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박물관 실크로드전-호탄왕국, 소그드족, 누란의 미녀, 위구르족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특별기획한  '실크로드와 둔황전'을 수요일 밤, 관람하였다. 감사하게도 파블 타임즈 회원들에게 프레스카드를 발급해줘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2005년 6월, KAL이 우루무치로 첫 취항했을 때 마음 설레며 따라가 보았던 실크로드, 신강 위구르 자치구 박물관의 전시품을 대거 만날 수 있어서 너무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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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는 서쪽의 로마, 이스탄불, 페르시아, 팔미라에서 중앙아시아 ~스탄국들을 지나 천산북로, 중로, 남로, 중국 당나라의 수도 장안을 거쳐 마침내 신라의 경주까지 이르는 위대한 인간 교류의 장이다. 생명력 넘치는 도전과 모험의 그 길에 어떤 사람들이 살았으며, 어떤 문화를 받아들이고 전파했는지, 그 소국들의 흥망이 너무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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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전해지면서 景敎라 불리웠던 네스토리우스교는,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의 불일치를 주장, 431년 에페수스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파문된 초기 기독교 교파이다. 네스토리우스는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였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동방기독교로 당나라 시절 한 때 번성했고, 페르시아와 시리아에서 번성했으나, 이슬람의 박해를 받아 오지로 밀려났다. 현재는 미국 시카고에 '아시리아 동방교회'라는 이름으로 존재하기도 한다. http://blog.joinsmsn.com/liberum/12025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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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태양무늬 조각편은 불교전래 이전 중앙아시아의 토착 종교였던 조로아스터교의 흔적이라고 한다. 그들은 불을 숭배했지만, 태양도 함께 숭배했다. 쿠차(庫車)의 쿰트라에서 출토된 것으로 알려져 있고, 생활용기가 아닌 종교적인 용품으로 보인다.
*주목하실 점은 우리나라 중앙 박물관 소장이라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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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NHK의 유명한 실크로드 대탐사를 본 사람이라면 사라져버린 호탄왕국의 화려한 불교문명을 기억하실 것이다.
 
호탄왕국은 질 좋은 옥생산지로 명성이 있어 부유했다.  그러나 그들에겐 비단을 만들어 낼 기술이 없었다. 호탄왕은 중국왕실에 청혼을 하고, 꾀를 내어 위의 그림 설명과 같은 경로로 비단 생산을 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문익점과 마찬가지 방법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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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장안에서 생산된 실크에서 교역의 유래가 된 험난한 실크로드 길.
위의 길은 초원의 길이고 중간 길은 오아시스 길일텐데, 이번 전시 유물은 이지역 출토품들이었다.
 
 
 
내가 2005년에 우루무치에 갔을 때, 현지 가이드가 트루판의 공연장 칠판에  이 글자를 써 보였다. 본래는 한문에 없는 신어를 만들었는데, 이 지역의 지형을 보고 만들었다고 했다. 위의 지도와 비교하면 딱 들어 맞는다. 一을 산맥, 田을 넓은 분지, 그리고 土를 가장 낮은 지대인 투루판으로 비유했다는 현지 가이드의 설명이 그럴듯 했다.
 
신쟝(新疆)이란 이름은 한무제때 잠깐동안 지배했었던걸 근거로 청나라때 강제로 편입해서 새로운 영토 라는 뜻으로 지은 이름이다. 청나라 때 내몽고도 그렇게 해서 중국영토가 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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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그마한 보살 두상과 공양인 두상은 신강성박물관에서 동행했던 미술선생과 이쁘다고 감탄했기에 더욱 기억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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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달린 두마리 짐승이 서로 마주 보고있는 청동제 고리
(BC 5C - BC 3C, 신장위구르자치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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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조련사와 영험한 짐승무늬가 있는 나무 장식판(1-4세기, 호탄지구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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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소매 실크 상의, 얼핏보아 우리나라 저고리와 흡사하다.
(2-5세기, 2003년 누란 고성에서 발굴, 신장 문물고고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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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신의 형상이 있는 면직물, 파란색 면포 위에 흰색 문양을 넣었다.
 
머리에 광배가 있으나 가슴을 온통 드러내고 양손에 잡은 뿔모양 그릇에는포도가 가득하다. 트루판은 포도재배지로 유명하다.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한 풍요기원의 유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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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 동서교역의 중심인물들이었던 '국제 상인 소그드족'.
번창했던 그들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채널 다큐에서 추적을 한 프로를 본 적이 있었는데, 그들의 후예는 중앙아시아에 있지 않고, 러시아 국경내로 이주하여 살고 있었다. NHK였든지 BBC였든지 모 해외방송팀이 갔을 때, 그들은 이마을 저마을에서 나타났다. 가게도 운영하지만, 농사도 짓고 목축도 하는 사람들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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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그드인은 자식을 낳으면 반드시 입에 꿀을 먹여주고,
손에는 아교를 발라준다.
아이가 성장했을 때, 입으로는 항상 달콤한 말을 하고,
손에 돈이 들어오면 아교로 붙인 것 처럼 절대 돈이 손에서 나가지 말라는 뜻이다."
 
