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봉화 석천계곡 속 석천정사

 

삼계교에서 시작해서 석천계곡을 거슬러올라갔다. 첫 목적지는 석천정사였고, 끝 목적지는 닭실마을이었다. 우리만 걸어간 건 아니고 닭실마을의 시조인 안동 권씨 집안의 어느 풍채 좋은 장손과 함께 걸었다. 참고로 삼계교는 삼계서원 근처에 있는 조그마한 다리다. 석천계곡이 흘러내려와 내성천과 만나는 지점에 석천계곡을 가로지르며 놓여있다.
 
잘 포장된 길이 잠시 이어졌다. 가로등까지 나무 모양인 엄청나게 신경 쓴 길이다. 길은 징검다리가 있는 곳에서 포장을 걷고 진짜 계곡길이 됐다. 석천정사로 가는데 굳이 징검다리를 건널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그냥 지나치기 뭣해 일부러 징검다리를 건넜다 돌아왔다. 징검다리 중간에 서서 바라본 석천계곡의 풍경에 헛걸음은 아니었구나…… 하고 생각했다. 삼계교 위에서 바라본 석천계곡과는 느낌이 달랐다. 계곡이 바싹 내게 다가와 내 마음을 간질였고, 계곡물이 내 눈높이 조기서 흘러내려와 내 발바닥 요기를 스치고 지나갔다. 나 혼자 이런 망상에 빠져있으면 보통 은영이는,
 
‘또 역마살이 도졌구나…… 혼자서도 참 잘 놀아요…….’
 
하면서 휑하니 가버리는데, 이번엔 어찌된 심판인지 고귀한 은영님께서 나를 따라 징검다리에 오르셨다. 나의 누추한 망상에 왕림하신 거다. 징검다리를 한 돌 한 돌 밟으며 내게 다가오시는 은영님…… 저야 고맙죠…… 은영님, 한번 안아서 들어드릴까요?…… 무거울 거라고요?…… 괜찮습니다, 오빠 한번 믿어보세요…….


징검다리에서 돌아 나와 계곡가 산책로를 따라 계속 걸어 올라갔다. 몇 걸음 가지 않아 ‘天洞霞靑’이라고 커다랗게 새겨진 바위가 있었다. 오른쪽부터 읽어야 하니 ‘靑霞洞天(청하동천)’이 되겠다. 한 자 한 자 읽으면, 푸를 청…… 노을 하…… 동네 동…… 하늘 천……이다. 물론 내가 읽어낸 건 아니고 동행했던 안동 권씨 장손께서 이렇게 읽어야 한다며 가르쳐주셨다. 익숙한 서체로 쓰여있어도 알까 말까 한 글자들을 이상한 서체로 쭉 써놓았는데 그걸 내가 읽을 수 있을 리 만무하고…… 하긴 후세가 언문의 천하가 될 줄 이 분들이 어떻게 아셨겠어? 다 이해한다.

이미 알아낸 글자를 갖고 온갖 상상력을 동원해서 직역해보면 이렇다.
 
[ 하늘나라의 하늘 ]
 
‘청하’는 ‘푸른 노을’이다. 나는 ‘청하’를 이렇게 해석했다. 강한 시작적 대비를 이용해서 사시사철 24 시간 동안 펼쳐지는 모든 형태의 하늘을 통틀어서 표현했다고……. 물론 이건 나 혼자만의 해석이지 안동 권씨 장손께서 해석해주신 게 절대로 아니다. 안동 권씨 장손께서는 단지 이렇게만 말씀해주셨다.
 
“여기서부터는 귀신이 범접할 수 없는 곳입니다. 신선이 사는 곳이죠.”
 
그 옛날에 석천정사에서 공부하던 학생들이 도깨비 때문에 많이 고생했는데, 이 글자를 새기고 난 다음부터는 도깨비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나는 믿을 수 있다.

