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궁전에서 일주일만 살고 싶다! 베르사이유 궁전 Part 1 _ 궁전 내부

원래 일정은 루브르 박물관 관람이 있었고, 베르사이유 궁전은 일정에서 빠져 있었는데, 저를 제외한 다른 3명이 아가씨들인데다(아가씨들은 궁전이 환상의 공간 아닌가?! 결혼 10년차가 훌쩍 넘어버린 나도 말랑말랑 얘기가 좋으니 말이다), 그간 들어왔던 얘기들로 미루어 (루브르 박물관도 몇몇개 찝어서 봐야지, 한꺼번에 다 못 본다,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저멀리 뒤에서 콩알만하게 볼 수 있다, 유리벽으로 쌓여 있어 쇼윈도 구경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등등의 얘기) 베르사이유 궁전을 방문하는 것으로 의견을 통일, 가이드분께 말씀드렸으나, 루브르는 파리시내에서 해결되지만 베르사이유는 시외로 나가야 하니 은근 짜증이 나셨는지 계속 계속 안해도 될 얘기로 신경을 야곰야곰 긁으시기에 결국 일행 중 한명과 목소리도 높아지는 불상사까지 발생.
 
가이드끼고 여행하는 건 정말 복불복인듯! 일정 중 앞의 2일은 설명은 살짝 부실하나, 일행들 편하게 해주는데는 짱이셨던 분과 마지막 날은 까칠함의 극치이나, 설명하나만큼은 정확했던 분이었는데 개인적으로 더 좋게 남는 건 분위기를 좋게 해주셨던 분인 듯.


잘못된 지식이야 내가 찾아보면서 고쳐나갈 수 있지만 그 여행의 즐거움은 그때가 아니면 돌이킬 수 없지 않은가?!

 

그래도 어찌 되었건 루브르보다 베르사이유에 가길 잘했다는 생각이 마구마구 들어 여행의 즐거움을 완전히 망칠 정도는 아니었다는 점이 위로 아닌 위로가 되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베르사이유 궁전의 정문. 황금은 중국사람들이 최고로 좋아하는 줄 알았더니만 프랑스에서도 번쩍번쩍 블링블링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면 이렇게 넓은 궁의 모습이 펼쳐져있는데 들어가서 둘러보니 이중 공개된 곳은 가운데 일부분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보통 느슨하게 일정을 잡고 오지 않는 이상 궁전과 정원, 둘 중 하나를 골라서 보게 된다고 합니다. 워낙 커서 꼼꼼히 살펴볼려면 하루를 족히 돌아도 부족할 정도라 미리 두 곳 모두의 표를 사놓는 것은 낭비가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사진의 표는 궁만 입장할 수 있는 표로 이것도 표를 사는데만 20~30분정도 기다릴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서 있어서 가이드 분들은 미리 표를 확보해놓으신다고 합니다. 덕분에 저희는 바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입장권은 입장과 동시에 입구에 있는 안내데스크에서 이런 단말기를 받으실 때 제시하셔야 하므로 잘 보관하셔야 합니다. 이 단말기는 방마다 입구에 적힌 방 번호를 입력하면 해당 방에 대한 설명이 한국말로 안내가 된답니다.


물론 받을 때 한국어 안내 단말기를 달라고 하셔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나오는 설명 들어가며 구경을 하기엔 너무 시간이 늘어지기 때문에 시간이 정해진 단체 여행에선 보통은 있어도 잘 안 듣게 된다고 하시더군요. 물론 저희 사정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층에 있는 왕실예배당의 모습입니다. 원래 연주회가 있는 것인지, 미사를 위한 연습 중이신건지, 이도저도 아니면 특별한 행사로 준비중이신지 모르겠지만 한참 연주중이시더군요.
 
이곳에선 왕자들의 결혼식이 열리곤 했었는데 그 유명한 마리앙뜨와네뜨와 루이16세의 결혼식도 이곳에서 열렸다고 합니다.

 

 

 

천정으로 눈길을 돌려보니 멋지구리한 천정화가! 여기에 그려진 그림은 예수의 부활과 재림, 신의 영광을 기리기 위해 그려진 그림이라고 합니다.

 

 

 

2층에 올라가 처음 들어선 헤라클래스의 방에서도 이런 천정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이 천정화의 이름은 "헤라클래스의 예찬"입니다. 헤라클래스가 신의 대열로 들어서는 순간의 모습이 담겨져 있습니다.


왕실 예배당이 생기기 전까지는 이곳에서 미사를 드렸다고 하는군요. 이후 대연회장으로 사용용도가 바뀌었다고 합니다.


 

 

헤라클래스의 방 벽에는 베니스 공국이 루이 14세에게 선물한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시는 예수님(베로네즈 작)"이 걸려있습니다.


