쿤스트할레 광주, 예술과 생활의 오묘한 조화(2) | |
컨테이너 석관은 길이 6m, 넓이 2.4m, 높이 2.6m의 크기로 4t 무게가 나간다고 합니다. 2004년 중국에서 처음 만들어졌고, 2006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수정되었죠. 작품은 전 대륙의 산자와 죽은자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하며, 다른 컨테이너와 함께 지구를 떠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컨테이너는 글로벌화된 시장의 예술적 수요를 충족시키도록 했습니다.
구조물의 내부를 보면 벽과 천장, 방문객들이 걸을 수 있는 바닥 모두가 1만 7000픽셀의 LED 조명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용자들은 핸드폰, 터치 스크린, 웹 브라우저들을 통해 디지털 유해를 담고 있는 알카늄 캡슐과 소통할 수 있답니다.
이 작품의 이름은 <타마다>라고 합니다. 16개의 공이 하나의 인간으로 보면 된다고 하더군요. 하나의 인간과 사람이지만 이 안에는 여러가지의 영혼,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움직이는 것들도 있고, 가만히 있는 것들도 있습니다. 움직이는 것들이 가만히 있는 것과 부딪히면 서로 성격이 충돌하는 그런 것을 뜻합니다. 이 안에는 김중만 사진작가의 목소리가 담겨져 있습니다. 목소리와 영혼은 볼 수 없는 것이지만, 볼 수 있도록 작품을 설정했죠. 목소리는 한 번 내뱉으면 없어지는 것인데, 저렇게 안에 들면 보존되는 특성이 있습니다.
이토이 히스토리라는 작품입니다. 1994년 부터 작가 7명으로 시작을 했답니다. 스위스 이토이 코퍼레이션이 컨테이너 박스를 가지고 작업을 했습니다. 문화 공간을 컨테이너 박스로 이용하고 싶다며 1996년 부터 컨테이너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답니다.
컨테이너 박스 전시의 편리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진입니다. 초원 한 가운데에 비스듬히 설치한 적도 있었고, 광장 위에 자체적으로 컨네이너 박스를 올려놓으며 하나의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이토이가 2007년 상장될 때의 그 증서입니다. 쿤스트할레에 전시되어 있으니까 가치가 크게 느껴집니다.
이 사진은 미국 네바다 사막에서 있었던 '버닝맨 축제' 현장 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벌판에서 사람들이 모여서 10일 동안 도시가 되고 10일이 지나면 아무것도 없는 축제가 있었다고 하네요. 당시 이토이 작가들이 참여해서 컨테이너 박스를 설치했습니다. 사진 오른쪽에는 구글어스를 통해서 촬영한 사진이라고 합니다. 이것도 하나의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죠.
사진속에 있는 사람들이 이토이 작가들입니다. 이토이 작가들은 작업을 할때 주황색, 검정색, 흰색 색깔의 옷을 입는다고 합니다. 옷, 양말, 신발, 속옷도 마찬가지라고 하네요. 자신들만의 흥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초기에는 7명 전원이 삭발을 했던 에피소드가 있었습니다. 사진 오른쪽 밑에 있는 작가 분은 여성입니다. 이 사진을 보면서 이토이가 예술에 대한 흥미를 즐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뜻보면 자판기를 형성화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이토이가 전하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왼쪽 사진은 작품의 윗쪽, 오른쪽 사진은 작품 아랫쪽입니다. 위에 있는 것은 진통제입니다. 예술을 어렵게 생각하는 분들을 위해서 진통제를 두었죠. 그 밑에 있는 것이 아까 봤던 가짜 돈 입니다. 중국에서 누군가 죽으면 불멸을 위해서 가짜 돈을 태운다고 합니다. 그래서 종이를 자신들 나름대로 바꾸었다고 하네요. 아랫쪽에 있는 것은 주황색 물감입니다. 폭발적인 예술을 하라는 뜻에서 넣었다고 합니다. 진통제와 가짜돈이 관람객들과의 거리감을 좁히는 도구였다면, 주황색 물감은 이토이가 좋은 작품 발굴을 위해 얼마만큼 노력하고 에너지를 충전하는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쿤스트할레 뒷쪽 바깥 공간은 전망대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공사현장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저 곳이 완공되면 광주 사람들은 멋진 문화 혜택을 누릴 것이라는 부러운 생각이 듭니다. 개인적으로도 언젠가 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쿤스트할레에서 작품들을 둘러본 뒤에 구도청의 모습을 찍었습니다. 컨테이너 바깥으로 나오면서 구도청을 보니까 예술이 우리 곁에 가까이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단순히 음악과 미술만이 예술이 아니라, 우리 일상 생활의 사소한 존재와 인생 관념 자체가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토이의 작품을 통해 깨달았고 쿤스트할레를 통해 각인됐습니다. 물론 예술이라는 것이 때로는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작가가 전하는 메시지를 인지하면 '아, 그렇구나!'라는 감탄사를 떠올릴 수 밖에 없습니다. 쿤스트할레 광주를 통해서 예술과의 거리감을 좁힐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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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날 : [11-04-25 19:35] | 이상규기자[puhahaph@nate.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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