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가계 유람 - 바오펑후(보봉호) 2/3

 

바오펑후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호수 중간에 떠 있는 섬이었다. 솔직히 멋있긴 멋있었다. 바오펑후가 자연호수가 아니라 인공호수임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더욱 멋있어 보이는 섬이었다. 왜냐하면 필경 원래 봉우리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바오펑후의 평균 수심이 72 m 라니 지금 떠 있는 저 섬이 원래는 꽤 높은 봉우리였고, 그 윗부분이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어 섬이 됐을 터였다. 물 속에 뛰어들어 눈에 보이는 저 봉우리를 따라 밑으로 밑으로 내려가보고 싶었다.
 
등산로는 선착장에서 끝이 났다. 설날 전날인데다 날씨가 많이 추워 선착장도 호수도 적막했다. 움직이는 것이라곤 바람 따라 이는 물결과 물결 따라 흔들리는 몇 척의 유람선뿐이었다. 바람 따라 유람선이 흔들리고 유람선의 흔들림에 물결이 이는 것일 수도 있겠다. 우리는 조심스레 승선장으로 갔다. 그리고 못 알아듣고 못 하는 중국말 빼고 신체를 움직였다. 몸 언어를 구사하기 위해서였다. 몸 언어의 주는 손가락과 눈짓이었다.
 
‘배를 타는 데 얼마인가요?’ / ‘공짜입니다.’
‘배를 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 ‘지금은 못 타요, 좀 기다리세요.’
‘예, 고맙습니다.’ / ‘그것 가지고 뭘 그래요…… 당신, 한국 사람이군요?’
 
혹시 뱃삯이 비싸면 안 타려고 했는데, 뱃삯은 이미 입장료에 포함돼 있었다. 확실히 그렇다는 건 아니고 대충 느낌이 그랬단 말이다. 우리말의 ‘포함’이 중국말로는 ‘포하’에 가깝고, 우리말의 ‘불포함’이 중국말로 ‘뿌포하’에 가까워 대충 감으로 때려잡은 거다. 바오펑후 입장료가 생각보다 비쌌는데 다 이유가 있었던 거다. 그런데 승선객이 우리 둘뿐이라 최대 20 분을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이것 또한 말로 알아들은 건 아니고, 안내하는 분이 말이 안 통하는 우리를 위해 안내판에 적혀 있는 한 문장을 손가락으로 꾹 찍어줬다. 안내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 10 명이 안 될 경우 최대 20 분을 기다릴 수 있습니다. ]
 
우리는 선착장 주변을 배회하며 시간을 보냈다. 괜히 화장실도 가고, 화장실 바로 옆에 있는 물막이 시설도 구경하고, 화장실 너머 잔도를 따라 수문개폐기까지 가보기도 했다. 모든 상점이 문을 닫았지만 냉장고에 붙이는 장가계 모형만은 팔리고 있었다. 그 아래 적혀 있는 광고 문구가 너무 웃겼다. 한글로,
 
[ 장가계 위축경관. 랭장고 불임계렬 매개당 10 원 ]
 
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그러니까 냉장고에 붙이는 장가계 축소 모형으로, 여러 가지 종류가 있고, 1 개당 10 위안이란 말이다. 물론 우리는 사지 않았다. 은영이는 이런 걸 기념으로 하나씩 사오고 싶어하지만, 내가 극도로 싫어해서 포기하고 산 지 어언 14 년이다. 14 년의 기준은 우리가 난생 처음 외국에 나갔던 1997 년 2 월이다.
 
