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터 바돌로뮤, 그는 왜 한옥지킴이가 되었는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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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모두 자기 집에 대한 꿈이 있습니다. 정부가 짓밟아서는 안 됩니다."
재개발로 사리질 위기에 처한 서울 동소문동 한옥을 지키기 위한 소송에서 이긴 푸른 눈의 미국인 피터 바돌로뮤(61)씨는 작년 6월 성냥갑 같은 고층 콘트리크 건물로 대변되는 관 주도의 재개발 방식에 이같이 일침을 가했다.
그는 스물다섯 혈기왕성한 청년이던 1968년 '피스 콥스(Peace corps)' 평화 봉사단원으로 한국 땅을 처음 밟았다. 한국의 교육 수준을 높여보겠다는 청운의 꿈을 가슴에 품은 이 청년은 강원도 강릉의 99칸짜리 선교장에서 5년 살며 한옥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파워블로거 얼라이언스 회원들이 동소문동에 있는 한옥지킴이 피터 바돌로뮤씨의 집을 찾았다.
그는 자연주의자다. 은행나무며 대나무가 집안 뜰에 청청하다.
재개발로 헐릴 위기에 처한 동소문동 한옥 살리기에 나서 ‘한옥 지킴이’ 별명을 얻은 미국인 피터 바돌로뮤씨. 작년 6월 1심 재판에서 이기고도 언제 끝날지 모르는 법정 다툼과 주변 사람들과 갈등 악화 등으로 힘든 세월을 보내고 있다.
1968년 평화 봉사단원으로 한국과 인연을 맺은 이래 한옥의 매력에 심취해 서울 동소문동 한옥에서 35년째 살고 있는 바돌류뮤씨는 지난해 6월 동소문동 재개발구역 지정을 취소해야 한다는 서울 행정법원의 판결을 이끌어낸 주인공이다.
정식 피고인 서울시는 법원의 판결을 받아들이고 항소를 포기했지만 ‘피보조참가인’ 자격으로 재판에 참가한 재개발추진위원회가 항소해 서울 고등법원에서 재판이 진행 중이다. 2심은 이제 막 시작 단계로 최근 첫 기일이 열렸다.
추진위는 1심에서 지더라도 대법원까지 가볼 태세여서 그가 법적인 다툼을 마무리 짓고 일상으로 돌아오려면 앞으로 몇 년이 더 걸릴지 가늠하기 어렵다.
바돌로뮤씨는 “재판이 길어지니 힘들고 지친다”며 “사업도 해야 하고 강연도 많이 다니고 하는 일이 많은데 소송 때문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고 내 집에서도 불안하게 살고 있다”고 최근 근황을 털어놓았다. 바돌로뮤씨를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1심 판결 이후 악화한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다.
재개발에 제동을 건 판결이 나오자 추진위 측이 바돌로뮤씨의 집 앞에서 여러 차례 자신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고, 집에 드나드는 손님들과 충돌을 빚는가 하면 극히 일부이긴 했지만, 자신을 때리기도 했다고 했다.
그의 집은 저기 보이는 바깥문을 들어와서 또 하나의 문을 거쳐야 정원이 있는 집으로 들어온다.
마루에 놓여 있는 옛날 TV
옛날 뒤주도 있다.
바돌로뮤씨의 생각은 이렇다. “도시 전문가들을 소개받아 동소문동을 어떻게 새로운 문화동네로 만들 수 있을까를 알아보려고 하는데 아직은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며 “북촌을 베끼는 것이 아니라 우리 동네의 역사와 환경에 맞게 해보자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찾은 새 보금자리가 지금 사는 동소문동의 14칸 한옥이었다. "당시 돈으로 1천200만원이었어요. 주변 사람들이 비싸게 샀다고 다 바보라고 했는데 그 뒤로도 빚 갚느라 한동안 고생했다면서" 웃음을 지었다.
그는 조선업 관련회사를 경영한다. 그래서 경상도, 전라도 같은 지방으로 출장을 자주 가는데 "TV, 신문에 나오니까 이 아저씨 봤다고 그러면서 사람들이 고맙다고 잘하고 있다"라며 힘을 보태준다고 말한다. 바돌로뮤씨는 최근 그는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라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고 했다.
인터뷰는 2시간 이상 계속되었다.
파얼은 릴레이 인터뷰를 계속한다.
오른쪽의 청년은 마이클 P.스파보르씨로 피터 바돌로뮤시의 인터뷰에 참석하기 위하여 일부러 왔다.
그는 아직 노총각인데 인물이 좋으니 좋은 색시감을 소개하여 달라고 했다.
그가 바라는 것은 획일적인 관 주도의 재개발이 아니다. 동네 주민들이 중심이 되어 스스로 살고 싶은 한옥이 있는 고유의 문화동네를 만들어 보는 것이 그의 희망이라고 했다.
서울 장안에 은행나무가 있고 대나무 숲이 있는 한옥이 몇이나 될까를 생각하니 그가 대견해 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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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날 : [11-03-19 01:44] | 김민영기자[Malipres@hite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