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북미래문화재단 안동봉화 여행] 알뜰살뜰 즐기는 안동 여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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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집을 나서 전철을 타고 시청역으로 향하는데 날씨가 심상치 않더니 기어이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일기 예보상으로 비가 내릴지 모른다고 했었는데 기온이 예정보다 더 떨어졌는지 펑펑 내리는 함박눈이었다. 올해의 첫 눈을 이렇게, 뜻하지 않게 맞이하였으니 기쁘기 한이 없어야 하건만 하지만 사실 처음 맞이하는 눈은 그렇게 반갑지만은 않은 사태가 되고 말았다. 시청역에서 내려 프레스센터에서 경북미래문화재단에서 온 버스를 타고 제 시간보다 조금 늦은 시간에 출발할때만 해도 날은 제법 쌀쌀한 편이었고 흐렸지만 아무것도 내리지 않아 내심 안심한터였다. 헌데 버스가 출발하고 고속도로에 들어서자 갑작스럽게 날씨 상태가 변하기 시작하더니 경기도권에 진입하자 폭설로 돌변하였다. 서울에서 안동까지는 버스로 넉넉잡아 4시간. 12시까지 도착하려면 빠듯한 시간이었건만 눈길은 차의 속도를 점차 늦추게 만들더니 기어이 고속도로는 정체되어 주차장과 다름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여주의 휴게소에 버스가 들어섰을 때에는 이미 약속된 시간은 지나있었고, 이제는 안동 여행의 일정이 어찌 되어야 하느냐를 두고 걱정 해야할 판이었다.
아니, 우리 오늘 무사히 안동은 갈 수 있을까?
갖은 걱정과 불편한 버스에서의 시간으로 지칠 대로 지친 후에야 버스는 첫 목적지인 안동 장씨 경당고택에 도착했다. 본래 일정대로라면 이곳에 12시에 도착해 점심을 먹은 후 안동하회마을이 내려다보이는 부용대로 가는 것이었지만 도착시간이 이미 오후 2시를 넘긴 시각이었기에 점심을 먹고 부용대는 포기하기로 한 참이었다.
종가집 상차림의 진수 경당고택
경북 안동시 서후면 성곡리에 위치한 경당고택은 조선 중기 학자인 장흥효의 종가로 장흥효의 본관은 안동이며 호가 경당이라 하여 고택의 이름이 경당고택이다. 장흥효는 유성룡과 함께 김성일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관직에는 뜻이 없어 후진 양성과 학문에만 전념한 전형적인 향반이다. 경당고택의 안채는 정면 6칸, 측면 2칸, 대청 4칸. 사랑채는 정면 3칸, 측면 2칸, 그리고 사당을 가지고 있는 제법 규모가 큰 종택이다. 사랑채에는 경당고택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는데, 본래는 금계리의 제월대 앞에 있던 것을 50년 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고 한다.
이곳에서 아주 특별한 밥상이 준비되어 있었다. 바로 18찬의 종가집상차림이다. 기본 반찬이 15종류, 거기에 안동의 자랑인 간고등어, 내가 좋아하는 갈비찜, 처음 먹어보는 문어숙회에 코다리조림이 포함되어 있다. 쫄깃쫄깃 더덕구이도 보이고, 황태를 잘게 찢어만든 황태포채라는 또 처음 보는 반찬도 있고 얼마 전 다녀온 규슈에서 한국음식이 일본으로 가서 성공한 사례라고 일컬어지는 명란젓도 보이고, 거기다 너무 좋아하는 굴젖도 보여 정말이지 눈이 호강하고 입이 쉬지 않는 푸짐한 점심 식사다. 배부르게 밥 먹고 마시는 숭늉은 소화도 시키고, 음식으로 텁텁해진 입안을 헹굴 수 있는 최고의 디저트.
