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가계 유람 - 바오펑후(보봉호) 1/3

 

우리가 흔히 말하는 명승지 장가계의 원 발음은 장자제(장가계,Zhangjiajie)다. 직접 가서 들어보니 ‘장지아지에’로도 들리고, ‘장지아지’로도 들렸다. 그리고 장자제는 명승지이기 이전에 명승지가 속해 있는 도시 이름이기도 하다. 중국 후난성(호남성,Hunansheng)에 속한다. 우리나라에서 명승지 장자제로 가는 방법 중 우리가 선택한 방법은 상하이를 거쳐 장자제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즉, [인천 ? 상하이 ? 장자제]로 들어가서 나올 때는 거꾸로 되짚었다. 애초에 상하이를 돌아보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비행 일정은 장자제로 최대한 빨리 가서 장자제에서 최대한 늦게 나오는 것으로 잡았다.
 
명승지 장자제를 여행하는 동안 우리가 머문 지역은 우링위안(무릉원,Wulingyuan)이었다. 직접 가서 보니 우링위안은 명승지 장자제의 심장부 역할을 하는 조그만 관광도시였다. 조그만 읍내 정도 되는 도시에 건물 대부분은 숙박시설과 상점이었고, 은행도 있어 환전이 가능했다. 환전 얘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중국에서는 웬만하면 공항이나 특급호텔(Hotel)에서 환전하면 안 된다. 공식적으로 15% 가까운 수수료를 내야 한다. 은행이나 호텔마다 정책이 조금씩 다르긴 했지만 적지 않은 수수료가 붙는 건 같았다. 우리가 들고 있던 일본 엔화를 기준으로 볼 때, 공항이나 호텔에서 바꾸려고 보니 6.6xxx 였고, 은행까지 가서 바꾸니 7.3xxx 였다. 이 사실을 안 건 공항에서였다. 공항 환전소에서 환전을 하겠다고 하니, 은행 직원이 직접, 이 곳은 수수료가 비싸니 시내에 가서 환전하라고 일러줬다. 이야기가 잠시 옆으로 샜다. 다시 우링위안 얘기로 돌아와서, 장자제시에서 우링위안까지는 도로표지판 기준으로 약 34 Km 였고, 버스(Bus)로는 40 분 정도 걸렸다.
 
비행기가 장자제공항에 너무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첫날은 하는 수 없이 장자제시에서 잤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우리는 아침을 먹자마자 호텔을 떠나 곧장 시외버스터미널(Terminal)로 걸어갔다. 그리고 우링위안행 버스를 탔다. 장자제시 시외버스터미널이 낡기는 낡았으되 목적지로 가는 버스를 찾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돈은 버스에서 내면 됐다. 이 모든 것을 철두철미한 사전계획 없이 현장에서 즉석에서 찾아다녔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에서 여행계획을 세울 때 장자제시에 관한 여행자료를 찾느라 애를 먹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많은 한국 사람이 장자제에 간다면서 정작 장자제시에 관한 자료는 쓸만한 게 별로 없었다. 내가 못 찾아서 그런가? 장자제시를 누빌 때까지 살짝 걱정이 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직접 겪어보니 모든 것이 기우였다. 장자제시는 그리 크지 않은 도시였고, 사람들이 친절했으며, 교통 관련 제반 시설도 그런대로 잘 갖춰져 있었다. 그렇다고 우리가 언어가 되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장자제를 여행하는 동안 우리가 사용한 중국어라곤 “워팅부동”과 “워쓰한궈런”과 “씨에씨에” 뿐이었다. 차례대로 [나는 못 알아듣습니다], [나는 한국인입니다], [고맙습니다]란 뜻이다. 이 외는 모두 짧은 영어와 눈치 코치였다. 참, 중국에 대한 따뜻한 애정은 갖고 있었다. 한국 사람이 장자제에 가서 안 좋은 인상을 많이 남겼는지 아니면 중국 사람들이 원래 한국 사람을 별로 안 좋아하는지 모르겠지만, 가끔 자기들끼리 우리 앞에 대놓고,
 
“한국인이야, 한국인이야.”
 
