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아이는 이미 통섭형 인간으로 성장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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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섭형인재라는 말이 요즘 화두에 떠오른다. 통섭이라는 말은 (統攝, Consilience) =‘큰 줄기를 잡다, 모든 것을 다스린다, 총괄하여 관할하다’라는 뜻이다. 학문에선 ‘지식의 통합’의 개념으로, 특히 서구 르네상스 시대 이후 거리감이 있던 자연과학과 인문학을 연결하려는 통합 학문 이론이다. 최근에는 학문 세계뿐 아니라 산업현장·일상생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가치 있는 것들을 결합해 새롭고 창조적인 것을 만든다는 개념으로 흔히 쓰인다. 단순히 지식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섞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다른 것들이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한마디로 재주 많고 박학다식한 만물박사형 인간이라야 통섭형 인간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통섭형 인재를 기르고 잘 활용하기는 쉽지 않다. 박학다식이 곧 통섭이 아니고 다양한 융합시도의 실패와 좌절을 겪은 후에 성과를 얻을 수 있다. 그러니 뼈를 깎는 노력과 경험으로 전천후 인간이 되어야 한다. 호기심 천국형 인간은 이에 가깝게 다가설 수 있는 감성적인 요건을 갖추었을까. 하지만 불굴의 투지와 노력을 아끼지 않는 에디슨 같은 99%의 땀을 투자하여야 하는 기본적인 조건이 앞서야 한다. 가능하다면 10대에 흥미와 재능을 조기 발견할 수 있고, 오지랖 넓은 사회생활과 새롭고 참신하고 남다른 것에 집착할 줄 알고, 계산보다 행동이 우선하여 가끔은 진한 실패를 경험하며 원대한 이상적인 목표를 지향하는 사람이면 통섭형인간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현재 대학생활을 하는 대학생이 인간의 수명이 연장되어 70대까지 일을 한다고 가정하면 5번 정도의 다른 업종의 일을 해야 하는 사회생활을 영위해야만 한다고 한다. 너무나  충격적이고 놀라운 사회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급변하는 정보화시대는 시대가 변하는 만큼 인간에게도 가혹한 요구를 하고 있다. 시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인간은 낙오되고 대열에서 이탈하고 마는 것이다.



현시대에 살고 있는 직업을 두 번, 세 번 바꾸는 인생 이모작, 삼모작에 성공한 특별한 인간이 가끔 있어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었는데 앞으로는 인문과 자연과 과학을 두루 갖춘 통섭형인재가 직장에서 우대를 받을 것이며 이미 어떤 분야에서는 시를 쓰는 태양에너지 연구원이나 변호사이면서 의사인 통섭형인재들이 각광을 받고 있다.



일찌기 레오나르드 다빈치는 미술과 과학, 의학 등 여러 분야에서 통섭을 갖춘 통섭형 인간이었다. 인류사를 보면 과거에는 아주 특별한 인간들만이 통섭에 접근하였는데 이제는 통섭을 두루 갖추는 인간을 요구하는 시대가 되었다. 인간적인 면에서는 가슴 아픈 일이지만 기계화되어 가는 시대에 살고 있는 이 풍진 인생의 비극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쩔 것이냐. 인간이란 태곳적부터 환경에 잘 적응하는 동물로 태어나지 않았는가.  우리의 아이들이 최소한의 통섭을 갖출 수 있도록 배려하는 아버지, 어머니가 되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한국의 부모들은 심모원려를 터득한 지구촌 세계의 제일 앞서가는 자녀교육의 달인인지도 모른다. 피아노치고, 태권도, 미술, 한자 등을 익히고 자란 우리의 아이들이 아니냐. 걱정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진작부터 그런 길을 걸어오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글쓴날 : [10-12-21 15:24] 김민영기자[Malipres@hite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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