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박물관 명동이야기] 지금 그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역사박물관에서는 서울 반세기 종합전으로 '지금 그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명동이야기가 3월 31일까지 기획전시되고 있다. 지난 저녁부터 내린 눈이 꽁꽁 얼어붙었지만, 1950년대부터 80년대까지의 내가 모르는 명동 추억은 전설로 내려와 쌓이고, 내가 아는 명동 부분부터는 동시대인의 공감으로 닥아왔다.

 


 

1950년-60년대 명동은 문화 예술의 전성기였다고 한다.신문기자 이봉구는문인, 화가, 연극인, 음악가 등 수많은 예술인과 교류를 하면서 '명동백작'이되었다. 명동의 술집과 다방, 음악감상실이 일 없어도 기웃거리며 모여드는 장소였으므로모든 길은 명동으로 통했던 시절이었다. 원고청탁과 취재, 화가나 조각가에겐 전시회 장소로, 모든 것이 명동 술집과 다방에서 이루어졌다.

 

 


이진섭(왼)과 박인환(오른) 1956년 이른 봄 저녁, 명동'경상도집'에 모여 앉은 박인환, 이진섭, 송지영, 영화배우 나애심이 술을 마시고 있다가 박인환이 즉석에서 시를 썼고, 그 시를 넘겨다 보고 있던 이진섭도 그 즉석에서 작곡을 하고 나애심은 흥얼 흥얼 콧노래로 그 곡을 부르기 시작 했다로 알려진 명동샹숑이라 불리는 '세월이 가면'이 박인희의 애잔한 음색으로 전시회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문학소녀들에 둘러싸인 공초 오상순

 


그림. 순애보 작가 박계주

 

명동길을 걷는 이봉구, 조병화, 천경자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동가숙 서가식하며 정처없이 떠돌던 때였으므로 원고료라도 받은 사람이밥을 사면 따라가 먹고, 잘 곳도 없는 사람들은 눈치 보다가 술김에 누군가 우리집에 가서 자자 하면 우르르 따라나섰던 시절이었다고 평론가가 회상한다.

 

김수영은 절대 원고료를 다 털리지 않고 한쪽 포켓에 얼마간을 감춰뒀다가 집으로 가져 갔다는 뒷담이 있고, 화가 이중섭은 일본의 아내가 어렵게 보낸 목돈까지 가난뱅이 친구들께 다 털려버렸다는 고은이 쓴 이중섭 전기가 생각난다.

 

명동의종합예술의 메카가 되었던 술집과 다방은 출판기념회 장소로, 화랑이 없던 시절이니 화가들의 개인전 그룹전의 장소, 누추한 셋방집 대신 응접실로 접대실로 문화살롱이 되고 울분의 토론장이 되었다.

 

 


명동의 '경상도집', '술집 포엠'을 거쳐 최불암씨의 모친 이명숙여사가 운영하던'은성주점' 시대로 넘어왔다. 


최불암씨는 말한다. "변영로 선생 같은 시인도 많이 오시던 곳이고 기자들도 많았고. 아주 기자들 판이었지, 뭐.” 김수영, 박인환, 변영로, 전혜린, 천상병 같은 문화예술인들이 이곳에서 막걸리 잔을 기울였다. 지금도 명동에는 ‘은성주점터’라는 표지석이 있다. (유네스코 비스듬히 맞은 편자리)

 

 


명동 문화예술시대, 그들이 선호해서 모였던 다방들 1930년대 시인 이상이 우리말로 보리를 뜻하는‘무기’라는 다방을 명동에 열면서 예술인이 모여들었다. 이른바‘다방 문화’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일본인들이 물러간 후 1960년대까지 명동은 문화예술인들이 활보하던 대표적 공간이었다. 문인, 화가, 연극인, 음악인 등 수많은 예술가들이 명동에서 그들의 작품을 탄생시켰고 서로의 작품에 힘을 불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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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싸롱(EBS) 당시 예술인들의 아지트로 유명했던 ‘다방’으로는 ‘모나리자’ ‘문예싸롱’ ‘동방회관’ ‘청동다방’‘돌체’ 등을 꼽을 수 있다.

 

‘문예싸롱’에는 당시 황순원, 김동리, 서정주, 조연현 등 기성 문단을 주름잡고 있었던 문인들이 출입하던 다방으로 문단추천, 원고청탁 및 사교, 문단논쟁, 연애, 싸움질이 벌어졌던 한국문단비사가 전해진다. 수필가 전혜린은 독일 유학을 떠나기 전까지 돌체다방을 드나들었다고 한다.

 

 


명동에 최초로 문을 연 양장점은 '한양장점(제일백화점 옆)'이었다. 최경자여사의 '국제양장사'가 제 2호였다. 1950년대에서 60년대까지 유명한 양장점은 송옥, 노라로, 아리사 양장점,마드모아젤, 노블, 영광사, 보그(한희도) 등이었다.

 

 

1969년 극장식 다방 까페 떼아트르 등장

 


한창 때의 연극 단원들 1980년대 후반부터 연극인들은 대거 대학로로 이동하고, 통기타 다방들은 무교동으로 이전하면서 타오르던 불꽃은 명동에서 꺼져갔다. 1960년대 말부터 불기 시작한 명동 재개발 바람은 지가 상승을 부추겼고, 재정난에 허덕이게 된 다방들은 하나 둘씩 사라지게 되어 예술인들은 발 붙일 곳이 없어져 갔다. 1973년 국립극장마저 남산으로 이전해 가자, 한국의 몽마르뜨는 빛을 잃고 말았다.

 

http://blog.joinsmsn.com/liberum/12536278 우리의 전혜린이 죽었다. 은성주점 편

http://blog.joinsmsn.com/liberum/12538447[명동이야기] 다방시대~까페 떼아트르편

 

원작성자 : 손금지(리버룸)

글쓴날 : [12-02-11 18:31] 손금지기자[Liberum@hitel.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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