다행히 오래지 않아 중국인 한 가족이 선착장에 왔다. 꽤 대가족이어서 우리는 바로 유람선에 오를 수 있었다. 안내자가 한 명 동승했다. 젊은 여자였다. 유람선의 여정은 바오펑후를 가로질러 반대편 끝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것이었다. 유람선이 바오펑후를 떠가는 동안 동승한 안내자가 열심히 뭔가 설명해줬다. 하지만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기에 우리는 그저 우리끼리 얘기하고, 우리끼리 사진 찍고, 우리끼리 바오펑후의 풍경을 즐겼다. 가는 길에 물가에 매어 있는 배 위에서 전통복장을 한 젊은 여자가 노래를 불러줬다. 배 안에 대기하고 있다가 유람선이 다가오면 선수로 나와 노래를 불렀다. 장자계 지역에 사는 소수민족의 전통 노래인 것 같았다. 오는 길에는 반대편에 매어 있는 배 위에서 역시 전통복장을 한 남자가 노래를 불러줬는데, 보아하니 노래를 부르는 남녀끼리 무슨 연관이 있는 것 같았다. 이 대목에서 안내자가 뭔가 설명을 하고, 중국인 가족이 웃음을 터뜨렸다. 으~ 답답해…… 뭔가 재미있는 사연이 있는 것 같던데……. 비록 한 명씩 따로 부르는 노래였지만 사방에 솟아 있는 높은 봉우리가 노래에 울림을 더해 깊이를 줬고, 맑은 호수의 초록빛 수면이 노래에 잡음을 없애 맑음을 더했다. 그대로 자연이었다. 바오펑후 반대편에 뭔가 시설물이 있었지만 배는 정박하지 않고 그대로 선수를 돌렸다.

 


출발점으로 되돌아온 유람선은 호수 중간에 떠 있는 섬을 한 바퀴 돌았다. 가까이 가보니 섬은 하나가 아니라 약 3 개였다. 게 중에는 소나무가 한 그루 꼿꼿하게 서 있는 바위섬도 있었다. 물 속에 높다란 봉우리가 하나 서 있고, 이 봉우리는 수면 밖으로 꼭대기를 배꼼이 내밀고 있다. 수면 위로 내민 꼭대기엔 소나무 한 그루가 꼿꼿이 서 있다. 그냥 예술이었다.
 
섬에 정신이 팔려 눈을 떼지 못 하고 있는데, 안내하던 여자가 갑자기 우리더러 저걸 보라며 한 지점을 가리켰다. 다른 건 몰라도 저걸 안 보고 그냥 지나치는 건 자기도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안내자가 가리키는 곳에는 지팡이처럼 가늘고 긴 돌기둥이 하나 서 있었다. 안내자는 돌기둥에 사람 얼굴이 있다는 표현도 해줬다. 그렇게 보니 진짜 사람 얼굴이 거기에 있었다. 머리에 무슨 모자를 쓴 얼굴이었다. 이렇게까지 챙겨준 안내자에게 우리는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이걸 안 봤으면 정말 큰일날 뻔했다. 나중에 우링위안(무릉원,Wulingyuan) 거리를 다니다 보니 바오펑후가 내세우는 최고의 경치가 바로 이 가늘고 긴 봉우리였다. 바오펑후를 다 돌아봤으면서 나중에,
 
“은영아, 저런 게 있었나?” / “몰라? 선배는 봤어?”
 
이런 덜 떨어진 대화를 나눌 뻔했다. 

 


하선은 승선했던 선착장이 아닌 맞은편에 있는 다른 선착장에서 했다. 우리가 탄 유람선이 하선선착장으로 다가가자 어디선가 한 남자가 나타나 우리 배를 선착장에 붙여줬다. 승선객들이 모두 내리자 배는 원래 있던 반대편 선착장으로 떠났다. 배가 선착장을 떠나자 배를 붙여줬던 남자는 절벽 아래 맨땅 위에 이불 하나만 덮고 앉아서 다음 배를 기다렸다. 이불 속에 뭔가 따뜻한 게 들어 있는 것 같았다. 직접 보진 않았지만 아마 일본에서 경험한 코타츠(こたつ) 같은 것일 것 같다. 우링위안을 돌아다니는 동안 이런 식으로 이불을 덮고 둘러앉아 있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바오펑후(보봉호,Baofeng Lake) 하선선착장은 바오펑후매표소에서 들어와 인도가 시작되는 주출입구와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외길이었다. 그러므로 유람선을 탔다 하면 무조건 인공폭포 아래까지 내려가야 한다. 부탁만 잘 하면 하선선착장에서 내리지 않고 승선선착장에서 내릴 수 있을 것 같던데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승선할 때 표에 구멍을 뚫는 걸로 봐서 유람선을 2 번 타는 건 불가능할 것 같고, 그렇게 되면 하선선착장 뒤편에 있는 멋진 풍경을 감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긴 아예 감상할 수 없는 건 아니다. 인공폭포 아래서부터 절벽을 따라서 난 절벽 같은 계단을 모두 딛고 올라오면 된다. 감상 후에는 그대로 되짚어 내려가야 한다. 어쨌든 바오펑후를 유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오펑후매표소를 통과한 후, 오르막을 오르는 동안 구경할 것 다 구경하고, 마지막으로 유람선을 타는 거다. 유람선을 타고 호수를 도는 데는 1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하선선착장에서 인공폭포 밑까지 내려가는 길이 정말 멋졌다. 우리 같은 독종 여행객 말고 일반 여행객이 바오펑후에서 즐길 수 있는 최고의 경치가 바로 이 구간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 같은 독종 여행객은 바오펑후 반대편에 있는 등산로까지 모두 올라볼 것이기 때문에 감히 이 구간의 경치를 바오펑후 최고의 경치라 칭할 수 없다. 나 때문에 은영이도 어쩔 수 없이 독종 여행객이 됐다. 질질 끌려서라도 가긴 가야 하니까 말이다.
 
