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2-국가브랜드위원회 이배용위원장이 들려주는 조선왕조 그 찬란한 역사 속으로~

1편에 이어 계속 됩니다.

 

근정전 옆으로는 임금이 평소 업무를 보던 사정전(思政殿) 있습니다.

 

사정전 내부에는 용 두마리가 여의주를 희롱하는 벽화인 운룡도가 그려져 있고, 그 아래에 임금의 자리가 있어요.사정전은 임금이 생각하는 정치를 하라는 의미를 담은 이름 이라고 하는데요.일상의 업무를 보는 편전 이라고 하는데요.

 

사정전과 사정문의 이름은 정도전이 지은 것으로 '천하의 이치를 생각하면 얻고 생각하지 않으면 잃는다 임금이 진실로 깊이 생각하고 세밀히 살피지 않으면 어떻게 사리를 분별할 수 있겠는가 더욱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해시계

 

세종께서 만든 해시계인데요.화살표의 뾰족한 그림자가 시간을 정확하게 가르키고 절기 또한 가르킨다고 합니다.정말 과학적이고 정교한 구조로 되어 있어요.다만 밤이나 비가 오는 날은 해시계를 볼 수 없으니 물시계 또한 만드셨다고 해요.어느 서양의 시계보다도 발달된 우리 문화의 자랑스러운 유산 이라고 합니다.

 

 

왕의 침전인 강녕전(康寧殿)

 

사정전을 뒤돌아서 향오문을 지나서 있는데 왕의 침전인 강녕전이 있고 그 뒤로는 왕비의 침전인 교태전이 있다고 합니다.우리나라 전통의 다섯가지 복인 오복이 있는데 오래 살 수(壽), 부귀할 부(富),  건강하고 평안할 강녕(康寧), 덕을 배풀기를 좋아할 유호덕(攸好德), 천수를 다 누리라는 고종명(考終命) 인데요.이 침전에는 오북 중 하나인 건강하고 평안하라는 뜻의 강녕 이라는 이름을 붙였답니다.

 

이 강녕전을 비롯 교태전 등 침전이나 왕비전에는 지붕에 용마루가 없는데요.아래 사진이랑 비교하시면 보이실거에요.

 

 

다른 건물의 지붕 위쪽을 보면 가로로 하얀 턱 같은 용마루 부분이 있어요.임금의 침전에 용마루가 없는 건 지붕이 차단되지 않고 넘어가는 모양이라서 영속성의 의미가 있고 또 하나는 임금이 용이므로 또 하나의 용이 용의 기를 차단하는 걸 막기 위해서 없앴다고도 하네요.

 

 

왕비의 침전인 교태전(交泰殿)

 

왕비의 침전으로 임금이 가끔 납시는 곳 이기도 합니다.교태 라는 말은 주역의 쾌 이름 중 하나로 음양의 조화를 의미 한답니다.

 

임금이 이 교태전에 갈때는 합궁일 등을 잡아서 가야하기 때문에 자유로운 곳은 아니었는데 임금이 오지 않아도 동쪽방은 임금이 오실때만 사용하도록 늘 비우고 관리를 해두었다고 하네요.왕비는 평소에는 서쪽방을 사용했다고 해요.

 

교태전 뒤쪽으로는 아미산 이라고 중국의 가장 아름답다는 유명한 산 이름을 본딴 작은 동산이 있습니다.

 

 

뒤쪽으로는 선장문 있구요. 함원전과 아미산을 연결하는 문이라고 하는데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거 같았어요.

 

 

교태전 뒤쪽의 아미산과 굴뚝

 

교태전의 마루에서 뒤쪽으로 보이기도 하는 곳 입니다.인공적으로 조성한 작은 동산과 교태전의 온돌 굴뚝이 이 곳에 있어요.노을이 떨어지는 연못 이라는 상상력을 주는 이름을 붙였고 굴뚝에는 불가사리나 박쥐 등을 새겨 넣었다고 해요.모두 불을 막고 복을 주는 의미를 담아서 부조를 새겨 넣은 굴뚝이 유명하다고 합니다.이배용 위원장님의 설명에 의하면 왕비의 마음을 다스리는 인성교육의 장이라고도 하시네요.

 

 

아미산 이라는 이름답게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했는데 그 옛날 이 아미산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이었을까 상상을 해봅니다.사실 관광객들이 무척 많았는데도 이 교태전 등 뒤쪽까지는 오시는 분들이 거의 없는 거 같더라구요.

