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통영시외버스터미널로 향하는 8시 55분 막차에 몸을 실었다. 진주에서 통영까지 걸리는 시간은 1시간 30분. 진주에서 하루를 보내고 더 볼 것이 있느냐 없느냐를 두고 고심하다 사천을 갈까 고성을 갈까 통영을 갈까 고민하던 곳들을 버스를 타고 한 번에 그야말로 '찍고' 가는 노선이다. 비록 시간도 오래 걸리고 비용도 7100원으로 직통버스보다 무려 삼천 원 가까이 차이가 났지만, 가보지 못했을 도시들을 편히 앉아서 둘러볼 수 있으니 우리에겐 아쉬울 게 없다. 진주터미널에서 사천터미널까지는 30여분이 소요되고, 사천터미널에서 고성터미널까지 50여분이 소요된다는 것도 이 버스를 타고서 처음 알게 되었고, 고성터미널에서 통영의 더 깊은 내륙 쪽으로 가는 손님을 위해서 버스기사님께서 손수 환승을 위해 다른 기사님께 말씀을 해주시어 갈아탈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따듯한 마음도 알게 되었다. 고작 진주에만 머물렀다 돌아갔더라면 알지 못했을 밤 버스의 정겨운 풍경들. 다크 초콜릿보다 더 진한 어둠 속에서 반짝반짝 빛나던 주홍색 가로등 등불과 기사님의 따듯한 마음씨와 낮에는 느끼지 못했을 여유를 알게 되었던 시간들.
생각보다 번화한 통영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내려 어디에 숙소를 잡느냐를 두고 친구랑 상의하던 끝에 여객터미널 인근에서 묵기로 하고 그쪽으로 가는 버스를 어디에서 타느냐고 여쭈자 터미널 직원이 터미널을 나가 바로 앞에서 타면 된다고 알려주었다. 터미널을 나와서 손님을 태우기 위해 대기 중인 택시기사님께 여객터미널까지 택시요금이 얼마인가 여쭈니 택시 요금은 오천 원에서 육천 원이라며 정류장에 가면 버스를 금방 탈 수 있다며 알려주시는 고마운 택시 기사님도 계시다. 그리고 초행길, 여객터미널에 가기 위해 어떤 버스를 타야 하는지 찾는 우리들에게 어느 버스를 타더라도 여객터미널로 갈 수 있고, 어디 정류장에 내리면 숙박시설이 많은지, 숙박료가 비싸 고민이 될 것 같으면 그 정류장에서 두 번 정도 더 지나가면 시설도 깨끗하고 생긴 지 얼마 안 된 괜찮은 찜질방이 있으니 거기를 가라고 알려주신 고마운 아저씨도 계시다. 내리실 때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렸더니 여행 잘 하라며 말하시고 내리신 뒷모습도 참 따스하다. 어디에서 내려야되는지 두리번거리다 여객터미널이라는 말에 헐레벌떡 내려서니 어디로 가야 찜질방이 나오는지 몰라 헤매던 끝내 잡았던 2만 5천 원짜리 여관의 주인어른께서 꼬치꼬치 맛있는 집에 대해 묻는 우리의 질문에 성심껏 대답해 주셨던 마음씨가 참으로 고맙다.
김밥에 떡볶이에 어묵국물에 맥주에 배터지게 먹고서는 '얼굴이 붓겠냐 잠에 설겠냐' 침대에 몸을 뉘었던 그렇게 따스하고 고맙고 행복했던 통영에서의 밤. 날아다니는 모기와 꽉 막힌 코로 잠은 결국 설치고 하얗게 새웠지만 그 밤은 너무 행복했다.
날이 밝아 후다닥 씻고 여관을 나서 여객터미널로 향했다. 아직은 아침 해도 바다 위로 떠오르지 않는 어둑새벽, 그 이른 시간에 벌써부터 시장은 와글와글 거리기 시작했다. 여객터미널에 가기 위해 서호시장을 지나가며, 잠도 덜 깨지 않은 내가 부끄러웠던 것은 이런 부지런 때문이었다. 집에 있었더라면 이른 시간은 고사하고 발갛게 해가 떠올라 머리 꼭대기에 서도 일어나지 않을 내 게으른 잠 속에, 시장은 하루를 벌써 시작하고 있었겠지.
서호시장을 나서 여객터미널에 도착해 배표를 끊어놓고 친구가 핸드폰을 충전해야 한다기에 다시 부산스러운 시장을 통과해 편의점을 찾아가 핸드폰을 맡겨놓고 이른 아침을 먹으며 편의점 알바가 심심했던지 쉴 새 없이 이야기를 하는 점원의 통영과 거제 안내를 음악 삼아 배를 채웠다. 반의반도 듣지 않을 그 말들을 쏟아놓고 그는, 자신의 친절함에 만족했을까. 편의점을 나와 다시 시장으로 향해 갓 나온 떡 한 팩을 사들고 다시 여객터미널에 들어와 마침내 배를 타기 위해 선착장로 향했다. 어떤 배를 타는 걸까. 두근 반 세근 반하며 다가간 그곳엔 사람 100여명은 태울 수 있을까 싶은 작은 페리이다. 설마 저거 타고 가는 건가 싶었지만 역시나 저게 우리를 1시간여 동안 실고 소매물도로 향하는 배. 뱃멀미를 하는 나로서는 참 난감한 상황이건만 섬 처녀 친구는 그저 소매물도로 간다는 것에만 즐거움이 솟는가 보다. '에라 나도 모르겠다.' 눈 꽉 감고 배에 오르니 정박한 배는 벌써부터 출렁거리고 있다. 앞선 걱정은 일단 뱃속에 채워두고, 이제 갓 떠오르는 아침 해와 인사를 나누고, 어디 한 곳 자리 잡아 잠이나 자야지 싶어 누웠는데 막상 배가 출발하고 나니 생각한 것만큼 멀미를 하지도, 흔들리지도 않는다. 친구의 재촉에 잠은 다 잤구나 싶어 선실을 나서니 시원한 바닷바람이 아침 공기의 상쾌함과 함께 온 몸을 휘감고 지나갔다.