하선선착장에서 봉우리를 에돌아가니 수십 미터(Meter) 낭떠러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보이진 않았지만 이 낭떠러지가 인공폭포의 근원이다. 하선선착장과 인공폭포는 봉우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 반대편에 있었다. 길은 수십 미터의 낭떠러지를 교묘하게 엮으며 나 있었다. 경사가 하도 급해 길을 놓을 수 없는 곳에는 산위에팅(산월정,Shanyueting)이라는 3 층 정자를 세워 놓고 빙글빙글 돌면서 내려가게 되어 있었다. 쉽게 이렇게 생각하면 된다. 요즘 기술로 안 되는 게 어디 있겠는가, 절벽을 따라 계단을 쭉 놓았는데 이리저리 놓아가다 보니 도저히 놓을 수 없는 구간이 있었고, 그 곳에는 3 단의 원형계단을 쌓았다. 산위에팅 아래에 옛 계단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이게 참 골 때렸는데, 현 계단이야 너비도 어느 정도 되고 난간이 있어 괜찮았지만, 옛 계단은 절벽에 바짝 붙어 좁게 나 있는데다 난간마저 없어 보고 있자니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내가 지금 저 계단 위에 있는 것도 아닌데 보는 것만으로도 다리가 후들거렸다. 저걸 놓은 사람도, 저걸 이용한 사람도 정말 대단하다.
 
바오펑후를 이루고 있는 봉우리들이 모두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 뒤로 만끽한 장자제(장가계,Zhangjiajie)의 진정한 아름다움에 비하면 신비감이 많이 부족했다. 바오펑후의 오르막을 오르며 가졌던 처음 느낌처럼, 우링위안(무릉원,Wulingyuan)에 도착해서 처음 접한 장자제의 봉우리들이라 경탄해 마지않은 것이지 지금 생각해보면 다른 곳에 비해 그만큼 멋진 풍경은 아니었던 것 같다. 누구라도 장자제에 간다면, 이 바오펑후 때문에 다른 장자제를 덜 돌아보는 누를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바오펑후는 준봉을 구경하는 재미보다 준봉 사이를 유유히 떠다니며 노래를 듣는 여유로움에 무게가 실리는 곳이다. 그런데 이건 어디까지나 일반 여행객 입장이고, 우리 같은 독종 여행객에게는 다르다. 이 이야기는 다음에 계속 이어가야겠다. 할 얘기가 좀 길다. 바오펑후는 바오펑후 입장료 74 위안(원,Yuan)의 37 위안의 가치가 있고, 나머지 37 위안은 반대편 등산로에 있었다. 바오펑후를 풀어 쓰자면, 보배 봉우리 호수다. ‘보석 같은 봉우리들을 거느린 호수’인지, ‘봉우리가 품은 보석 같은 호수’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봉우리와 호수가 어우러진 곳이다.
 
인공폭포 아래에 다 내려와서 은영이와 싸웠다. 이유는 바오펑후의 다른 쪽 볼거리 때문이었다. 은영이는 이제 충분히 봤으니 호텔(Hotel)로 돌아가자는 의견이고, 나는 바오펑후의 반대편 등산로를 올라가자는 의견이었다. 우리 여행의 고질병인 ‘의견대립 후 지루한 협상’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밀고 당기는 지루한 협상 과정에 따라 바오펑후매표소를 나갔다 들어왔다 반복했다. 여행에서만큼은 우리는 정말 최강 절대 상극이다. 

글쓴날 : [10-10-13 21:12] 이한설기자[dondog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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