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륜산 대흥사] 수려한 명필들의 편액 전람회장

해남대흥사는 서산대사의 가사와 발우, 초의선사의 차향이 스민 유물들이 전시되어있는 성보박물관이 개관되었구요, 그리고 '산사체험 새벽숲길' 템플스테이로 구림구곡 숲길을 천천히 걸으며 자기의 마음 자리를 살피는 곳이라 합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조선시대 명필들의 편액으로 유명하지요.

 


이곳에 흐르는 물이 金塘川이라는데요, 맞배지붕의 저 2층 누각이 침계루 입니다.대웅전으로 통하는출입문격으로 심진교를 통과하여 침계루를 지나면 바로 대웅전 마당이 나옵니다. 대흥사에는 자그마한 다리들이 참 많은데, 허술해 보이는 다리가 없을 정도로 자그마하면서 예뻣습니다.

 

 


원교(員嶠) 이광사(李匡師, 1705~1777)가 쓴 枕溪樓 편액 침계루 건물은 30평의 규모로 윗층에는 법고와 1587년銘 범종ㆍ목어ㆍ운판 등이 있습니다.

 

 


팔작지붕의 대웅보전 양 옆으로 키 큰 종려나무 한그루씩이 받치고 있는 듯 합니다. 이 대웅보전 편액에 얽힌 원교 이광사와 추사 김정희에 얽힌 유명한 이야기가 있어 더 찾게 만들지요.

 

 

원교 이광사의 글씨

 

대웅보전은 침계루에 걸린 대웅전중창 상량문에 1667년 건립되었다고 전해지나, 조각기법 등으로 보아 1899년화재후, 육봉선사의 발원으로 중건된 것으로 보여진다고 적혔어요.

 

제주도로 유배를 가는 길에 친구 초의를 만나러 온 추사 김정희가 이 글씨를 보고 "아직도 이런 촌스런 글씨를 달아두느냐"며 자신이 글을 써서 바꿔 달게 했다죠. 그러나 유배생활을 마치고 다시 들러 "지난번에는 내가 잘못 생각 했다"며 다시 이광사의 현판으로 바꾸어 걸게 했다는 명필의 유명한 이야기가 회자되고 있습니다.

 

 

무량수각(無量壽閣) : 제주도 유배중의 추사 김정희 글씨 백

설당 : 구한말 명신으로 미불체를 구사한 해사(海士) 김성근(金聲根)글씨

 


명부전일까요? 잘 안보이지만 해사 김성근의 글씨라 합니다. 그가 전라도 관찰사로 재직중일 때 대흥사를 위한 편액을 많이 썼나봅니다.

 

 


응진당ㆍ산신각을 한 채에 연이어 수용한 점이 특이 합니다. 응진전 편액은 백설당 편액을 쓴 해사 김성근의 글씨라 하고, 그 옆에 윤장대가 세워져 있습니다. 한번 돌릴 때마다 불경을 읽는다는 라마교의 마니차와 비슷한 성격이죠.

 


금당천

 


두륜산 등산로 두륜산내 암자가 무척 많은데, 남미륵암, 북미륵암, 진불암, 상원암, 일지암이 있습니다. 남미륵암에도 마애불이 있었으나 전각이 없었기에 이끼가 끼여 식별이 어렵다 하고 북미륵암에는 국보 308호인 마애여래좌상이 있습니다. 저도 참 보고픈 분인데, 등산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11세기 고려시대 마애여래좌상, 국보 308호

 

초의선사의 一枝庵

 

초당 일지암은초의선사가수도하기위해서 지은암자로,초의스님이열반에들자 폐허가 되었는데, 40 여년전 중건하였고, 위의 초정은 '1980년 한국다인회회원들이 다도의 중흥조초의가 기거했던 일지암을 기념하기 위해 복원하여 놓은 것' 이라 합니다. 지도의 만일암터에 '천년수' 표기가 있죠. 천동이와 천녀의 사랑 전설이 서려있다는 수령이 1200년-1500년 느티나무랍니다.

 

 


건물 뒷태가 무척 아름답습니다. 표충사 경내로 들어갑니다.

 

 


보련각은 서산대사를 모신 사당으로 조선 현종10년(1669년)에 건립되었습니다. 서산대사는 어려서 고아로 자란 분인데, 출가하여 임진왜란때 승병을 일으켜, 왜적을 격퇴한 스님이죠.

 

 


선조 37년 묘향산 원적암에서 입적을 앞두고 마지막 설법을 한 서산대사는 제자인 사명대사 유정과 뇌묵당 처영스님께 '재난에 미치지않고 오래도록 더렵혀 지지 않을 곳'이라며 해남 대둔사에 자신의 가사와 발우를 가져다 두라고 유언했답니다.

 

두 제자스님은 스승의 유언대로 했고, 그 후 대둔사는 13 대종정과 13 대강사를 배출하는 호남의 대명찰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대둔사가 대흥사로 된 모양얘요. 일제강점기에 사찰명이 바뀌었답니다.

 

 

정조대왕의 글씨 표충사, (전라남도 기념물 제19호)

 

이 건물은 조선 정조12년(1778년)에 대사의 높은 공을 기리기 위해 왕이 친히 사액을 내리고, 직접 정조대왕이 표충사라는 현판 글씨까지 썼으며, 나라에서 세금을 면제해주는 특혜를 받았습니다. 정조대왕의 글씨가무장을 위해 쓴 힘이 있는 필력을 보여주는 듯 하지요.

 

표충사 편액 옆에는 어서각이라는 편액이 있습니다. 대흥사 홈페이지에는 어서각도 정조대왕의 사액이라 적혔는데, 글씨가 달라서 애매하군요.전각내부에는 서산대사, 제자 유정. 처영의 진영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표충비각, 두개의 비석이 있더군요. 정조대왕의 사액을 받은후, 관아의 보호를 받으면서 선암사, 송광사와 견줄만한 지위로 향상되었다고 합니다. 서산대사의 유품인 금란가사, 발우와 정조 임금이 하사한 금병풍 등이 유물관에 전시되어 있다는데, 못보고 왔습니다.표충사는 儒家 형식의 사당을 꾸며 매년 서산대사의 가르침을 받드는 제례와 추모행사를 거행하고 있습니다.

 

원글 : http://blog.joinsmsn.com/liberum/12546693

원작성자 : 손금지(리버룸)

글쓴날 : [12-02-11 18:45] 손금지기자[Liberum@hitel.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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