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혜초의 왕오천축국전-실크로드와 둔황(하나)


세계 속의 한국인,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실크로드와 둔황-호미숙


하얀 사막 같은 눈길에 발길을 옮기며 국립중앙방물관에 들어선다. 추위에 얼어붙은 거울 연못 위에 황금 노을에 반사되어 더욱 멋스러운 청자정을 휘감은 겨울바람이 차갑기보다는 뜨거운 사막길을 나섰던 서역인들의 향해 들어서는 느낌이다. 1300년 전, 혜초스님의 발자취 따라 떠나는 길, 바람이 매섭게 불어오는 모래 사막을 거닐듯 황량한 바람을 맞선다 

용산으로 중앙박물관을 옮긴이래 1500만 명이 관람했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는 모습에 뜻 깊은 곳에 매번 찾아 올 수 있음에 의미가 새롭다. 

실크로드는 고대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문명 교류의 젖줄이었다. <세계문명전 '실크로드와 둔황' - 혜초와 함께하는 서역 기행>은 실크로드를 구성하는 3대 간선도로(중앙아시아 일대 여러 오아시스를 경유하는 유라시아 대륙의 북방 초원 지대를 지나는 초원의 길과 오아시스로를 따라 펼쳐진 동서를 잇는 통로의 발자취를 따라가 본다. 

중국 실크로드 대표 지역, 특히 파미르 고원 동쪽 지역의 실크로드는 서역에서 둔황을 거쳐 장안에서 동쪽으로 신라 경주까지 이르는 삶과 문화를 교류한 역사의 길이다.  

최고의 전시작품은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으로 727년 혜초가 기록한 세계 3대 여행기 중 하나의 문화유산으로 프랑스 파리 국립도서관이 소장한 이래 1,283년 만에 한국에 최초 공개되는 귀중한 유물이다. 혜초의 여정을 따라 펼쳐진 실크로드 주변 지역 사람들의 삶과 문화, 역사를 살필 수 있는 시간이었다.


혜초의 오언시

달 밝은 밤에 고향 길을 바라보니
뜬구름은 너울너울 돌아가네.

그 편에 감히 편지 한 장 부쳐 보지만
바람이 거세어 화답이 안 들리는구나.

내 나라는 하늘가 북쪽에 있고
남의 나라는 땅 끝 서쪽에 있네.

일남에는 기러기마저 없으니
누가 소식 전하러 계림으로 날아가리.


 

혜초와 왕오천축국전에 대하여 

704년경 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혜초는 약관의 나이에 바다를 통하여 인도에 도착하였다. 불교의 8대 성지를 순례하는 것이 혜초가 인도를 향한 목적이었다. 성지 순례를 마친 혜초는 서쪽으로 아프카니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로 갔다. 동쪽으로 방향을 바꾼 혜초는 파미르 고원을 넘어 727년 11월 상순 당나라 안서도호부가 있는 쿠차에 도착하였다. 인도를 향해 중국을 출발한 지 수 년이 지난 후였다. 인도와 중앙아시아의 40여 곳에 대해 그가 보고 들은 모든 것을 혜초는 한 권의 책 왕오천축국전에 남겼다. 

 

막고굴 제 17동굴 복제동굴(모형) 이란? 

왕오천축국전을 비롯한 많은 둔황문서들이 발견된 곳이다. 지면에서 동굴 꼭대기까지 높이는 3미터이고 정면 벽에는 사각형의 낮은 단이 붙어 있다. 단 위에는 실제 사람과 같은 크기의 상이 조소되어 있다. 가사를 입고 장엄한 표정을 한 지혜로운 승려의 형상을 하고 있다. 절에서는 오랫동안 대량의 불경과 불화, 법기, 기타 종교문서와 사회문서 등을 가지고 있었다. 11세기 그것들을 이 동굴에 몰래 숨겨두고, 담을 쌓아 굴 입구를 막고, 벽면에 벽화를 장식했다, 속칭 ‘장경동’이라한다. 

 

왕오천축국전이 어떻게 발견 되었을까? 

1900년 수백 년 동안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비밀이 문이 열렸다. 둔황 천불동에 머물던 왕원록은 우연히 3미터가 넘는 높이까지 수많은 두무마리가 쌓여 있는 작은 석식 하나를 발견하였다. 현재 ‘17호굴’ 또는 ‘장경동‘이라고 부르는 이 석굴 안에는 11세기 이전의 각종 자료들이 가득 차 있었다.’둔황문서‘의 발견이었다.

현재 둔황문서는 중국을 비롯한 영국, 인도, 프랑스, 일본, 러시아, 미국, 한국 등 세계 각지에 흩어져있다. 문서의 수량은 확인된 것만 4만점이 넘으며, 가장 이른 것은 4세기 가장 늦은 것은 11세기에 해당한다. 문서의 80% 이상은 한문 문서이며, 90%는 불교 관련 문헌이다. 그 외에도 호탄어, 산스크리트어, 소그드어, 티베트어, 위구르어로 된 자료가 포함되어 있으며, 유교와 도교, 마니교, 경교, 및 관청문헌 등이 전한다, 둔황문서는 둔황의 역사뿐 아니라 중국과 중앙아시아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귀중한 자료를 제공해 준다. 

 

왕오천축국전을 어떻게 확인했을까? 

1908년 펠리오가 처음 두루마리 상태의 [왕오천축궂전]을 발견하였을 당시 이 책은 앞뒤가 떨어져 나가 책의 명칭이나 지은이의 이름을 알 수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펠리오는 예전에 읽었던 혜림의[일체경음의]에 인용되었던[왕오천축국전]의 단어를 기억하고, 이 문서가 바로[왕오천축국전] 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눈이 내린 하얀 거울못과 푸른 청자정 그리고 노을
청자정-
한국 박물관 개관 100주년 기념 상징물로 건립한 청자정은 고려 의종11(1157)년 대궐 동쪽의 별궁에 양이정을 짓고, 지붕을 청자로 덮었다는 고려사의 기록에 근거하여 건립하였다. 청자정 건립을 위해 전남 강진 사당리에서 발견된 고려시대 청자기와와 고려시대 유물을 바탕으로 관계 전문가의 자문을 받았으며, 정자의 명칭은 국민공모를 통하여 청자정이라 정하였다.

노을이 지는 무렵, 거울 못 넘어로 저녁 해덩이가 붉은색을 토하더니 사그러지고 있었다.

국립중앙박물관 계단에 그려진 사막을 가로지르는 낙타행렬

국립중앙박물관, 2010년 관람객 300만 명, 용산 이전 후 1,500만 명 돌파!!

계단에 그려진 사막을 가로지르는 낙타행렬 그림에 올라탄 어린이들 

글쓴날 : [11-01-25 00:13] 호미숙기자[homihomi1@naver.com]
호미숙 기자의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