식사를 끝마치고 대청마루로 나가니 경당고택의 종부이신 장성진 어르신이 제사 준비에 한참이다. 알고 보니 방문했던 그 날이 제삿날이었는데 특별한 손님들을 대접하느라 제사보다 더 신경을 쓰셨다는 말씀을 하신다. 17세기 중엽 146가지의 요리를 최초로 한글로 엮은 ‘음식디미방’을 집필하신 안동 장씨 정부인의 자손이신 장성진 어르신은 제사에 대한 이야기시며 안동의 음식이야기, 경당고택 이야기 등을 아주 맛깔스럽게 풀어놓으시어 말씀 하시는 내내 집중력을 잃지 않게 했다. 식사도 훌륭하게 마치고, 재미있는 이야기도 듣고 나니 어느새 해가 서산 위에 걸렸다.
안동 명품 한지를 체험 할 수 있는 안동전통한지
풍산읍 소산리에 위치한 안동전통한지에 도착했을 땐 이미 석양이 내려앉고 있었다. 낮의 조금 포근했던 기온도 그에 따라 차츰 내려가고 버스에서 미리 지급 받은 무릎 담요를 숄 삼아 둘둘 말고 닥나무가 그득하게 찬 창고 앞에서 안동 한지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제조방법인 한지는 닥나무를 주원료로 사용하는데, 주로 중부지방에 분포되어 있는 닥나무는 대나무처럼 속이 비어 있어 꺾으면 ‘딱’ 소리가 난다고 하여 닥나무라고 붙여졌다는 속설이 있다. 닥나무는 가마솥에 넣어 물을 부은 다음 10시간 정도 삶아 불려서 1차 작업을 하는데 그대로를 말리면 표피 혹은 흑피라 하고 표피를 제거한 것을 백닥 혹은 백피라고 한다.
안동전통한지에는 한지를 제작하는 공장, 한지전시판매장, 상설전시관, 안동한지공예관, 한지체험관, 전시관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설명을 들은 후 제일 먼저 방문한 곳은 한지의 탄생과정을 낱낱이 볼 수 있는 한지제작공장이었다. 한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잿물을 백닥에 넣어 6~7시간 정도를 장작불에 삶고, 맑은 물로 3~4일을 헹구고 햇볕에 쬐어 표백한 후, 먼지나 불순물이 있는 지 확인하여 제거하고, 넓은 돌판 에 백닥을 올려 닥방망이로 닥섬유가 뭉개져 죽이 될 때까지 두들겨 준 후, 한지뜨기를 하여, 떠진 한 지를 압착해, 건조 시킨 후에야 비로소 한 장의 한지가 된다. 공장 안에는 한지를 만들기 위해 많은 분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어 견학하는 것 자체가 폐가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역시나 처음으로 보는 한지의 제작과정은 완성품을 보는 것과는 또 다른 묘한 감동이다.
공장을 나와 전시장을 두루두루 둘러보았다. 한지를 판매하는 판매장에서 알록달록 한지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공예관에서 한지로 만들어진 공예품들에 입이 떡 벌어지는가 하면, 예술가의 손에서 작품으로 발전한 한지 예술에 탄성을 자아내고 나서야 비로소 한지를 이용한 필통과 명함통 만들기 체험을 할 수 있었다. 내가 도전한 것은 팥죽색 한지를 입혀 꽃문양을 넣는 길쭉한 필통. 본래 가만히 앉아서 뭘 만들거나 조립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좀이 쑤시는 작업이긴 했지만 그래도 완성해 놓고 보니 제법 뿌듯하다.
고택에서 즐기는 음악회 가일마을 수곡고택
그렇게 안동전통한지에서의 알찬 시간을 보내고 마지막 종착지인 가일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별만이 아스라이 보이는 깊은 밤이었다. 안동으로의 늦은 도착과 계속 늦춰지는 일정 덕에 고픈 배를 쥐어 잡고 도착한 수곡고택은 정조 16년 권조의 종가로 조선시대 전형적인 양반집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안동 시습재가 종택, 이곳은 그 작은집에 해당한다.