‘청하동천’에서 석천정사까지 편안한 길이 쭉 이어졌다. 굳이 ‘계곡’이라고 이름을 붙여서 그렇지 석천계곡을 관통하는 동안 오르막다운 오르막은 하나도 없었다. 세상 모든 계곡이 이렇기만 하면 천지에 등산이란 게 있을 수 없겠다. 우리는 계곡과 나란히 흐르는 천변 바위를 훌렁훌렁 타넘고, 천변 자갈을 자갈자갈 밟고, 솔숲 언저리를 직통으로 관통하며 걸었다. 단어 뜻 그대로 신선유람이었다. 길이 편하다고 풍경까지 막돼먹은 건 아니었다. 지금이야 다 알아버려서 신비감이 없지만, 우리가 석천계곡을 따라 한창 걸어 올라가던 때만 해도 저 뒤로 심산유곡이 끊임없이 이어질 줄 알았다. 계곡 저 끝에 또 다른 인간의 세계가 펼쳐질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석천계곡은 그런 계곡이었다.
 
솔숲 모퉁이를 돌자 석천정사가 눈에 띄었다. 나는 석천정사의 첫인상에 뿅갔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본능적으로 이런 곳에다 터를 잡고, 여기에 이렇게 생긴 집을 짓고, 여기서 이런 식으로 세월을 보내길 바랄 것이다. 석천정사는 이처럼 자연을 대하는 한국사람의 본심을 100% 정답으로 형상화시켜 놓은 곳이었다. 높지는 않지만 체모 반듯한 산이 석천정사의 뒤를 든든히 받치고 있고, 큰물은 아니지만 넉넉한 계류가 석천정사 앞을 유유히 흐르고 있고, 길 본연의 자세로 소통에 임하는 소로조차 전망대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곳이 석천정사다.
 
석천정사 주변에 펼쳐져 있는 석천계곡의 느낌은 지금까지 봐온 석천계곡과 사뭇 달랐다. 분명히 같은 석천계곡이지만 이까지 오는 동안은 계곡을 이루는 바위가 흐르는 물을 압도했던 반면, 석천정사 앞에서는 흐르는 물이 누운 바위를 이겼다. 지금까지 볼 수 없던 널찍한 암반이 석천정사 앞에 드러눕고, 그 위로 평균의 배가 넘는 수량의 물이 흘러 넘쳤다. 암반 중간중간에 마련된 공간에 스며든 물은 석천정사의 단아한 자태를 그대로 반사시켰다. 너무 아름다웠다.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었다. 석천정사 앞에 드러누운 암반에 ‘백석량’이라는 이름이 특별히 붙여졌다. 물이 차지 않으면 자연스레 다리가 되기 때문이다. 누가 말했다? 물론 안동 권씨 장손입니다.
 
자연을 훼손시키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놓여있는 일회용 다리를 건너 석천정사 안으로 들어갔다. 석천정사는 충재 권벌선생의 장남인 청암 권동보선생이 1535 년에 세운 정사다. 충재 권벌선생이 근처 닭실마을에 청암정을 세운 것이 1526 년이니 딱 9 년 후에 세운 것이다. 그런데…… 혹시 정사와 정자의 차이점을 아시나요? 설마…… 물론 그럴 리 없겠지만…… 혹시 제 지적 수준이나 유희감각을 깡그리 무시하시고 이렇게 되묻는 건 아니시겠죠?
 
“정사와 정자는 서로 선후의 관계로 정사가 선이고, 정자가 후다. 이 둘은 또한 시작과 끝의 관계로 정사가 시작이고, 정자가 끝이다. 어떤 이는 이 둘을 원인과 결과의 관계로 보기도 하는데, 정사가 정자의 원인이 되고, 정자가 정사의 결과가 된다. 우리는 정자를 보기 위해 정사를 한다. 맞죠?”
 
정말 짜증 제대로십니다……. 지금 제가 말씀 드리고자 하는 정사와 정자는 그런 정사와 정자가 아닙니다. 자! 잘 들어보세요. 정자는 사방이 뻥 뚫린 목조건축물로 경치가 좋은 곳에 지어놓고 그 위에 앉아서 조용히 쉬거나 시를 읊거나 풍류를 즐기는 곳이고, 정사는 부엌까지 마련해두고서 한가히 거처하며 후학을 키우는 일종의 별장 같은 곳입니다. 석천정사는 정사지 정자가 아닙니다.
 