상술에 능한 그들은 남에게 속상할 말은 하지 말고, 손에 들어 온 돈은 절대 지키라는 가르침을 대물림 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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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샤로부터 전래된 조로아스터교를 믿는 소그드인들은 죽으면 일단 침묵의 탑에 시체를 안치하여 조장을 한후, 깨끗이 유골만 남으면, 나중에 시신을 수습하여 관에  넣는다. 인도의 뭄바이에 조로아스터 교단이 있었는데, 숲 속 너머로 거대한 침묵의 탑 꼭대기를 보았다. 인도인 가이드가 지휘자 쥬빈 메타도 조로아스터 교도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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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그드 문자로 쓰여진 마니교 편지
 
마니교는 조로아스터교의 분파로 30세 때 신의 계시를 받은 마니(216.4.14~274)가 교주이다. 당나라를 거쳐 몽골, 위구르족에 전파된 종교로 유명한데, 중앙아시아 지역에 성행하였으나 13-14세기에 쇠퇴, 소멸한 종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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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란의 나무 미이라..그들은 가족이 숲이나 사막에서 돌아오지 않으면 나무로 미이라를 만들어 모셨다. 왼쪽의 앞 나무는 여성의 성기를 표현했고, 뒤의 나무는 남성의 성기를 표현했다. (누란 샤오허 묘지 출토. 신쟝 문물 고대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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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신강성박물관에서 가장 놀랐던 것은 이 누란의 미녀였다. 그때는 누란의 미녀라는 호칭이 붙어 보도되기 전이었다. 6-7개의 남녀 미이라가 있었는데, 모두 키가 커보였고, 무엇보다 이집트식의 미이라가 아닌, 자연 그대로 미이라가 된 모습이어서 경이로웠다.
 
이 여인의 가죽구두도 멋있었고, 그 얼굴에 드러나는 미인적 풍모가 기가 막혔다. 사진은 절대 찍지 못하게 해서 못찍었으나,이 분의 사진 한장은 꼭 갖고 싶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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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하학 편직물(1-4세기, 신장문물고고연구소)
 
신강성박물관에서 본 내 기억의 편린은 이런 색갈의 책크가 아닌 회색과 검정의 아주 세련된 모직물 천조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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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모자(BC 2000-BC 1000, 누란 샤오허 고분 출토, 신장문물고고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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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BC 2세기에 만든 현악기, 나무로 만든 공후, 투루판 박물관 소장
우) 2-3세기, '새머리 모양의 베개', 신장위구르자치구 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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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리 안대
 
투루판에서 40km 떨어진 아스타나 고분에는 3세기에서 8세기에 걸쳐 조성된 지하묘지가 있다. 아스타나란 위구르어로 '휴식'을 뜻한다. 거기서 발굴된 구리 색안경인데, 강한 자외선을 차단하기 위한 선글라스였다.  이 지역에서는 유일하지만, 에스키모 등의 유적에서도 가끔 보인다고 해설자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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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타나묘지에서 발굴된 나무 인형들
 
왼쪽의 인형은 검은 피부에 곱슬머리로 아프리카인을 연상시킨다.(신강위구르자치구 박물관 소장)
한약을 연구하는 친구가 말했다. 개미도 저렇게 돌아다니는데, 호기심의 동물인 인간이 실크로드 이전에도 불원천리 만리로 오갔을 거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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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의 아름다운 토기가 국립중앙 박물관 소장품이다. 일본의 문벌인 오타니가 영국유학중 탐험가 스타인을 만나 자극을 받아서 중앙아시아 탐험을 떠났다. 1902년부터, 3차례, 스타인은 닥치는 대로 수집하여 가져간 사람이었다.
 
후에 구하라 후사노스께에게 유물의 일부가 팔렸고, 구하라는 오랜 친구 데라우찌 조선 총독에게 선물을 하였다. 조선총독부박물관에 소장되었다가 종전후 일본인 들은 짐을 꾸렸으나, 못가져가게 되어  1700점의  중앙아시아 유물이 대한민국 소유가 되었다. http://blog.joinsmsn.com/liberum/12025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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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채색토기는 BC 8-BC 3세기 신장문물고고연구소 소장품
우) 봉수형호는 7-8세기의 트루판에서 출토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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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희여와도, 7세기, 트루판 아스타나 고분 출토, 국립 중앙박물관 소장
 
중국고대 신화에 나오는 남녀신인 복희와 여와...아래 몸은 얽혀있다.
아스타나고분 마당에는 큰 복희와여화의 돌로만든 조각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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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도, 8세기 비단 그림, 아스타나 고분 출토, 신장위구르자치구 박물관
 
옛날에는 이렇게 뺨이 통통해야 미인이었다. 뺨을 강조하기 위한 화장을 했다. 이 지역 출신인 양귀비도 이런 얼굴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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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일까요? 경주 구정동 방형고분의 모서리 기둥입니다.
눈이 깊고 코가 높은 8-9세기 서역인의 얼굴이 새겨져 있으니 실크로드의 소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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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괘릉의 서역인 무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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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역인 점토인형, 7-9세기, 경주국립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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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실크로드 교역은 신라 경주로까지 이어졌다. 당시 사라벌의 귀족들은 무척 이국적 명품을 즐겼을 것이다. 나도 즐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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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은 위구르족 문자이고 아래는 그 내용.
 
중앙아시아를 지배했던 위구르족은 투르크계의 유목민으로 후돌궐제국(돌궐 역시 터키계)을 멸망시키고 744년 위구르제국을 세웠다고 한다. 위구르족은 파키스탄, 카자흐스탄, 우즈벡, 터키, 러시아 등지에 흩어져 사는데, 내가 갔을 때, 신장 위구르인들의 생활은 비참했다.
 
교육을 받은 지식인은 독립운동할까해서 중국당국이 철저히 감시하거나 형무소에 수감중이라 했고, 서민층의 어린이들은 맨발에 교육도 못받고 뭔가를 팔러 다녔다. 공연장에서 본 그들의 노래는 씩씩한가락이지만, 애수가 서려있었다. 위구르 남녀의 용모는희고, 눈이 아름다웠다.  
 
 
 
 
글쓴날 : [11-01-21 15:40] 손금지기자[Liberum@hitel.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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