먹이 찾는 하이에나마냥 앉을 자리를 휘휘 둘러보다 둘이서 앉기 딱 좋은 곳을 찾아내고는 얼른 달려가 앉는다. 처음에는 갑판 쪽으로 앉아 밖을 보다가 친구가 먼저 바다 쪽으로 돌아서서 앉아 이게 더 좋다면 유혹한다. 그에 나도 질세라 후다닥 돌아앉으니 밤하늘별보다 더 반짝이는 바다 별들이 휘황찬란하다. 알레르기로 코는 꽉 막히고, 눈물은 주룩주룩 잘도 쏟아졌지만 그 아름다운 풍경은 선실에 누워 쿨쿨 잤더라면 느끼지 못했을 것들이었다.


비진도를 거쳐 매물도를 지나 드디어 소매물도에 배가 정박했다. 육지에 내려서고서도 아직도 출렁거리는 것 같은 걸음으로 보무도 당당하게 등대섬을 향해 걸었다. 일 등은 친구, 이 등은 나. 배에서 내리는 여행객들을 진두지위 하 듯 앞서 가던 우리는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하자 점점 쳐지기 시작했다. 뭐 급할 게 있겠나, 조금은 천천히 여유 있게 가는 것도 좋겠지. 이른 봄이 되면 발간 동백을 볼 수 있을 것 같은 울창한 동백 숲을 지나, 시원스럽게 바람이 부는 바람의 언덕을 지나, 기암괴석 사이를 선을 가르고 지나가는 배를 보며, 마침내 등대섬에 갈 수 있는 곳까지 도착했건만 이게 웬 일. 아직 바닷길은 열려 있지 않다.

잠시 계단에 앉아 바다가 열릴 때를 기다릴까 싶었지만, 유람선을 타고 가며 관광객들에게 계단에 앉아 있는 우리보고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온 어리석은 여행객은 저렇게 하릴 없이 기다려야 한다는 말과 1시가 되어야 바닷길이 열릴 거라는 절망적인 이야기를 듣고는 발끈하여 안내센터에 전화해 물길 열리는 시간을 알아보고 10시 반은 되어야 열린다는 말에 망태봉이나 가야겠구나고 자리를 일어섰다. 수원에서 왔다는 23살 아가씨를 꼬드겨 셋이서 헥헥 거리며 올라간 망태봉에서의 전경은 오래전부터 꿈꾸어 왔던 소매물도의 아름다움이다.

잠시 소매물도 파노라마를 즐기고 다시 등대섬 가는 길목으로 돌아오니 그래도 물길은 채 열리지 않았다. 하지만 신발을 벗고 바지를 걷는다면 건널 수 있을 만큼 물이 빠져 있다며 친구가 잔다르크 마냥 먼저 길을 나섰다. 신발도 벗어 들고, 양말도 벗어 신발에 꾸욱 눌러 넣고 바짓단은 종아리가 다 보이게 걷어 올리고. 씩씩하게 한 발 한 발, 소매물도에 올라서서도 제일 먼저 앞서던 우리를 따라 이번에도 여행객들이 줄줄이 뒤를 이었다. 소매물도에서 등대섬으로 향하는 바닷길은 마치 정토로 통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동글동글한 바위에 미끄러질 새라 조심하며 건너다가도 시원한 바다와 그림 같은 하늘의 풍경에 잠시 넋을 잃어보면 저 끝에 있는 것은 저 머나먼 피안이 아닐까 싶은 까닭이다. 그러나 그 꿈같은 시간은 끝이 나고, 마침내 사바세계인 등대섬에 도착했다. 채 마르지도 않은 발에 양말이며 신발을 꿰고 씩씩하게 등대로 올라서니 우리가 지나온 매물도가 눈앞에 보인다. 비취보다 황홀한 바다와 새파란 가을 하늘과 그 풍경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는 그곳은 그야말로 최고의 여행지이다.

배 시간을 맞춰 헐레벌떡 등대섬을 빠져나와 이제는 물길이 다 열린 바다를 건너 끔찍이도 높은 계단 길을 올라간다. 예쁘게 차려입고 가겠다고 신은 스니커즈 덕분에 세 번이나 나자빠지고, 다리를 후들거리며, 숨을 헐떡이며 선착장 근처에 도착해 2500원짜리 캔맥주를 '탁' 소리 내며 열어 꿀 탄 물보다 달게 마신다. 그렇게 맛난 맥주 마시고, 배에 올라 소매물도에서 만난 초면의 유쾌한 여행객들은 수다를 풀어 놓고, 웃음소리를 동력 삼아 페리는 통영으로 나아간다.

여행정보
1. 통영-소매물도
- 통영에서 소매물도까지는 1시간 10여분이 걸립니다. 문어포, 진두, 비진도, 당금, 대항을 들러서 가요.
왕복 27,300원 / 편도 14,300원
통영→소매물도 : 07:00 / 11:00 / 14:00
소매물도→통영 : 08:15 / 12:20 / 16:15
5. 홈페이지 : http://nmmd.co.kr/ (자세한 시간과 운임요금 정보)
6. 소매물도 조석간만 : http://www.khoa.go.kr/info/divid_forcast.asp?rid=10 (물갈라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