 

 

풍요의 방을 지나면 비너스의 방이 나오는데, 비너스의 방에선 우미의 3여신에 둘러싸여 있는 비너스의 모습이 담긴 천정화를 볼 수 있습니다.

 

 


전쟁의 신 마르스의 방에서 볼 수 있는 여러 초상화 중 마리앙뜨와네뜨와 세 아이들 그림입니다. 전쟁의 신인 마르스의 이름이 붙은 만큼 강렬한 빨간색의 벽지가 인상적인 방이랍니다.

 

 

앞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느긋하게 여행을 오시는 분들도 있지만 여행사에서 단체로 여행을 오는 경우엔 시간적 제약이 있어 대부분 궁이면 궁, 정원이면 정원을 선택해서 보게 되는데, 보통은 궁을 많이들 보셔서인지 궁에서도 정원을 볼 수 있도록 중간중간 이렇게 창을 열어 밖을 볼 수 있도록 되어있습니다.


사진에서 보이는 곳은 정원 중앙부가 아니라 옆날개부분으로, 저도 이쪽은 가보질 못했습니다.

 

 

 

입소문으로만 듣던 거울의 방 입구입니다. 프러시아 군 사랑부가 프랑스에 주둔했을 당시 프러시아의 왕인 빌헬름 1세가 이곳에서 대관식을 치뤘으며, 이후 세계 1차 대전 때는 이방에서 베르사이유 조약이 맺어지기도 했다고 합니다.

 

처음 말로만 이방에 대해 들었을 땐 사람들이 거울의 방, 거울의 방, 그러길래 거울로 가득찬 곳인가 했더니 오히려 샹들리에의 홀이라고 하는 게 더 어울릴만큼 방보다는 샹들리에가 가득한 아름다운 홀이었습니다.

설계에만 8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을 정도로 화려하면서도 정교한 이 방 안에는 길이 73m, 폭 10.5m, 높이 12.3m의 방 전체에 17개의 대형 거울과 17개의 대형 창문이 있다고 합니다. 맘같아선 일일이 세어서 확인해보고 싶었습니다만, 또딱또딱 지나가는 아쉬운 시간에 발걸음을 급히 옮길 수 밖에 없었습니다.

 

 

 

머큐리의 방은 왕의 침실로 사용되기도 했고, 왕실 가족의 놀이방으로도 이용되기도 하였고, 루이 14세의 관이 일주일간 안치된 곳이기도 합니다.
 
왕이 쓰던 침대라 그런지 악세사리 등이 요란하게 달려있지는 않은데다 모양 자체는 간결하나, 무늬며, 천 자체가 굉장히 화려함을 엿볼 수 있엇습니다.


 

 

이곳은 왕비의 침실로, 왕의 침실과는 달리 정말 화려합니다. 왕의 침실과는 대조적으로 모든 것이 화사하고, 많은 악세사리들이 달려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왕비의 출산도 이루어졌다고 하네요.

 

 

 

대관식의 방에선 나폴레옹 대관식 그림(다비드 작)도 볼 수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왕비 조세핀에게 왕관을 씌워주는 나폴레옹의 모습을 그린 그림입니다.

이 그림의 진품은 현재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으며 , 이 그림을 그린 다비드가 직접 또 한점을 그려 이곳에 걸어놓은 것이라고 하는군요.


 

그림에 숨은 이야기 #1
 
둘의 차이점을 찾아보면(사진에선 찍히지 않았습니다.)  조세핀의 뒤로 나란히 여인 4명이 서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그 중 왼쪽에서 두번째 여인인 나폴레옹의 여동생 폴린 보르게제의 옷 색깔이 서로 다르다고 합니다.

루브르 박물관에 그린 원본에선 다른 여인들과 같은 흰옷을 입었으나, 베르사이유 궁전 그림에선 핑크색으로 채색해 다비드가 폴린을 좋아한다는 소문이 세간이 퍼졌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림에 숨은 이야기 #2
 
이 그림에서 나폴레옹이 들고 있는 관은 마리앙뚜아네트의 공식 보석 세공사였던 오베르의 수제자이자 1780년 설립된 쇼메(CHAUMET : 프랑스의 대표적인 명품 쥬얼리브랜드)의 창시자인 마리 에티엔느 니토가 만든 것으로, 전쟁이 한창이던 시절 한겨울 어느 새벽에 자신의 가게 앞에 쓰러진 군인을 가게 안으로 들이고, 따뜻한 스프를 먹이게 되었는데 기운을 차린 이 군인이 은혜를 잊지 않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난 후 훗날 이 군인은 프랑스의 황제가 되었고, 니토는 왕실의 전속 보석세공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때 도움을 받았던 군인이 나폴레옹이라고 하는군요.
 