 

 

경회루(慶會樓) ㅡ  국보 제224호

 

조선왕조가 1392년에 건국, 1395년 경복궁 완성되고 1411년 태종 임금때 이 경회루가 건축 되었다고 합니다.왕자의 난과 2차 왕자의 난 끝에 임금이 된 태종이 1405년 창덕궁을 지어서 그리로 들어갔다가 정궁인 경복궁으로 입성하며 첫번째 한 일이 이 경회루를 지은 거라고 합니다.하늘이 연못에 비추어 하늘의 기를 받는 뜻이 있다고 해요.

 

본래의 섬의 모양은 둥근 형태이고 겉의 연못은 네모의 모양이었다고 해요.연못에 섬을 내는 건 연못의 물이 고여있는 상태가 아닌 섬을 따라 돌아치게 해서 물이 썩는 걸 방지하는 과학적 의미도 숨어 있다고 해요.

 

지붕 위쪽에 맨 위쪽 모서리의 취두 라는 부분이 있어서 독수리 등이 있는데 방화수의 상징을 하고 있구요.용두가 있어서 세월에 따라 건물이 망가지는 걸 막는 기능을 하구요.그 아래 지붕의 버선코처럼 뾰족한 부분에는 잡상들이 있습니다.경회루에는 경복궁의 건물들 중 가장 잡상이 많은, 11개의 잡상이 있답니다.

 

 

이 사진처럼 궁월의 다른 건물 지붕 위를 보면 잡상(雜狀) 이라고 하는 작은 상들이 있는데요.중국의 설화 서유기의 등장인물인 삼장법사, 손오공 등 이라고 합니다.잡상은 손오공에 세상의 환란을 극복했다는 의미로 모든 환란을 잘 극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져 있다고 해요.

 

 

다시 경회루로 돌아와서 경회루를 떠받치고 있는 아래쪽의 기둥들은 24개의 네모난 모양의 뿔대기둥이 가장자리를 받치고 안쪽은 둥근 모양의 24개의 기둥이 있는데 이는 합쳐서 48개로 우리나라의 48절기를 의미한다네요.

 

2층에서는 임금이 시회를 베풀고 각종 정무를 논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외국에서 온 사신 중 하나는 조선 제일의 장관은 달빛에 비친 경회루 라고 극찬을 했다고 하네요.언젠가 밤의 경회루도 꼭 보고 싶습니다.또한 이 경회루는 단종이 세조에게 옥쇄를 강제로 넘긴 장소이기도 하답니다.사람은 이제 없지만 많은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는 걸 기억하세요.

 

 

경회루 앞의 이 건물은 집현전 이었던 곳으로 나중에 수정전 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는데요.세종이 1418년 22살의 나이로 즉위하고 지었다는데요.개화기때 군국기무처의 역할을 했던 곳이기도 하구요.

 

1456년 세조가 왕위에 올라 집현전을 폐지하였고 1592년 임진왜란 때 건물은 불타서 버려져 있다가1867년 고종이 건물을 다시 짓고 이름을 수정전 이라고 했다고 하네요.지금은 경회루 앞에 이 수정전 하나만 남아 있지만 예전에는 이 일대에 내각 건물들이 꽉 들어차 있었다고 합니다.

 

 

수정전 옆으로 너른 잔디밭이 조성되어 있습니다.빈 공터인듯 하지만 원래는 각종 내각 건물들이 꽉 들어차 있었는데일제시대때 수많은 건물들이 헐리고 일부는 건물채로 떼어서 일본으로 마구잡이로 가져가버렸다고 해요.절대 빈 공터가 아니었다는 점 아셨으면 좋겠어요.

 

 

수정전의 옆을 보면 이렇게 원래는 옆 건물과 연결되었을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번성할때는 궁녀만 700여명에 신하들까지 더하면 천여명이 드나들던 곳이었으니 어느 정도 였을지 상상을 할 수 있죠.복원 계획이 있으니 앞으로 조금씩 더 옛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듯 합니다.

 

3편에 계속 됩니다.

 

 

마야의 놀이터

www.happy-maya.com 

blog.naver.com/sthe2002 

글쓴날 : [11-05-11 15:02] 오지영기자[sthe2002@naver.com]
오지영 기자의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