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거제 지심도, 동백 봄바람에 살랑이다。

“지심도로 가는 배표 한 장 주세요.”

 

장승포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해 어영부영 걷다 중간 즈음에 택시를 타고 지심도터미널에 내려 늦은 점심을 먹고 지심도 민박집 한 군데에 전화를 걸어 숙박을 확인 하고 나서, 표를 끊으며 내가 꺼낸 말이었다. 두 명의 직원이 스윽 쳐다보다 한 사람이 표를 내밀고는 카드를 받아 결제를 끝내자 표를 들고 의자에 앉으니 아저씨 한 분이 터미널 대합실로 들어서선 옆에 턱 앉았다.

 

“하루 숙박하려고요? 지심도는 작아서 숙박 안 해도 되는데?”

 

운을 뗀 아저씨는 혼자 여행 온 사람이냐며 마저 묻고는 아직 올 겨울은 날이 상당히 추웠던지라 지심도의 동백이 채 10%도 피지 않았을 것이라며 말씀을 하셨다.

 

“앗 그래요? 문의 했을 땐 중순쯤 핀다고 해서 온 건데….”

 

일전에 내나라여행박람회에서 물었던 걸 끄집어내 묻는 내게 고개를 저으며 20일쯤은 지나야 할 거라며 말하던 아저씨의 말에 가볍게 대꾸해 놓고 대합실을 빠져나왔다.

 

4시를 넘긴 오후의 바다는 보드라운 갈색 햇빛이 표면에서 넘실거리고, 조금은 찬 듯 한 바람이 일렁이는 한가로운 풍경이었다. 주변에 달리 구경할 것도 없고, 마땅히 갈만한 곳도 찾지 못한 난 하릴없이 부두의 산책로만 몇 걸음 떼어 걷다 멀찍이 방파제를 통과해 다가오는 지심도행 배를 발견하고 한달음에 그쪽으로 향했다.

 

 


반쯤 바다에 잠긴 배 선실의 승객은 나를 포함한 관광객 셋, 지심도 주민으로 보이는 할머니 한 분, 멋쟁이 선장님 한 분, 그리고 딱 동네 아저씨 같은 조타수 아저씨 한 분이 전부인 참으로 한산한 모습이었다. 바람에 의해 조금은 높게 출렁이는 배를 요령껏 운전하며 조타수와 할머니는 수다를 하느라 바빴고, 멋쟁이 선장님은 팔짱을 낀 채 묵묵히 바다만을 바라보고 있었으며, 조금 울렁거리는 속을 달래기 바쁜 내가 이래저래 불편한 자세만을 바꾸고 있던 20여분 후 배는 마침내 지심도 선착장에 정박했다.

 

내리는 승객보다 떠나려는 관광객이 더 많은 부두의 복작이는 틈을 반쯤은 멍한 정신으로 헤치고 지나가는데 미리 전화를 걸어두었던 민박집 주인아저씨가 그 사이에서 용케 예약객을 알아보시고 다가왔다.

 

“아까 전화한 아가씨죠? 저기 길 따라 올라가다보면 민박집 있어요. 먼저 가고 있으면 내가 오토바이타고 앞질러 가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가고 있어요.”

 

주인아저씨의 말에 고개를 들어 본 길은 한참 가팔라 보았고 은근 오토바이라는 말에 태워주시는 줄만 알았던 난 사람을 태우는 자리는 안 뵈고 노란 바구니 하나 덜렁 올린 오토바이를 보곤 어쩔 수 없이 실망하고 말았다. 결국 터벅터벅 경사진 길을 따라 오르는데 꼭 그 말처럼 내 옆을 스치고 지나간 아저씨의 무심한 오토바이 꽁무니를 다시 또 한 번 부러운 눈으로 보고 헉헉거리며 언덕에 올라서야 마침내 예약해 두었던 민박집에 도착했다.