하며 숙덕거렸다. 기분이 좀 그랬지만 그래도 우리는 우리가 만든 쓰레기는 모두 챙겨와 호텔에서 버렸고, 웃는 낯으로 그 곳의 규칙을 착실히 따랐다.
 
장자제시에서 우링위안까지 차비는 16 위안(元:원,Yuan)이었다. 그런데 이 차비가 우리가 도착한 다음날부터는 20 위안으로 올라 있었다. 처음에는 버스의 질에 따라 차비가 다르나 하고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춘절기간이라 그런 것 같았다. 택시(Tax)비도 춘절기간에는 거의 배로 오른다고 했다. 상하이에서 겪어보니 대도시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어떻게 하다 보니 이번 여행에서 장자제시와 우링위안을 많이 오갔다. 장자제시와 우링위안을 오가는 버스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자리를 마련해서 해야겠다.
 
우링위안에 도착해서 호텔 수속을 마친 후 짐을 던져놓고 나서니 오전 11 시였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장자제 유람이 시작된 것이다. 전체 여행일정은 5 박 6 일이었지만 한국에서 우링위안까지 가는 시간과 돌아오는 시간을 빼고 나니 정확히 사흘 반이 남았다. 첫날 오후와 그 뒤 사흘이었다. 여기에 고려해야 할 변수가 하나 더 있었으니 바로 명승지 장자제의 특이한 입장료 정책이다. 장자제 중심부는 입장료를 이틀 단위로 받았다. 즉, 입장권을 한 장 끊으면 그걸로 이틀 동안 사용할 수 있단 말이다. 우리는 우링위안매표소부터 가보았다. 혹시 매표소에 가면 다른 형태의 입장권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역시 이틀 단위로 파는 입장권밖에 없었다. 결국 우링위안매표소 앞에서 사흘 더하기 반일의 계획을 확정했다. 계획은 이랬다.
 
[ 첫날 오후는 바오펑후(보봉호,Baofeng Lake)를 돌고, 다음 이틀은 장자제 중심부를 돌고, 마지막 하루는 톈먼산(천문산,Tianmenshan)을 돈다! ]
 
이제 남은 것은 좋은 날씨를 위한 기도뿐이었다. 바오펑후 입장료이나 톈먼산 입장료는 장자제 중심부 입장료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자! 이제 시작이다!

 


우리는 우링위안매표소에서 바오펑후까지 택시를 타고 갔다. 운전사가 미터(Meter)기로 안 가고 그냥 10 위안이라고 했다. 걸어서 갈까도 생각해보았지만 지도를 보니 바오펑후 내에서 걸어야 할 거리도 만만치 않고, 우링위안매표소에서 바오펑후까지도 꽤 먼 길이라 무리가 있었다. 중국에서는 뭐든지 깎아야 한다고 했지만 막상 10 위안이란 말을 듣고 나니 깎을 수 없었다. 택시의 기본료가 낮에는 12 위안, 밤에는 16 위안인 걸 알고 있는데 기본료보다 싸잖아? 대도시와 소도시가 서로 다른 정책을 사용하나? 어쨌든 그냥 10 위안에 갔다. 택시는 우링위안 시가지를 관통해서 바오펑후로 곧장 달려갔다. 춘절 기간이라 가게마다 사람들이 북적북적했다.
 
택시가 바오펑후매표소 앞에서 섰다. 우리는 내려서 표를 끊었다. 입장료는 1 사람당 74 위안이었다. 뭐가 이렇게 비싸?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택시기사가 다시 택시에 타라고 했다. 그러더니 우리를 인도가 시작되는 지점까지 태워줬다. 참 기분이 좋았다. 덕분에 지금 우링위안이 가슴이 따뜻한 곳으로 남아 있다.
 
택시에서 내리니 높다란 인공폭포가 제일 먼저 우리를 반겼다. 2 월 중순이라 날씨가 꽤 춥고, 찾아오는 사람이 거의 없는데도 폭포수는 시원시원하게 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냥 폭포라면 모를까 인공폭포기에 통과! 인공폭포를 지나자 걸음이 팍팍해졌다. 경사가 급한 오르막 포장길이 이어진 것이다. 오랜만에 하는 차가운 날씨 속의 등반이라 꽤 힘들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3 박 4 일의 장자제 여행기간 동안 이 길이 가장 쉬웠던 것 같다. 경사가 좀 있긴 했지만 적어도 걷기 편하고, 그리 길지 않은 포장길이었다. 열심히 올라가는 우리 옆으로 한 중국인이 다가와 가마를 타라고 했다. 그런 걸 탈 리 없는 우리기에 그저 웃으며,
 
“워팅부동.”
 
