’ 문화가 좋은 ‘물’과 ‘흙’을 가진 백제의 마지막 수도 사비(부여)에 정착하였으니 분명 뛰어난 ‘토기 문명’을 갖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백제의 토기 문명에 대해 알려진 바나 유물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토기라는 특성 상 유약을 바르는 자기만큼 튼튼하지 않았을 것이고, 또 백제가 멸망하면서 그 문명이 역사의 뒤안길로 숨어버린 탓도 있을 것입니다. 또 많은 백제유물들이 도굴되고 유출된 점도 한 몫 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백제의 토기 기술은 당대 동아시아에서도 가장 선진적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백제의 우수했던 공예나 건축 기술에 비추어 보건데 도기 기술 역시 뛰어났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일본 도기 문명의 본산이라는 불의 도시 구마모토 등지로 전파된 도기 기술 역시 백제에서 전해졌다는 것이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을 정도이니까요.

 

또 강진과 이천, 여주 등 고려와 조선 시대의 유명한 가마터가 대부분 옛 백제 지역에 자리 잡고 있다는 점도 이러한 추측을 가능케 합니다. 그래서 근대에 들어와 명맥이 끊긴 백제 토기(백제요)를 복원하고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데 큰 기여를 하였다는 충남 부여군 백제요에서 진행되는 충남 명인 명사 릴레이 인터뷰의 주인공인 신승복 장인을 만나러 가는 길은 많은 궁금증과 기대로 부풀기 충분했습니다.

 

신승복 장인이 백제요 가마터를 복원하고 본격적으로 백제 토기를 제작하기 시작한 것이 벌써 20년이 되었다고 하는데, 아직도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백제 토기에 대해 무지하기에 호기심도 컸지요. 과연 백제 토기라는 것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저를 들뜨게 하였습니다. 부여군에 자리 잡은 백제요에 도착하니 오전 가을비에 젖은 호젓한 정원과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불가마가 저를 맞이합니다.

 

정원을 잠시 둘러보다가 참지 못하고 가마터로 달려갑니다. 전 날 밤부터 불을 피우고 있다는 가마터는 붉은 불을 용의 혀처럼 내뿜고 있었습니다. 가마 기술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저는 왜 가마가 산비탈을 따라 기울어져 있는지가 궁금해집니다.

가마가 왜 비탈졌는지 궁금해 나중에 자료를 찾아보니 이런 자료가 있더군요.

 

 

- 백제의 도기 제조술은 아주 뛰어났다. 특히 사비시대의 백제는 도기표면에 녹유(綠釉)를 입히는 선진기술을 습득함으로써 다른 주변 국가를 압도했다. 사비시대에 해당하는 시기에 도기나 도제품을 제작한 가마터(窯址)는 현재 충남 청양 본의리(7세기 전반), 부여 정암리(7세기), 전북 고창 운곡리와 익산 신용리(6세기 중반), 전남 영암 구림리(6-7세기) 등에 남아있다. 이들 가마터는 모두 80년대와 90년대에 접어들어 발견되었다. 사비 시대 가마들은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 상당히 과학적으로 축조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사비시대 가마들은 거의가 경사진 언덕을 따라 올라가 축조한 반지하식 등요(登窯)로 이루어졌다. 이는 고화도(高火度)를 효율적으로 유지, 보다 견고한 도기를 만들기 위한 과학적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청양 본의리 등요는 오늘날에도 사용하고 있는 재래식 사기 가마처럼 계단식 등요로 밝혀졌다. 사비시대 이전의 가마 거의가 평요(平窯)이었던 것과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익산 신용리 가마는 반지하식 등요로 천정 평면은 독사머리 모양을 하고 있다. 이와 같은 형식은 일본의 스에무라(陶邑) 가마군으로 연결되었다. 영암 구림리에서 발굴된 가마 역시 반지하식이고 평면은 독사머리를 했다. 다만 영암 구림리 가마는 고화도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으로 창불구멍을 낸 것으로 조사되어 기능상 한 단계 더 발전한 가마로 여겨진다.