 

 

 

민박집에는 나 외에 광양에서 오셨다는 자전거라이더 네 분이 선객으로 계셨고, 엉겁결에 말을 튼 난 그분들과 회 한 접시에 술을 마시며 뜻하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저녁으로 매운탕을 먹으며 지는 해를 감상하고, 살짝 오른 취기에 휘청휘청 화장실로 향하니 뜻밖에 화장실엔 조명이 없었다. 지금처럼 좀 밝은 시간에야 괜찮겠지만 아주 까만 밤이면 좀 낭패겠다 싶었지만 설마 그 시간에 일어나 화장실을 찾겠느냐 걱정 없이 방으로 들어간 난 고스톱을 치자며 전화가 온 아까 그 라이더 중 한 분의 전화를 받곤 스륵 선잠이 들고 말았다. 그리고 깨어보니 밖을 까만 밤이요, 걱정했던 대로 난 조명도 없는 화장실에서 어렴풋한 빛을 의지 삼아야 했다. 이른 저녁잠은 삼경 즈음의 시간에 날 또렷한 정신으로 만들었고 어쩔 수 없이 불을 밝히고 책만 펼쳐놓고 잠을 설칠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이른 새벽, 해가 뜨는 것도 같이 보러 가지 못한 난 민망한 기분으로 아저씨들과 같이 아침을 먹고 작별인사도 없이 내 준비만 하다 그 분들을 보내놓고 나도 민박집을 나섰다. 어제의 그 세찬 바람은 오늘의 찬 날씨를 위한 것이었는지 목까지 채운 외투만으로도 좀 부족한 한기 도는 아침이었다. 민박에서 가장 가까운 마끝에 도착했다. 푸른 바다가 바로 앞에 펼쳐진 곶 하나 가진 전망대였다.

 

 

 

마끝에서 다시 민박집 근처의 길까지 와서 운동장으로 향하는 길에는 동백꽃이 떨어져 있었고, 아직은 반쯤 그늘이 진 운동장의 한쪽 벤치 근처는 그야말로 붉은 동백물이 흥건하게 바닥을 채우고 있었다. 그 처연한 아름다움을 어찌 표현해야 할 것인가. 그저 말없이 이리저리 사진만 찍던 난 기어이 동백꽃의 마지막을 다 가슴에 담지 못하고 운동장을 빠져나왔다. 운동장에서 경사진 길을 따라 올라와 국방과학연구소의 바로 옆 숲길로 길을 잡았다.

 

 



울창한 숲을 지나 바다가 훤히 보이는 곳에는 둥그런 진지 하나가 있었고, 그곳이 바로 일제 때 지심도에 파두었던 포의 진지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한 때 일본군의 중요한 기지로 쓰이던 지심도의 곳곳에는 그때 쓰이던 여러 유적들이 남아 있다. 대포를 세우기 위해 쓰는 진지와 대포알이나 탄약을 보관하던 창고, 서치라이트 창고와 방향지시석, 심지어 일본소장의 사택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지심도의 뼈아픈 역사를 보여주는 것들이다.

 

 

 

오로지 지심도를 동백섬으로 알고 온 나로서는 어쩐지 좀 부끄러운 생각마저 들게 하는 탄약고를 둘러보고 대숲 사이길로 걸어가다 “딱따다다 딱따다다” 하는 경쾌한 나무 찧는 소리를 들었다.

 

“아, 딱따구리다.”

 

나도 모르게 얼른 그 소리가 나오며 신나게 부리를 쪼는 딱따구리를 좀 흐뭇한 기분으로 보고 있는데 뒤늦게 나타난 세 명의 관광객의 부산한 목소리에 놀란 그 녀석이 후다닥 달아나고 말았다.

 

 


 

아쉽게 날아간 딱따구리를 찾다 포기하고 이곳저곳에 패인 포진지를 보며 걷다 엉뚱한 길에서 아주 매력적인 풍경과 만났다. 갑작스럽게 탁 트인 바다와 아름다운 해안절벽이 있는 길이었는데 그것보다 돌아선 뒤편에 활짝 핀 동백이 더 눈에 뜨이는 그런 곳이었다. 엉뚱하게 들어선 길의 수풀을 억지고 비집고 올라서자 국방과학연구소의 삼거리 길과 만났다.

