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원전] 원자력 발전, 무기력과 대안 사이

 

지난 2011년 3월 11일 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큰 충격과 공포를 안겨주었습니다. 1986년 4월 당시 구소련 체르노빌에서 있었던 원전 사고 이후 나타난 수많은 재앙과 환경 부작용을 목도해 온 국민들에게 가까운 일본에서의 원전 사고는 체르노빌의 재앙을 떠올리게 만들기 충분했습니다.

 

대지진과 지진해일로 인한 대재앙으로 이미 수 만 명의 일본인들이 목숨을 잃었지만, 살아남은 자들에게는 슬픔과 원전의 공포가 그대로 남았습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1차적인 원인은 자연 재해였지만, 미숙한 일본 정부와 일본 전력의 초동 대처와 시스템 미비로 피해가 커진 것으로 드러나면서 일본인들의 정부에 대한 불신과 공포는 더 커지게 되었지요.

 

우리 정부와 원전 관련 기관들이 일본 원전 사고가 우리나라에 미칠 영향은 거의 없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고 우리나라 원전은 훨씬 안전하고 우수한 설계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발표했지만, 많은 국민들은 상당 기간 불안에 떨어야 했습니다. 안전 신화로 무장했다던 그리고 우리와 바로 이웃한 일본에서의 어처구니없는 사고였기에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이었지요.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있은 지 1년도 훨씬 더 지났지만, 국민들의 원전에 대한 불안과 의구심은 여전히 잔존하고 있습니다. 제가 영광 원자력 발전소를 방문하던 그 날 인터넷 포털에 올라온 헤드라인 뉴스는 우리나라에서 원전 사고가 발생할 경우 1차로 수만 명이 목숨을 잃고 장기적으로는 수백만 명이 방사능 후유증으로 사망하거나 질병에 걸리게 된다는 환경 단체의 연구 결과 보도였습니다.

 

 

 

사람을 두려움과 불안으로 몰고 가는 것이 있다면 바로 ‘공포(Phobia)’와 ‘위협(Menace)’일 것입니다. 공포라는 것은 실체가 없고 가능성도 낮으며 증명하기도 어렵습니다. 반면 위협은 실체가 있으며 가능성도 높고 입증 가능한 것이지요. 여전히 우리에게 원자력 발전소 사고는 ‘공포’의 형태로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일본 원전 사고는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우리에게도 실존하는 ‘위협’일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지요.

 

저는 원래 지성이라서 피부가 좋은 편에 속합니다. 그런데 그런 제가 지난 해 가을부터 피부 트러블을 겪고 있습니다. 심한 정도는 아니라서 약을 먹거나 바르지는 않고 지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끔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게 혹시 일본 원자력 발전소 사고의 영향은 아닐까?’하고 말이지요. 근거는 전혀 없지요. 제 주변 환경이나 스트레스 탓일 가능성이 더 큽니다. 그러니 저의 의구심은 그저 막연한 공포심일 뿐입니다.

 

공포란 그런 것이지요. 실체도 없고 과학적 근거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위협’보다도 ‘공포’가 인간에겐 더 무섭게 다가올 때가 있지요. 1년에도 수백만 명의 사람이 자동차 사고로 목숨을 잃습니다. 비행기 사고로 목숨을 잃는 사람은 1년에 평균적으로 몇 백 명도 되지 않습니다. 벼락에 맞아 죽는 사람은 1년에 몇 백 명도 되지 않지만, 담배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수천만 명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벼락에 공포심을 느끼고 비행기 사고를 두려워합니다. ‘위협’과 ‘공포’ 사이에 다른 그 무엇이 있기 때문일까요? 제 생각에 위협과 공포를 가르는 가장 큰 기준은 바로 ‘통제 가능성’과 ‘불가피성’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동차 사고는 개인들에게 비행기 사고에 비해 훨씬 엄청난 위협이지만 각 개인들 스스로가 어느 정도 자기 통제를 통해 사고를 예방할 수 있습니다. 담배는 백해무익하지만 스스로 끊을 수만 있다면 흡연의 폐해에서 상당 부분 자유로울 수 있겠지요.

 

하지만 비행기 사고는 승객 스스로 통제할 수 없습니다. 아니 기장조차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으로 항공기는 추락합니다. 그리고 사고가 나면 거의 100% 죽는다고 봐야 합니다. 벼락 역시 마찬가지이겠지요. 재수가 없으면 벼락에 맞아 죽는 겁니다. 그렇기에 항공기 사고나 벼락에 대해 공포를 갖게 됩니다. 그러니 비행기가 추락하거나 벼락에 맞지 않도록 기도하는 것 말고는 없습니다.

 

 

 

원전 사고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국민들이 보았을 때 그 확률이 얼마가 되었건 ‘통제 불가능한 상황’에서는 원전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확률은 적지만 지진이나 해일·적군의 폭격이 그런 상황일 것입니다. 그리고 만에 하나 원전 사고가 났을 때 생겨나는 피해라는 것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고 그 누구도 그 재앙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결국 원전 사고에 대한 ‘공포’는 무기력을 낳고, 공포의 근원인 원전을 폐쇄하자는 논리로 귀결되게 됩니다.

 

그런데 일본 원전 사고가 ‘인재(人災)’였다는 분석은 우리에게 어떤 면에서 희망과 가능성을 제시해 주었다고 봅니다. ‘공포’는 우리에게 무기력을 가져다줍니다. 무기력한 존재는 재앙을 대비하거나 극복할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위협’은 우리가 대안을 마련하도록 북돋아 줍니다. 위협은 통제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지요. 결국 일본 원전 사고는 적절한 통제와 예방 조치가 있었다면 미연에 막을 수 있었다는 것이고, 원전 사고는 미연에 예방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됩니다.

 

제가 영광 원자력 발전소를 방문한 3시간 동안 저는 전혀 불안하거나 두렵지 않았습니다. 첫째, 그곳에 상주하는 수천 명의 우수한 인력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들 스스로가 원전 사고로 인한 가장 1차적이고 심각한 피해자는 바로 자신들이 될 것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분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서라도 안전에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 제가 방문한 그 시간에 영광 원자력 발전소에서 사고가 발생할 확률은 거의 수십조 분의 1 밖에 안 될 터이니 제가 막연히 두려워한다면 그야말로 기우인 것이지요. 또 그 적은 확률조차도 다양한 장치와 대안을 통해 예방되고 있었습니다. 셋째, 그 시간에 원자력 발전소에서 행여 사고가 난다고 해도 제가 할 수 있는 그 무언가는 아무 것도 없으니 걱정이라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겠지요. 다만 원전 내부의 안전장치와 경고 시스템을 믿는 것이 최선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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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성자 : 라비벨르

글쓴날 : [12-06-06 07:45] 파워블로거타임즈기자[pbatimes@pb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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