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라북도 전주, 봄꽃에 한바탕 흐드러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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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미널 근처에서 점심을 간단하게 해결하고, 늘 그렇듯 전주 한옥마을까지 걸었다. 터미널에서 한옥마을까지 빠른 걸음으로 걸으면 대략 20~30분 사이에 갈 수 있어 처음 전주에 왔던 날부터 단 한 번도 한옥마을까지 버스를 타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따지니 참 전주도 무던히 왔던 곳이다. 토요일의 한옥마을은 역시나 사람들로 북적거려 한벽당까지 별 생각 없이 걷다가 진주천을 오른쪽으로 끼고 예쁘게 피어난 튤립 덕에 좀 더 걸음하게 되었다. 이쪽 길도 작년 걸었던 길인데 조팝나무 꽃이며 벚꽃이며 활짝 피어나 그때보다 더욱 아름다움을 뽐낸다.
걸어가는 길에 이 근처에 전주시내 전경을 볼 수 있는 곳이 있다는 말이 떠올라 지나가는 분께 여쭈니 치명자산 성지를 알려주었다. 전주천을 따라 걸어가다 보면 커다란 간판에 좀 촌스러운 글씨로 치명자산성지라고 쓰여 있는 게 보이는데, 막상 발길이 닿지 않아 몇 번을 지나쳤던 곳이었다.
초반부터 계단으로 시작된 성지길은 성모상을 중심으로 두 갈래 길로 나뉘었다. 왼쪽으로는 골고다언덕을 새롭게 조성한 십자가의 길이고 오른쪽은 순교자의 묘지로 가는 길이다. 척 보기에도 계단이 가파르게 놓여있는 골고다 언덕길은 사실 가고 싶지 않았으나 묘하게 스미는 호기심이 결국 그쪽으로 걸음을 하게 만들었고, 기어이 따듯한 봄날에 땀 흠뻑 젖어들게 만들었다. 헉헉 거리며 올라가기도 바쁜 내가 그래도 불평을 할 수 없었던 것은 엄숙한 표정으로 십자가의 길을 올라가는 신앙인들 때문이었다. 내가 비록 종교에 귀의한 사람이 아닐지언정 저들에게 예를 다해야 옳지 않겠는가.
묵묵하게, 조금은 버거운 길을 올라가다 보상이라도 받는 양 동백꽃이 만발한 길과 만났다. 지난 3월 동백이 보고 싶어 지심도로 향했을 때 만족스럽게 보지 못했던 아쉬움을 뜻밖에도 전주의 치명자산에서 해갈하는 기분이었다.
치명자산 정상쯤에 올라서면 성당이 하나 있다. 성당이니까 당연히 미사도 드리는데 평일인데다 시간도 되지 않아 주변은 한산하기만 하고 나른한 오후를 즐기는 아저씨 한 분만이 파라솔도 없는 테이블에 앉아 오수에 젖어 있다. 그 옆을 조심히 지나 다시 계단을 올라 좀 넓은 마당을 걸어 경사가 높은 계단으로 올라서자 동그란 무덤 하나가 놓여있다. 순교자의 무덤이라 하는데 그 주변에 시들어가기 시작하는 수선화가 참으로 애처롭다.
순교자의 무덤을 지나쳐 왼쪽으로 방향을 잡고 걷는다. 마침내 전주의 시내가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승암산 중바위에 이르렀다. 생각보다 날씨가 맑아 저 멀리까지 보이는 풍경은 참으로 시원스럽다. 잠시 바위에 앉아 물도 한 잔 마시면서 전주 시내를 감상하고 다시 오던 길을 따라 내려갔다.
순교자의 무덤을 지나 성당을 지나 조금 더 내려가자 아까 날 황홀하게 만든 동백숲이 오른쪽에 보인다. 이번에는 내려가는 길이라고 쓰여 있는 안내판을 따라 슬렁슬렁 걸어 내려간다. 봄이 절정을 이루는 치명자산은 온통 꽃으로 흐드러진다. 연분홍 진달래, 노란 개나리, 붉디 붉은 동백에 하얀 벚, 거기에 잘 내려다 보지 않으면 지나칠 것 같은 야생화들까지. 그야말로 봄꽃이 한바탕 피어있다고 할까.
생각보다 가팔라 조금 숨이 가프고 다리가 아픈 치명자산 성지길이지만 전주 시내를 내려다 볼 수 있는 곳과 아름다운 꽃들이 있어 또 그렇게 힘들다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전주천을 따라 다시 한벽당쪽으로 걸어가 이번에는 터널을 지나쳐 오목대 방향으로 향한다. 넓은 인도를 따라 이곳에도 새하얀 조팝나무 꽃이 만발이다.
처음 전주를 찾았던 날도 봄이었다. 그때는 전주 한옥마을만 둘러보았고, 가벼운 걸음으로 오목대에 올라 바람에 흩날리는 벚꽃 잎에 취했었다. 그 기억이 떠올라 올라선 오목대에는 여전히 벚꽃이 아름답게 피어있고, 시원하게 불어오는 봄바람을 따라 꽃이 눈송이처럼 휘날렸다. 그 매력에 다들 흠뻑 빠졌던가. 벚나무 아래에는 인적이 끊이지 않고, 즐거이 사진을 찍는 사람들의 모습을 나도 슬며시 담아낸다.
시계를 확인 하고 깜짝 놀랐다. 언제 이렇게 시간이 지났을까. 약속시간이 가까이 다가와 있어 꿈에서 깨듯 화들짝 오목대를 나선다. 그 와중에도 오랜만에 한옥마을에 들렸으니 기와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사진 아니 찍을 수 없지. 기념사진 한 장 찍어두고 잽싸게 정동성당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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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날 : [11-04-19 13:51] | 황희숙기자[maskaray@naver.com]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