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만 USS Arizona Memor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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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12월 7일, 일요일 아침 일본군의 진주만 폭격으로 USS 아리조나함에있었던 1177명이 사망했다는 전쟁 유적지에 왔다. 어쩌면, 이로 인한 미국의참전 결심 → 원폭 투하 → 일본의 무조건 항복 → 한반도 해방과 독립으로 이어지는우리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는 현장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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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만 폭격일 열흘전인 11월 26일, 6척의 항공모함을 포함 33척의 전함과 보조함으로 구성된 일본의 공격함대는 일본의 북부로부터 하와이제도로 항해해 왔다.전함들은 오아후 북쪽 230마일에 위치한 발진기지에 도착했다. 새벽 6시 전투기, 폭격기 그리고 뇌격기 등의 첫비행단이 발진했다고 한다.

 

당시 진주만에는 미 태평양 함대의 함정들이 정박하고 있었다. 9척 중 7척의 함정들은 포드섬 남쪽해안의 전함선착장에 일열로 묶여져 있었다.아침 7시 몇분전 오파나 포인트에 있는 레이다 기지에서는 북쪽으로부터 다가오고 있는 일단의 거대 비행단의 신호를 포착했다.

 

그러나 항모 엔터프라이즈호로 부터 비행해 들어오는 항공기들이거나 본토로부터 올 것으로 예정되어 있는 B-17기 대형편대일 것으로 생각되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첫번째 일본항공대의 물결은 아침 7시 55분 직전에 그들의 목표지점에 도착했다. 일본군 지휘관, 미쯔오 후치다 사령관은 공격이 시작되었고 완전한 기습공격이 이루어졌다는 뜻의 암호통신문 "도 도 도"와 "도라 도라 도라"를 함대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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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닻 모형의 기념탑

 

USS 아리조나함의 사망자가 컸던 이유는 함 내부에 병사들이 많았고, 일본군 폭격이 거의 수직적으로 무기고를 폭파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USS 아리조나호는 1760파운드의 폭탄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그시각 오아후섬의 다른 군사시설들도 일본군의 공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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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자 센터 보도에 깔려있는 대형 태평양

 

지도진주만 기념관에 입장하기 위해선 아주 작은 핸드백도 안되는데,나는 끝날 시간이 다 되었기에, 시큐리티아저씨에게 손가방을 열어 보이고, 애교를 부려 통과할 수 있었다.

 

실내로 들어서면 번호가 적힌 티켓을 주는데 이 티켓은 20분짜리 비디오를 관람하고 기념관으로 가는 보트를 타기 위한 일종의 스케쥴표와 같다. 자신의 번호에 맞는 시간대를 확인한 후, 영화관람 약 10분 전에 미리 가서 줄을 선다. 시간만 된다면 모든 건 무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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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만 공격당시의 상황을 설명해 놓은 팜플렛도 7개국어로 되어있다. 폭격을 받았던 41년도 12월 7일의 이야기에서 부터 방문객 센터에 대한 유용한 정보가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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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꽃-Plume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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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향기가 너무 좋다. 이 꽃으로 레이도 만들어 걸어주고, 상인이나 관광객들이 이 꽃을 머리에 꽂는다. 하와이 항공의 여승무원들까지 하얀 플루메리아를 꽂고 있었다. 왼쪽 귀 위에 꽂으면 싱글, 오른쪽이면 기혼이거나 애인이 있다는 뜻, 가끔 뒷머리에 꽂은 여인도 있는데, 아리송한 상태라 보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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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조나함 내부에는 기념 박물관이 있어서, 빛바랜 흑백사진과 사건 당시의 해군들 생활상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옷, 트로피, 일기장 등이 있다고 하는데, 5시가 넘어서 들어갈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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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만은 릴리우오칼라니 여왕이 선대 칼라카우아왕이 미 해군기지로내줬던 진주만 조차권을 되찾아오려다가 미국 자본가들과 정치반대 세력에 갈등을 빚고 패배한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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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에 격침된 미군 52척의 잠수함과 3500명 이상의 잠수함 승무원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워터프론트 메모리얼'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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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들은 이름을 남긴히어로들의 스토리를 찬찬히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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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진주만 공격에 사용된 폭탄이 일제강점기 시대 인천에서 제작되었다고 한다. 공출해 간 학교 종이나, 놋그릇, 수저가 거기 들어간 모양 아닌가. 진주만에는 일본인 관광객들도 많이 온다고 했다.

 

당시 동쪽 호랑이 같았던 그들의 위세를 되새겨 보고저 함인지 암호명 도라 도라 도라는 호랑이. 호랑이 호랑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사자의 콧털을 건드렸다가 패전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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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http://blog.joinsmsn.com/liberum/12151520

글쓴날 : [11-04-23 15:14] 손금지기자[Liberum@hitel.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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