만 했다. 표정으로는 가마를 안 타게 돼서 정말 미안하다는 뜻을 연신 전해줬다. 솔직한 마음으로 미안하기도 조금 미안했다. 얼음장 같은 날씨에 사람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우리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잠시 그렇게 우리와 보폭을 맞춰 걷던 가마꾼이 포기한 듯 열심히 뛰어 올라갔다. 밑으로 가지 않고 위로 올라가는 게 신기했다. 손님이 있어도 밑에 있지 위에 있진 않을 텐데 말이다. 잠시 후 의문이 풀렸다. 오르막 중턱에 허름하게 세워진 가마꾼 대기소가 있었고, 그 안에서 가마꾼 네댓 명이 둘러 앉아 장기 같은 걸 두고 있었다. 순번을 정해 돌아가면서 대기하는지 바오펑후 입구 바로 옆에는 다른 사람이 서있었다.
 


오르막을 올라가면서 보는 경치는 가히 선경이었다. 그런데 만약 장자제 중심부를 먼저 돌아봤더라면 솔직히,
 
‘에이, 별 것 아니네.’
 
했을 것 같다. 바오펑후의 풍경이 별로였다는 말은 아니고, 그만큼 장자제 중심부의 풍경이 훨씬 멋졌단 말이다. 바오펑후의 풍경은 어디까지나 우리가 우링위안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접한 장자제표 봉우리들이었기에 대단하게 보였다. 나는 매 열 발자국마다 뒤를 돌아보며 오르막을 올라갔고, 은영이는 내가 요청할 때만 빼고 모두 땅만 보며 올라갔다. 그러다 갈림길이 나왔다. 왼쪽으로 가면 바오펑후고, 오른쪽으로 가면 무슨 절이고, 직진하면 아무 의미 없는 포장길이었다. 우리는 바오펑후 방향으로 걸음을 틀었다.
 
바오펑후(보봉호,Baofeng Lake) 매표소에서 갈림길까지는 오르막 포장길이었다. 갈림길에서 바오펑후 방향, 그러니까 왼쪽으로 꺾자 등산로다운 등산로가 시작됐다. 시작부터가 오르막 계단길이라 살짝 걱정했지만 다행히 호수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나는 바오펑후의 비경을 눈보다 귀로 먼저 느낄 수 있었다. 은영이와 나란히 걸어가다가 반대편 봉우리 중턱에 절이 보이길래 잠시 사진기에 담는 사이 은영이가 몇 걸음 앞서 호수에 도착했고, 호수의 풍경에 감탄한 은영이가 탄성을 내질렀기 때문이다.
 
“우~와~ 선배, 빨리 와봐! 빨리 와봐!”
 
은영이의 감탄사에 기대가 너무 부풀었었나 보다. 얼른 모퉁이를 돌아보니, 거기에는 경탄하는 은영이가 너무 촌스러워 보일 정도의 고만고만한 경치가 있을 뿐이었다. 호수는 생각보다 작았다.
 
‘쯧쯧쯧, 내가 너를 끌고 다니면서 보여준 필살기 비경이 얼만데 한낱 이런 경치에 놀라다니……. 내가 너를 그리 키웠냐?’
 
이래서 사람은 전부 다른가 보다. 같은 걸 봐도 같은 걸 보는 게 아니고, 같은 걸 먹어도 같은 맛을 느끼는 게 아니고, 같은 곳을 가도 같은 걸 기억하는 게 아니다. 내가 맛있다고 한 것치고 은영이가 맛있다고 한 게 없고, 내가 좋아하는 것치고 은영이가 좋아하는 게 별로 없다. 물론 반대로도 마찬가지다. 바오펑후매표소에서 호수까지는 30 분 정도 걸렸다.

글쓴날 : [10-10-13 21:07] 이한설기자[dondog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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