행랑채에 여장을 풀고 푸짐한 저녁식사 후에 안동 여행의 대미를 장식하는 수곡고택에서의 ‘야간고가 음악회’가 열렸다. 음악회의 사회를 맡으시고, 재미있는 이야기와 멋진 대금연주를 선보이신 이승연씨를 시작으로 국악 관련 얘기만 나왔다하면 등장하던 ‘쑥대머리’의 낯익은 가락과 진도아리랑, 중국 악기 고쟁의 신명나는 소리, 그리고 남성 중창단의 파워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코믹스럽고 또한 재치만점 안무가 즐거웠던 야간 음악제의 밤. 비록 칼바람으로 인해 몸은 오슬오슬 떨리고 추웠어도 즐거운 음악과 함께 한 고택에서의 밤은 참 맑고 상쾌하다.
다음날 코가 시린 웃풍에 눈을 떠 행랑채를 나서 산책겸 수곡고택의 주변을 맴돌며 사진을 찍었다. 어제 너무 이슥한 밤에 왔던지라 고택의 풍경을 담지 못한 아쉬움 때문이었다.
나의 근원, 뿌리, 조상이야기를 알아보는 재미있는 성씨이야기
그리고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시습재에 들러 단체 사진을 찍은 후 다시 수곡고택으로 돌아와 성씨이야기를 들었다. 대청마루에 앉아 진행된 성씨이야기는 안동에 오기전 미리 본관과 성을 보내 준비된 자료를 통해 진행되었는데 할아버지의 재치있는 말씀과 각 성씨의 유명하신 분들이 남기셨다는 말씀을 풀이해서 듣는 재미가 제법 쏠쏠한 시간이었다. 본관이 평해 황(黃)인 나에게 주신 사자성어는 정사역천(精思力踐). "시작하는 모든 일을 사전에 정밀하게 생각한 다음, 소신이 서면 모든 힘들 다하여 실천에 옮겨라"라는 것으로 명종때 성주목사를 지낸 황준량의 말씀이다. 평해 황씨는 한나라의 유신인 황낙이 사신으로 왔다가 중국으로 귀향 하던 중 폭풍을 만나 평해에 표류한 후 정착하여 시작된 씨족이라고 한다.
알기로는 요동정벌때 이성계를 따라 회군한 황희석과 세종때 대사성을 지낸 유학자 황현, 임진왜란 때 권율 휘하에 공을 세운 황여일, 영조때 실학자이자 언어학자로 이재유고와 화음방언자의해를 저술한 황윤석등의 유명인이 있는데, 그런 정보가 달리 나와 있지 않아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전해주신 말씀은 성급하고 덜렁거리며 무슨 일을 하던 간에 추진력은 있는데 맺음이 확실하지 않은 나에게 톡톡히 전해주시는 일침 같아 감사한 마음에 지금도 집에 고이 간직하고 있다.
어제부터 이어진 안동에서의 즐거운 여행은 이제 끝마쳐야 할 시간. 다시 1시간여를 달려 이번에는 두번째 여행지인 봉화로 출발한다. 비록 때아닌 11월의 폭설로 일정이 조금 달라지긴 했지만 그래도 충분히 알뜰살뜰하게 둘러본 여행이었기에 안동에서의 아쉬움보단 만족감이 한층 더 깊어졌다. 안동하면 떠올리던 하회마을, 간고등어, 찜닭은 이제 그만! 이제는 조금 더 안동의 속살을 들여볼 수 있는 이런 알찬 여행 어떨까.
참고자료
경북미래문화재단 : http://www.gbculture.org/ 네이버 백과사전 (경당고택 부분) : http://100.naver.com/100.nhn?docid=923071 안동전통한지 : http://www.andonghanji.com 안동의 고가 : http://www.gbculture.or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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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날 : [11-01-04 00:01] | 황희숙기자[maskaray@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