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원전] 백양사 산책. 윤회와 무한 재생 에너지

 

영광 방문 둘째 날 조선대학교 원자력공학과 이경진 교수님의 원자력 특강을 듣기 위해 우리 일행은 전남 장성군 백양관광호텔에서 하루를 묵었습니다. 새들조차 잠이 덜 깬 오전 다섯 시에 가벼운 차림으로 숙소를 나섭니다.

 

석탄일을 며칠 남겨두지 않아서 백암산 입구에서부터 길게 뻗은 연등이 새벽길을 열어줍니다. 아침 해가 졸린 눈을 비비는 때라 백암산 자락의 윤곽이 또렷하지는 않았지만 신록 사이로 드문드문 솟은 하얀 바위들을 보며 ‘백암산(白巖山)’이란 이름이 명불허전임을 깨닫습니다.

 

1시간가량을 천천히 걸어 백양사 입구에 닿아 백양사의 유래를 살펴봅니다. 백양사는 백제 무왕 33년(632년) 창건한 1400년의 역사를 지닌 사찰이었습니다. 이후 조선 선조 때 환양선사가 영천암에서 금강경을 설법하는데 수많은 사람이 구름처럼 몰려들었습니다.

 

법회가 3일째 되던 날 하얀 양이 내려와 스님의 설법을 들었고, 7일간 계속되는 법회가 끝난 밤 스님의 꿈에 흰 양이 나타나 ‘나는 천상에서 죄를 짓고 양으로 변했는데 이제 스님의 설법을 듣고 다시 환생하여 천국으로 가게 되었다.’고 절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 이튿날 영천암 아래에 흰 양이 죽어 있었으며, 그 이후 절 이름을 백양사라고 고쳐 불렀다고 합니다.

 

 

 

전날 원자력 발전소 견학을 위해 찾았던 영광은 예로부터 쌀, 소금, 누에고치, 눈이 많아 사백(四白)의 고장으로 불렸다고 하던데, 영광과 장성은 그야말로 백(白)의 고장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았네요.

 

부처님 오신 날 단장이 한창인 경내를 둘러보며 아침 향내에 잠시 취해봅니다. 우리나라 조계종에는 전국에 걸쳐 말사를 거느린 큰 사찰인 본사가 25개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백양사·해인사·통도사·송광사·수덕사는 총림이라 불립니다. 총림은 참선수행 전문도량인 선원과 경전 교육기관인 강원, 계율 전문교육기관인 율원 등을 모두 갖춘 사찰인데, 지역으로 치자면 조계사가 서울특별시이고 총림은 광역시라 볼 수 있겠네요.

 

엄지와 검지를 맞대고 있는 불상을 봅니다. 슬프게도, 며칠 전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백양사와 백양관광호텔의 불미스런 승려들의 도박사건이 먼저 떠오릅니다. 그 불상을 보며 지원(指圓)이 돈을 의미한다는 농담을 친구들과 주고받던 어린 시절을 떠올려 봅니다. 존경을 받아야 마땅할 불교계의 큰 어른들의 행태에 뒷맛이 영 찜찜합니다.

 

원래 불상의 지원(指圓)은 우주 만물이 하나이며 순환한다는 윤회 사상을 담고 있습니다. 또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렸다는 유심(唯心)의 표현이기도 하지요. 윤회는 태초에 생겨난 만물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순환한다는 생각을 담고 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몸은 흙으로 돌아가고 그 흙에서 자란 몸은 나무가 되기도 하고 벌레가 되기도 하는 것이지요.

 

 

 

원자력 발전소 견학을 위해 이곳을 찾은 때문일까요? 윤회라는 말을 되뇌다가 그 생각이 ‘에너지의 순환’이라는 데까지 닿습니다. 근대 과학의 아버지들은 물질과 에너지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순환한다는 것을 밝혀냅니다. 불교의 윤회 사상이 과학적으로 증명된 셈이었죠.

