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 지킴이 피터 바돌로뮤 방문기

 

동소문동 한성대입구역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에 한옥 지킴이 피터 바돌로뮤님의 집이 있다.

 

 

한옥 문을 들어서기 전에 고풍스러운 분위기에 압도됐다. 그는 1974년에 이 집을 샀다. 그가 이 집을 살 때 4년간 집은 비어 있었다. 그 당시근처 집들은 80%가 한옥이었다. 대나무 가지가 보인다.

 

 

나무가 우거진 숲 속의 집이라고 할까 그런 집에 그는 살고 있었다. 그는 한국사람들의 문화의식에 의문을 표시했다. 왜 절과 궁만 문화의 중심으로 의식되고 주택은 그렇지 못한지 의문이 간다고 말했다.

1910년에 일본의 침입이 있고난 뒤 한국의 가옥은 수난을 맞았다. 한옥지킴이 그의 한옥예찬론을 한번 들어보자.

 

 

 

인터뷰를 하러온 방문자를 위하여 마실 음료수를 준비해 놓았다.

 

 

사람이 살고 있는 이런 한옥집은 참 오랜만에 와 본다. 그가 살고 있는 이집의문짝은 60개나 되니 간수하기도 힘들었다고 한다.

 

 

 

저 문을 드르륵 열면 부엌이다.

 


오래된 은행나무가 이 집의 연륜을 말해준다.

 

 

 

푸른 대나무도 싱싱하게 잎새를 자랑한다. 15년전에 대나무를 심었더니 이렇게 대나무숲이 되었다고 한다. 대나무 꽃이 피었다가 졌다고 했다. 외국인 한옥지킴이의 한옥사랑과 그의 변(辯)을 들어보자. 한국사람들의 정체성 지키기에 도움이 될 것이다.

 

 

꼼꼼한 그의 성격의 일면을 보는 듯 하다.

 

 

 

그는 한옥 지킴이가 되면서 한국의 옛날 조직에 대한 연구를 깊이 하였다. 이 집은 1930년대말~1940년대초 왜정시대에 지은 집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원칙적으로 4대문 안은 한옥을 보존하고 성외도 보존한다고 했으나 100% 믿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그의경험담이다. 그가 살고 있는 이 집은 재개발 지역이다. 선진국이 된다고 오래된 집은 철거해야 하는 것은 잘못된 주택정책이라고 그는 말한다.

 

 

 

왜정시대에는 97% 이상 고궁건물을 철거하였으며 향교건물도 훼손이 많이 되었다. 하지만 주택은 손대지 않았으며 남은 것은 불교건물인 사찰뿐이었다.그러다가 한국동란 때 화재로 가옥들과 미술품들이 불타고 없어졌다. 그야말로 엄청난 손실이었다.

 

 

 

서울에는 35년전에는 한옥이 80만채 있었지만 현재 7,000~8,000채 정도 남았다. 정부의 방침은 북촌 등 정부에서 지정한 지역만 보존하고 기타 지역은 철거하겠다는 것이다.


피터 바돌로뮤는 정부에서 이런 정책에서 손떼고 시정하면 안된다고 말했다. 달동네는 이해하지만 종로의 한옥들은 아니라고 했다. 현재의 정부계획에 의하면,이 지역은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으며 그렇게 될 때는 공시지가 정도만 받는다고 했다. 서울의 한옥지대였던 익선동, 낙원동, 인사동, 북촌 지역이 뉴타운(New town)화 하고 있다. 효자동, 보문동, 안암동, 정릉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일방적으로 정부를 욕하고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정부의 계획은 전통한옥이 아니고 사이비 한옥을 만들고 있는 것은 잘못 되었다고 그는 말했다. 현재 정부의 지원을 받는 곳은 북촌뿐인데 그것도 50% 이상은 없어지고 원래의 뼈대만 남는다.

 

 

 

사실 한옥은 주거환경으로 보았을 때는 춥고 불편한 점도 있다. 그러나 그가 말하기를 온돌은 과학적이기도 하지만 유럽의 주거환경보다 낫다고 말했다. 그의 한옥연구로는 한국의 아궁이는 위치상으로 과학적인 원리를 따라 만들어졌다고 했다.

 

 

재래식 부엌을 약간 개조하여 너무나 활용을 잘 하고 있다고 그는 말한다.다음 포스팅은 한옥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그의 견해를 들어 볼 것이다.

글쓴날 : [11-03-19 01:38] 김민영기자[Malipres@hite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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