 
그림에 숨은 이야기 #3
 
무릎 꿇은 조세핀 위쪽으로 보면 머리 위에 하얀 면사포를 쓰고 반듯한 자세로 앉아있는 여성의 모습이 보이는데, 이는 나폴레옹의 어머니로, 실제로는 나폴레옹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조세핀이 나폴레옹보다 6살이나 연상인데다 이혼녀이고, 행실까지 문란하여, 나폴레옹이 원정을 나간 사이 바람을 피우기까지 해서 여러모로 맘에 차지 않아 참석을 하지 않았으나 나폴레옹의 요구로 다비드가 그림에 넣었다고 합니다.

조세핀의 이런 행각을 나폴레옹도 모르는 바는 아니었으나, 당시엔 너무 사랑하여 덮어두고 살았으나, 훗날 조세핀이 자신의 아이를 낳지 못하자 결국 내쳤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림에 숨은 이야기 #4
 
위 숨은 이야기와 연결되는데, 조세핀은 이 결혼식이 열리기까지 나폴레옹의 아이를 낳지 못하자 혹시 자신이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혼이 힘든 종교예식으로 결혼식을 치루자고 고집을 피웠고, 당장은 그 요구를 들어주는 듯했던 나폴레옹은 증인을 세우지 않는 방법으로 이 예식을 무효화시켜서 훗날 이혼의 걸림돌을 사전에 방지 했다고 합니다. 이런 걸 두고 뛰는 X, 나는 X 얘기가 있는 것이겠죠.

 

 

 

 

정원으로 나가기전 마지막 방에선 나폴레옹의 아부키에서의 전투(The Battle of Aboukir) 그림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가 궁전에서의 관람은 끝이고, 이제 밖으로 나가 정원 나들이를 하도록 해보아요.
 
 
베르사이유 궁전 건립 배경 (절대왕권의 상징)
 
베르사이유가 있는 지역은 원래 오래 전부터 우거진 숲과 늪이 있어,  많은 종류의 동물들이 서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왕실의 사냥터로 유명했던 곳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곳엔 왕이 사냥을 왔을 때 머물기 위한 작은 궁이 세워져 있었는데 그 작음을 영주들이 조롱할 정도로 그 당시의 왕은 귀족에 비해 힘이 없었고 왕권이 확립이 안되어 있던 시대였다고 하는군요.

 

루이 13세의 아들로 어린 시절 연극을 하면서 태양의 가면을 쓰곤 해서 나중에 태양왕이란 칭호를 받게 되는 루이 14세는 이런 귀족들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어머니의 보살핌으로 크게 휘둘리지 않고 무사히 크기는 했으나, 무시 아닌 무시에 늘 시달렸던 터라 언젠가는 누구도 범적하지 못하는 절대왕권을 이루리라 꿈꾸며, 귀족들의 안아무인격 행태를 가슴 속에 묻어두고 있었다고 합니다.

 

 

루이 14세가 왕으로 즉위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푸케" 라는 재무총감이 자신의 성인 " 보르 비꽁뜨 성" 축정식에 루이 14세를 초대하는데 (나름은 귀족의 힘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닌가 후대에선 예상하고 있습니다.) 너무나 화려하게 지어진 엄청난 규모의 성을 본 루이 14세는 오히려 이것을 귀족에 대한 반격의 계기로 삼았습니다.

 

푸케총감을 부정축재 혐의로 잡아들인 후 다른 귀족들에게 본보기격으로  모든 재산을 몰수한 뒤 겨우 사형만은 면하게 해주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이후 귀족들은 몸을 사리게 되었고, 루이 14세는 강력한 왕권을 손에 쥐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일련 사건의 계기가 되었던 보르 비꽁뜨 성을 설계, 건설한 르 노트르를 비롯, 동원할 수 있는 최고의 건축가, 정원사들을 불러모아 자신의 왕권에 걸맞는 최고, 최대의 궁전을 짓도록 명하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짓게 된 베르사이유 궁전은 공사기간만 50년이나 걸렸고,  한때 절대왕권의 상징이었던 이 궁전의 건립으로 인해 점점 백성들의 삶이 피폐해지면서 훗날 마리 앙뜨와네트의 과소비와 맞물려 오히려 프랑스혁명의 원인을 제공하게 됩니다.

 

 

베르사이유 궁전 관람시 주의사항!
 
루브르 박물관에서는 가이드이건 일행 중 그림을 잘 아는 사람이건 간에 일행에게 설명을 해주는 것이 상관없으나, 베르사이유 궁전에선 따로 허가를 받은 안내원 외에는 함께 움직이는 일행들에게 설명을 해줄 수가 없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다고 합니다.

 

만약 설명해주다가 발각이 되면 꽤 큰 금액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고 하니, 얕은 지식 앞세워 자랑하시다 큰 코 다치시는 일 없도록 주의하세요!

글쓴날 : [11-03-07 10:31] 이희진기자[mh9506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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