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났던 문화와 역사의 터키를 들여다보다. 터키문명전:이스탄불의 황제들

모처럼만의 국립중앙박물관 나들이. 수요일, 토요일은 국립중앙박물관은 오후 9시까지 야간개장을 합니다. 때문에 느즈막한 시간에 박물관으로 발걸음을 옮겨도한산하게 구경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죠. 직장인들에게는 더할나위없이 좋은 시간때인 건 사실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다섯번째 세계문명전으로 터키문명전:이스탄불의 황제들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한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온 터키의 문화유산을 국내최초로 대중에게 소개하고 나아가 문화교류를 통하여 양국간의 돈독한 교류의 장을 연다는 의의를 갖고 있는 특별한 전시회. 터키 여행을 가지 않아도 중요한 터키의 유물들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더더욱 특별했습니다.

 

터키의 아나톨리아문명박물관, 이스탄불 고고학박물관, 터키 이슬람 미술관, 톱카프궁박물관에 소장된 문화유산이 국립중앙박물관에 모였습니다. 나중에 신혼여행을 터키로 가려고 생각했는데, 미리 터키의 역사와 유물들을살펴볼 기회가 되어 더 유용했던 전시회였습니다.

 

 

 

▲ 알렉산드로스 대왕 (헬레니즘, 기원전 3세기경)

반도국가 터키, 예로부터 교역의 장으로 발전

우리나라와 터키의 공통점이라면 반도국가라는 점입니다. 터키는 아시아와 유럽대륙에 걸쳐 위치하며 보스포루스 해협이 두대륙사이를 가로지르는 반도국가입니다. 지리적 조건때문에 동서양 문물이 만나는 장소가 될 수 있었습니다.

 

히타이트, 트로이, 프리기아와 같은 고대 아나톨리아 문명에서 그리스,로마, 동로마제국을 거쳐 오스만제국에 이르기까지 긴 세월을 통해 고유의 문화와 역사를 꽃피울 수 있었습니다. 특히나 이스탄불 지역은 신과 인간의 사랑을 동시에 받아온 땅입니다. 자연의 경이로움에 탄성을 쏟아낼 수 밖에 없는 신비로운 자연환경과 수천년의 세월동안 인간이 쌓아올린 문명의 자취를 모두 만날 수 있는 곳이기도 하죠.

 

 

▲의례용 사슴모양 깃대장식 (기원전 3000년경, 아나톨리아문명박물관)

▲ 그림이 그려진 항아리 (기원전 2000년경, 이스탄불 고고학박물관)

▲카데시 성문 평화협정이 새겨진 점토판 (기원전 1269년경, 이스탄불 고고학박물관)

세계최초의 군사적 평화협정이 새겨진 카데시 조약 점토판

고등학생 때 가장 좋아했던 과목을 꼽으라면 국어를 제외하면, 국사와 세계사였습니다. 역사를 좋아했습니다. 터키문명전은 알고 있는 세계사를 머리속에 펼쳐내게 만들었죠. 그리고 말로만 듣던, 사진으로만 보던 유물을 보게 되어 더더욱 설레게 만들었습니다.

 

카데시 평화협정이 새겨진 점토판만 해도 그랬습니다. 사실 이 유물을 제외하고는 모두 진품입니다. 그렇다고 이 점토판이 가짜냐라고 말할 수 있느냐? 그것도 아닙니다. 고유 넘버를 갖고 있고 터키 내에서도 이 점토판은 거의 진품의 대우를 받습니다. 너무나도 신성한 유물이라서 국외로 반출이 어려운 유물이라서 진품대우로 전시되고있는 유물이 온거죠.

 

이 점토판은 상당히 의미가 깊습니다. 기원전 13세기 무렵 히타이트의 왕 하루실리 3세와 이집트 파라오 람세스 2세간에 맺어진 세계최초의 군사적 평화협정이 새겨졌습니다. 당시의 외교언어였던 아카드어로 새겨졌으며 1906년 보아즈쾨이에서 발견되었다고 하죠. 현재 점토판의 반절 정도가 남아있으며 표면은 부서졌습니다. 뉴욕의UN 본부 앞에는 역사상 최초의 평화조약이라는 의미를 살려 2m에 달하는 카데시 성문 평화협정을복제품으로 만들어 전시하고 있습니다.

 

 

▲ 전쟁에 나가는 남성 (헬레니즘, 기원전 2세기, 이스탄불 고고학박물관)

▲ 알렉산드로스 대왕 (헬레니즘, 기원전 3세기경)

▲ 콘스탄티누스 1세 (동로마 4세기경, 이스탄불 고고학박물관)

 

그리고 서양문명의 모태가 되는 그리스, 로마 문명의 유물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두상은 사람의 머리보다 크게 제작이 되어 있었는데, 정말 오똑한 콧날과 타원형의 얼굴, 먼 곳을 응시하는 눈까지 너무 멋있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더군요.

 

사자갈기처럼 휘날리는 머리카락과 명암을 강조하는 조각기법은 헬레니즘 시기 조각의 대표적인 특징이죠. 이마 윗부분은 소실되고 없는데요, 별도의 돌로 조각되었으며 왕관이나 투구가 있었을 것이라고 추청된다고 합니다.

 

 

 

이어지는 포스트 내용은  http://blog.daum.net/yeonsili/12341630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원작성자 : 꼬양

 

글쓴날 : [12-06-24 20:02] 파워블로거타임즈기자[pbatimes@pb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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