 

에너지 순환의 법칙은 에너지 보존의 법칙과 함께 근대 물리학과 화학이 눈부신 발전을 이뤄내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원소 안에 원자와 전자가 있고 원자 안에 중성자와 양성자가 있는데, 이 원소가 물질 특성을 유지하는 것은 일정한 에너지를 담고 있기 때문임이 밝혀집니다.

 

여기에 천재 과학자 아인슈타인의 그 유명한 E=MC2(제곱, 스퀘어) 법칙이 탄생하면서 드디어 원자력 에너지가 인류의 삶에 등장하게 됩니다. E는 에너지, M은 물질의 질량, C는 빛의 속도입니다. 원자의 질량이라는 것은 너무나 미미하지만 그것이 빛의 속도로 이동하게 된다면 그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비록 미세한 원자라 할지라도 핵분열을 통해 중성자가 빛의 속도로 이동하게 된다면 그 때 방출되는 에너지는 엄청난 것이지요.

 

아인슈타인은 원자폭탄의 등장을 지켜보며 자신이 에너지 법칙을 밝혀낸 것을 한 없이 원망하고 후회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우리와 같은 자원 빈국이 에너지 걱정을 덜 하면서 살아가는 혜택을 누리고 있음도 인정할 수밖에 없겠지요. 그날 오전에 있었던 특강에서 이경진 교수님은 원자력의 미래에 대해 설명해 주셨습니다. 인류가 핵분열을 이용하던 단계를 지나 이제는 핵융합 기술의 시대에 들어서고 있다는 것입니다.

 

 

 

핵융합 기술은 핵분열 기술보다 훨씬 더 어려운 과정이지만 핵융합 기술이 완성되면 우리는 핵융합과 핵분열을 반복하는 이른바 무한 재생 에너지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사용량이 30년 정도 밖에 남지 않은 우라늄 등의 핵원료를 끊임없이 재생해서 사용할 수 있게 되고, 기술이 더 발전하면 인간 스스로가 인공 태양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됩니다.

 

물론 아직은 갈 길이 멀지만 핵융합 기술이 완성된다면 그리고 방사능의 문제가 개선된다면 인간이 자원의 고갈과 지구 온난화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문득 영광이라는 지명이 떠올랐습니다. 신령스런 빛이 난다는 영광(靈光)! 광주(光州) 역시 빛고을이라는 의미지요. 원자력 에너지일 수도 있고, 태양 에너지일 수도 있겠지요. 어쨌거나 영광과 전남이 그 이름에 걸맞게 우리나라 백색 에너지의 메카가 되길 빌어봅니다.

 

돌아오는 길에 전북 부안에 들러 신재생에너지테마파크를 견학하였습니다. 값싸고 사용이 편리했던 탄소 연료와 화석 연료로 인간은 지난 1만 년의 시간을 등따숩고 배부르게 살아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자원 고갈과 지구 온난화로 인해 탄소 연료는 그 영광의 시대가 저물고 있습니다. 태양열·태양광·풍력·조력·수력·지력 등을 이제는 우리의 에너지 자원으로 활용하고 재생할 수 있는 기술의 확보가 시급한 시대가 왔습니다.

 

윤회(輪回)는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지 않습니다.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며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생의 유한함과 우주와 시간의 무한함을 받아들이는 것이 윤회입니다. 저는 우리의 제도와 에너지 산업 역시 그러하였으면 합니다. 인간의 편리와 욕구를 위해 자연을 파괴하고 지구를 병들게 하지 않은 삶의 양식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윤회와 에너지 순환이 닮아 있는 세상. 그런 세상의 도래를 꿈꾸며 1박2일의 여정을 마칩니다.

 

 

원작성자 : 라비벨르

원글 : http://blog.daum.net/lavie75/17039632

글쓴날 : [12-06-06 07:50] 파워블로거타임즈기자[pbatimes@pb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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