대문을 통과해 들어가자 소박한 목조건물 한 채가 왼편으로 비켜서있었다. 산수료(山水寮)였다. 산수료는 정사를 찾아온 이의 발길을 혹시나 자신이 막을까 노심초사하면서, 또한 행여 계곡의 풍경에 훼방을 놓을까 겁내 하면서 비탈에 치우쳐 서있었다. 지금 누가 살고 있을 리 만무하고 건물 자체가 살아 숨쉴 리 없지만, 이 오래된 목조건물은 석천정사를 위하여 음으로 양으로 자신을 낮추고 있었다. 산수료는 정지와 방 2 개를 나란히 품고 있는 소박한 살림집이다.
 
이에 비해 수명루는 서있는 위치나 건물의 의미로 볼 때 산수료와 완전히 반대였다. 석천정사를 찾아온 이는 누구라도 이 수명루에 올라가지 않고는 계곡을 제대로 볼 수 없다. 게다가 수명루에 올라선다고 해서 계곡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굳게 닫힌 창문을 열고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야만 겨우 계곡이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만약 계곡을 오롯이 만끽하고 싶으면 창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야 한다. 나서서 난간에 서야 비로소 석천계곡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즉, 수명루는 인간과 석천계곡을 단절시킴으로써 그 사이에 수천 배, 수만 배의 자연적,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의미를 부여해 넣는 당당함을 갖고 있다. 이런 당당함에 내가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우리는 수명루 위에 올라섰다.

 

[ 신발을 벗고 올라가세요. ]

 

라고 적혀있단 말은 올라가도 된다는 말도 된다. 그리고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생각보다 답답했다. 나는 아예 창문 밖으로 나가 난간에 섰다. 그제서야 석천계곡이 한눈에 들어왔다. 한눈에 들어올 뿐만 아니라 석천계곡의 계류가 내 품을 향해 마구 달려와 안겼다가 방향을 꺾어 제 갈 길을 갔다. 생각해보니 내 품이 아니라 석천정사의 품이다. 석천계곡에 흐르는 물은 수명루에 고스란히 안겼다가 제 갈 길을 간다.
 
수명루 누마루 바로 앞에 거칠게 다듬어놓은 돌이 하나 있었다. 생김새를 묘사하자면 주춧돌이 대충 허벅지 높이까지 삐쭉 튀어 올라왔다고 생각하면 된다. 누마루와 엇비슷한 높이였다. 안동 권씨 장손께 이 돌의 용도를 여쭤보니 옛날 조명이라고 하셨다. 이 돌 위에 마른 소나무 뿌리 같은 걸 얹고서 불을 피우면 그럭저럭 책을 읽을 만하다고 하셨다. 우리끼리 갔다면 전혀 모르고 지나칠 뻔했다.
 
누마루 곳곳이 수리한 흔적으로 상처투성이였다. 안동 권씨 장손께서 말씀하시길 수명루에 앉아 고기를 구워먹은 사람까지 있다고 했다. 그래서 최근에 검게 탄 누마루 바닥을 가셨다고 했다. 이런 몰상식한 사람들…… 아무쪼록 모두들 석천정사의 소중함을 깨닫고 이를 지금 모습 그대로 영원히 이어갔으면 좋겠다.
 
수명루와 마주보는 산비탈에 석천정이 있었다. 수백 년을 두고 고였다 흐르기를 반복해온 샘이다. 우리가 간 그 날도 바로 떠서 마실 수 있을 만큼 맑은 물이 풍부히 고여있었다. 석천정사라는 이름이 바로 이 석천정에서 유래됐다. 석천계곡이란 이름도 이 석천정에서 유래됐다. 그저 나지막한 구릉 사이로 흐르는 이름 없는 개울에 불과했을 이 일대에다 생명을 불어넣고, 이야기를 새겨 넣은 석천정이다.

글쓴날 : [10-12-23 18:57] 이한설기자[dondog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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