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8경 고려산 낙조봉 낙조대 일몰

강화도 고려산은 서쪽에 위치한 만큼 낙조를 감상할 곳이 여럿 있는데, 강화8경 중 하나이자 이름도 참으로 직설적인 낙조봉 낙조대가 그 중에서도 으뜸이라 알려져 있다. 고려산의 정상에서 전망대를 거쳐 낙조봉까지 가는 길에는 울창한 솔숲이 이어진다. 적당한 그늘의 숲은 숨차게 걷던 걸음을 느긋하게 만들고, 송골송골 맺혔던 땀도 식혀준다. 소나무 중간 중간을 잘 살펴보면 흙에 반쯤 내려앉은 돌무더기를 발견하는데 그 옆에는 친절하게 세계문화유산 번호가 매겨져 있다. 바로 고려산에 대거 잠들어 있는 고인돌 무덤들이다. 고려산의 고인돌군은 서쪽 능선을 따라 해발 250~350m 지점에 분포되어 있는데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고인돌 무덤보다 높은 고도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고인돌 무덤 보랴 소나무 숲 걸으랴 두리번거리다 보면 어느새 탁 트인 벌판이 나타나고 그 아래로 길쭉하니 마을 하나와 바둑판모양처럼 잘 정리된 들판, 산등성이들이 출렁이고, 그 너머로 연무로 희미해진 바다가 드러났다. 마침내 낙조봉에 도착이다. 해발 343m의 낙조봉은 능선을 따라 억새밭이 펼쳐져 있어 가을이면 그 황금물결을 볼 수 있고, 아래쪽으로 내려서면 적석사와 만난다.

 

 

멋진 낙조를 보려면 낙조봉도 좋지만 그것보다 약 100m 아래의 낙조대가 적격이다. 낙조대 가는 길은 나무데크가 깔려 있어 걷기도 편하고 역시나 고려산의 연분홍 미소인 진달래가 한들한들 피어 있어 그 아름다움이 더한다. 낙조대에 도착하면 먼저 인자한 미소를 짓고 앉아 있는 관세음보살상과 만날 수 있다. 불자들이 올라와 수행을 하기 위한 장소였던 곳을 낙조대로 만들어 둔 곳이라 이왕이면 조용하게 머물다 가기를 바란다는 안내문도 적혀 있다. 낙조봉의 조망도 좋았지만 좀 더 탁 트인 낙조대는 역시 석양을 감상하기에 더없이 좋다.

 





 

 

푸르렀던 하늘이 차츰 노란 빛을 띠고, 색감이 짙어지며 점점 붉어져 간다. 높았던 해는 아래를 향하고, 어느 순간 해는 서산에 걸리었다. 본래 예상했던 해의 위치는 섬과 섬, 바다와 맞닿는 곳이었지만 아무래도 시기를 잘못 택했는지 해가 산자락과 만나 버렸다. 덕분에 기대했던 바다로 몰락하는 일몰은 볼 수 없었지만 맑은 날이 별로 없어 이런 낙조 보기 힘들다는 말에 아쉬움이 스르륵 사그라진다.

 



 

 

참 이상하게도 나는 일출보다는 일몰을 더 좋아한다.

떠오르는 해는 희망을 말하고, 지는 해는 반성을 말한다 하는데 난 내다 보는 것보다 돌아보는 것을 더 좋아하던가 하면 또 썩 그렇지도 않는데 말이다. 조금 더 고민해보니 아마 게으른 내 성품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여명부터 챙겨 보려면 아침 일찍 부지런히 일어나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에 움직이기 힘이 드는데, 낙조는 하루를 느긋하게 즐기고 어슬렁거리며 찾아가 보기 좋기 때문이다.

 

 

그러니 느긋하고 유유자적한 나에겐 아무래도 일몰이 더 맞는 게 아닐까. 좀 더 각색해보자면 차츰 밝아오는 해보다는 저물어 아주 사라진 후에 남겨진 해질녘이 더 낭만적이라 감수성이 예민한 나에겐 더 구색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러저러한 생각에 골몰해 있자니 어느새 서산에 걸렸던 해도 어느덧 내려앉고 하늘은 자줏빛에서 보랏빛으로 다시 남색으로 물들어 간다. 그때마다 기온은 점차 뚝뚝 떨어져 가고, 탁 트인 만큼이나 거침없이 몰아치는 바람을 피해 적석사 방면으로 내려선다.

 

 

적석사에서 고천리까지는 약 30분 정도 소요되는데 길이 아주 경사가 심하다. 구불구불 구불거리는 시멘트 길을 술에 취한 마냥 갈지자 걷듯 내려오는데도 거의 다 내려설 즈음에는 무릎이 떨릴 지경이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차를 타고 향한 곳은 외포리에 위치한 회집거리. 강화도에 왔으니 강화의 특산 음식이라는 밴댕이회무침을 먹어봐야지.

 

 

 

밑반찬으로 나온 밴댕이젓갈에, 게장에, 갖은 무침에 이어 적양배추며 오이며 당근 등과 버무린 밴댕이회무침이 큰 접시에 가득 담겨져 나왔다. 새콤달콤하면서도 전혀 비리지 않은 회무침은 처음 밴댕이회를 먹어보는 내 입을 사로잡았고, 강화 막걸리 한 모금 회 한 젓가락 넘어갈 때마다 절로 웃음소리가 커져간다.

 



 

 

고려산 진달래부터 시작하여 낙조봉에서 일몰도 보고, 마무리로 저녁으로 밴댕이회무침에 막걸리까지 마셔줬으니 이만하면 강화도 고려산 인근에서 즐길 수 있는 것은 모두 끝마쳤겠다싶지만 아무래도 진달래가 덜 핀 것이 영 아쉽다. 4월 30일에서 5월 1일까지 하는 강화고인돌문화 축제 때 다시 고려산에 들린다면 진달래로 온천지가 불긋한 능선과 고인돌도 함께 볼 수 있지 않을까.

 

글쓴날 : [11-04-26 13:33] 황희숙기자[maskara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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