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청산도 슬로시티 상서마을。 | |
청산도는 아시아 최초의 슬로시티로 지정된 곳이다. 그래서일까 항구에 내려설때부터 어쩐지 그저 나는 기분이 좋다. 바글거리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어찌 가야하나 조금 망설이긴 했어도 승객을 기다리는 버스에 올라 빵빵빵 경적소리 울리며 버스가 달릴때도 한적하고 조용한 마을 풍경에 왜 이곳이 슬로시티가 되었는지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버스가 종착역에 도착해 밖으로 내려서자 그야말로 청산도와 너무나 잘 어울릴 것 같은 돌담으로 쌓이 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바로 상서 마을이다. 마을을 둘러볼까 하고 길로 들어서는데 어디선가 불쑥 중년 여사님께서 나타나신다. 알고보니 이 상서마을을 설명해주시기 위해 오늘 급파되어 오신 문화해설사 선생님. 너무 빠른 템포의 다다다다다다 던지시는 말씀에 사실 설명 자체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그래도 열심히 말씀해주시는 덕분에 상서마을의 유래라던가 돌담길의 보수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해설사 말씀이 이 마을을 둘레둘레 두르고 있는 담장은 2006년에 문화재로 등록된 귀중한 곳이란다. 도서지방의 전형적인 구조인 강담이라는 것으로 돌을 쌓았는데 흙을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돌로만 쌓은 담을 이르는 것이라고. 바람이 많은 섬에 적합하도록 쌓은 것이란다.
가볍게 해설사 선생님과의 동네 한 바퀴를 끝내고 헤어져 홀로 다시 마을길로 들어섰다. 아까는 둘이 함께 움직여 보지 못했던 것들이 하나하나 눈에 들어온다.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같은 따사로움과 봄의 싱그러움.
상서마을 돌담길에 눈이 팔려 몰랐는데 여기 밭에 보리가 푸르게 돋아나 있다. 알고보니 이게 맥주 보리란다. 말 그대로 맥주의 원료가 되는 보리라는 것인데 그래서 일까 왜인지 참으로 나에겐 친숙해 뵌다. 이게 노오랗게 익으면 내가 그렇게도 좋아하는 맥주로 변하는 것인지. 사실 술이라면 뭐든 좋아라 한다.
봄바람은 솔솔 불어주시고, 날은 포근하니 설렁설렁 걷기에 더없이 좋다. 몸도 마음도 조금은 가볍게, 천천히 걷는 상서 마을의 골목 골목엔 그래서일까 더더욱 정겨운 풍경이다.
길에 그려진 파아란 화살표를 따라 걷다보니 어느새 상서마을의 골목길 끝자락이다. 그곳에는 아주 오래된 나무들 잠시 쉬어가라고 목하 유혹중이시다. 하지만 이미 상서 마을의 한가로움에 너무 취해 시간을 소비한 나에게 버스가 오기 전에 솔숲의 유채까지 봐야하는 빡빡한 일정이 남아 있어 아쉬움은 사진 한 장으로 대신 한다. 사실 나무가 조금 잎이 무성했다면 유혹에 졌을지도 모르겠다.
바닷가로 향하는데 아까 나를 태우고 왔던 버스와 마주쳤다. 이 청산도에 유일한 버스라고 하는데 이 버스 참으로 재미있다. 정류장 근처에만 오면 경적소리가 빵빵빵. 처음엔 그게 좀 귀에 거슬렸지만 생각해보니 마을에 달랑 한 대 있는 버스이니 사람들이 놓치면 어찌 하겠는가. 탈 사람들은 이리오소~ 하고 불러 주니 어찌 보면 참으로 친절한 버스 아닌가.
하지만 지금의 나에겐 그렇게 반가웁지 않다. 버스가 되돌아 오기 전에 부리나케 달려가 바닷가 풍경도 찍고 솔나무 사이의 유채도 찍어야 하니까. 잰걸음으로 후딱후딱 풍경 두개를 헤치우고 나자 빵빵 등 뒤에서 버스의 경적 소리가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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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날 : [11-04-13 23:39] | 황희숙기자[maskaray@naver.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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