 

 



해안전망대 방향으로 걸음을 걷다 도착한 활주로에서 왼쪽으로 걸으니 하얀 매화가 피어있다. 마치 잘 익은 팝콘 같은 매화꽃을 감상하고, 시들시들 늘어선 종려나무를 등에 지고 활주로 한 쪽에 놓인 망원경에 500원을 넣고 여기에서 보인다는 대마도를 찾았지만 시계가 좋지 않은 날씨 탓에 푸른 거제의 바다 풍경과 작은 섬들, 그리고 해안선만 실컷 보고 시린 눈에 눈물만 쪽 빼었다. 활주로에서 다시 전망대쪽으로 걷는다.

 

 


동백이 만발했다면 참으로 좋았을 동백터널을 지나는데 작고 낮은 네모난 돌들이 세워진 게 보인다. 유심히 살피니 대마도니 거제도니 하는 글씨가 쓰여 있고 거리를 나타내는 표시까지 보이는 게 바로 방향지시석이었다. 지시석을 지나 완만한 길을 내려가다 마침내 해안선전망대에 이르렀다.

 

오른쪽에는 아름다운 해안절벽이 펼쳐지고, 파란 바다와 맑은 하늘의 수평선이 보이는 전망대에서 잠시 탄성을 지르며 감상 하고 지심도 산책길의 종점인 그대 발길 돌리는 곳에 도착했다. 다시 해안선전망대를 지나 방향지시석까지 거쳐 이번에는 선착장 우회길로 접어들었다.

 

 

처음에는 12시 50분 배를 탈까 했는데, 시계를 보니 시간이 10시가 조금 지난 시간을 알리자 좀 지심도를 나갈까 하는 마음이 들어 좀 걸음이 빨라졌다. 그래도 마지막 길인 몽돌해수욕장에 들리지 않아 바쁜 걸음으로 가파른 오솔길을 내려가는데, 해수욕장이라고 하기엔 좀 너무 규모가 작은 절벽 해안가가 나타났다.

 

해수욕보다는 낚시하는 게 더 좋겠는걸 생각하고 후다닥 경사진 길을 따라 오른다. 좀 가쁜 숨을 고르며 걷는 지심도의 길은 천혜의 원시림답게 울창한 숲이었고, 동백의 붉게 떨어진 바닥과 시원하게 부는 바람과 함께 걷자니 마음 심(心)자를 닮았다는 지심도의 여유로움이 한층 느껴졌다. 비록 11월부터 4월까지 피고 지는 지심도의 흐드러지게 핀 동백은 보지 못했지만 섬의 매력을 가득 안고 갈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벅차지 않는가.

 

 

 

1. 지심도터미널 가는 길

  -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장승포행 시외버스탑승 : 사천, 고성, 통영 거처 5시간 30분 소요 /하루 8편

  - 장승포시외버스터미널에서 지심도 터미널 : 시외버스터미널을 나와 신협 보는 방향에서 우측

     → 파리바게트 빵집 길쪽으로 직직 도보 300m → 탑마트 지나 삼거리 좌측 2차선도로

     → 시립도서관 버스정류장 통과 도보 50m → GNB 영어학원 건물 우측 골목 진입 → 도보 약 5분

     → 로터리에서 길거너 9시 방향 → 100m 직진 후 우측 → 도보 300m 지심도터미널 도착

2. 지심도 배편

  장승포 출발 : 08:00 / 10:30 / 12:30 / 14:30 / 16:30

  지심도 출발 : 08:20 / 10:50 / 12:50 / 14:50 / 16:50

  * 주말엔 수시운항

3. 요금 : 일반 12,000원 / 기타 6,000

4. 참고사이트

  - 남부터미널 : https://www.nambuterminal.co.kr/

  - 지심도 : http://jisimdoro.com/

  - 거제시 문화관광 : http://tour.geoje.go.kr/

5. 문의전화 : 055) 681-6007

글쓴날 : [11-03-22 15:00] 황희숙기자[maskara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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