 

사비시대 이전의 가마터도 더러 남아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전남 승주 대곡리(3-4세기), 충북 진천 산수리(4세기)등이 이 시대의 가마다. 이러한 최근의 발굴 자료들은 3세기에서 7세기에 이르는 동안 백제 도기 가마의 변천 및 발전상을 보여주고 있다. - 출처. 인터넷 지식 검색 -

 

 

가마터에서는 불감으로 소나무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소나무는 타고 나면 재가 되어 쏟아져 내리기 때문에 따로 숯을 빼어낼 필요가 없어 가마 불감으로 제격이라고 합니다. 가마터를 둘러보다 신승복 장인을 만나게 됩니다. 충남문화산업진흥원에서 출발한 릴레이 인터뷰 팀이 아직 도착하지 않아 잠시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전시관의 작품들을 둘러보았습니다.

 

신승복 장인은 백제요를 건립할 때 당시의 가마나 그릇들을 최대한 원형대로 복원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합니다. 더 멋지고 화려하게 만드는 것도 좋겠지만 최대한 원형을 복원함으로써 백제인의 소박함과 멋스러움을 있는 그대로 전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백제요를 현대적인 기술에 접목시키는 창작 활동도 소홀히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장인과 담소를 나누는 동안 작업실 한쪽에서는 주문한 제품을 배송하기 위한 포장 작업이 한창이었습니다. 백제요에서는 작은 잔 세트를 ‘사랑 방울잔’이라는 이름으로 생산하고 있었습니다. 공식적으로는 ‘대부배’라는 것인데 그릇을 잡고 흔드니 안에 들어있는 구슬이 울리면서 맑은 소리가 나는 것이 신기하고 재미었습니다. 오늘날도 충분히 예술적 상품적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통 대부배는 유리로 만들어져 유리구슬이 맑은 소리를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신승복 장인은 백제에서는 토기를 이용해서도 이처럼 소리가 나는 대부배를 만들었다는 기록을 참고하여 ‘토기 대부배’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백제에 대한 기록에 ‘왕실이나 사대부들이 즐겨 사용했던 잔으로 잔이 채워지면 소리가 나지 않고, 잔이 비게 되면 청명한 방울소리가 난다’라고 적혀 있는 것을 참고하였다 합니다.

 

단순한 기록을 토대로 백제시대의 토기들을 복원한다는 것만도 많은 열정과 노력, 창의성이 요구됨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습니다.

 

 

백제요에서는 전통적인 그릇이나 찻잔 등의 실용적인 작품 뿐 아니라 기와나 공예품, 장식품 등도 창작하고 있었습니다. 또 방문객들이 직접 작품 제작 과정을 체험하고 자기만의 작품을 만들어 나중에 완제품으로 받아볼 수 있는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전시관에 전시된 많은 작품들을 보면서 우리 민족의 우수한 도자기 기술에 대해 다시금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처럼 뛰어난 도자기 기술은 고려시대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 백제를 포함한 삼국 시대로 거슬러 올라감을 알 수 있었습니다.

어서 통일이 되어 고구려, 부여, 발해 등 북방 국가의 우수한 도기 기술에 대한 연구가 진척된다면 우리 민족의 뛰어난 도자 기술의 뿌리가 더 오랜 시간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을까 합니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신승복 장인의 모습에서 담소 중에는 볼 수 없었던 백제요에 대한 진지한 열정과 애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충남을 대표하는 문화 산업 1호로 지정될 만큼 도자기 예술 분야에서는 이미 상당히 인정받고 있는 장인의 자부심과 포부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국내뿐만 아니라 일본, 유럽 등지에서도 전시회를 열고 학술대회를 열 정도로 백제요는 이미 20년의 땀을 인정받고 있었습니다.

 

충남에서는 해마다 백제문화제를 개최하고 있고 2010년에는 이를 국제적인 행사인 세계대백제전으로 확대하여 성황리에 마쳤습니다. 이천도자기축제가 세계도자비엔날레로 확대되어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점과 비슷합니다. 백제요에서 기울이고 있는 연구와 노력이 더 큰 빛을 보게 되어 백제요가 충남 문화와 백제 문화를 대표하는 문화 산업으로 거듭나길 바라 봅니다.

 

글쓴날 : [12-12-18 10:22] 변동욱기자[pbtv@pb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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