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사회의 제도의 변혁은 필연적인 것이다 | |
![]() 인간은 필요에 의하여 제도를 만들고 사회가 변천하여 감에 따라 또 다른 제도의 정비를 하게 된다. 이것은 인류사회의 끊임없는 발전에 따른 필연적인 과정이며 제도의 정비가 사회의 흐름을 따라잡지 못할 때는 불협화음과 마찰이 생기게 된다.
인간이 원시사회에서 탈출하여 농경사회를 영위한 지난 일만여년이래로 인간의 제도는 그 시대의 상황에 맞는 제도가 만들어지고 변화와 변혁을 거듭하면서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지난 1900년대까지는 인류의 발전은 거의 같은 모습을 유지하여 왔으나 최근 1세기에는 이루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급격한 변화를 하게 되었다. 하여 사형선고받은 현대문명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문명의 체계는 과거보다 더욱 정교하고 복잡하게 얽혀져 자연과의 연대감은 점점 더 멀어져 가고 있다. 문명은 가속도로 진행하고 있는데 인간의 생각은 낡은 사고방식에 얽매어 있어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여 딜레마에 빠져있는 것이다.
급격한 변화는 혁명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여러 분야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나 제도의 변혁은 감히 그 속도를 따라잡지못하여 해결해야할 인류의 심각한 문제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그것은 새뮤얼 P. 헌팅턴 (Samuel P. Huntington)이 문명의 충돌에서 말한 상이한 문명에 속한 집단들 사이의 단층선 전쟁, 그 중에서도 특히 이슬람권과 비이슬람권의 분쟁으로 비화되는 조짐이 여기저기에서 나타났다.
이런 점은 어떤 시각으로 생각하고 받아드릴 수 있을까.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만들어가고 정비하여가는 법률과 조직의 제도와 정비는 사회와 인간의 필요에 의해 다소의 차이는 있었지만 필요적절하게 이루어지고 행해져왔다. 그러나 종교에 있어서 사회의 변혁에 따른 필요한 제도의 변화가 행해져 왔는지 묻고 싶다. 마틴 루터가 1,517년에 종교개혁을 부르짖었을 때를 한번 생각해 보자. 중세암흑기를 거쳐 종교는 모든 분야에서 황제의 지위를 누리고 있었고 그 제왕적 지위를 결코 놓치고 싶지않아 그 당시 갈릴레오와 다윈이나 헉슬리 등이 주장하는 새로운 변화에 대해서 눈감고 이단자 취급하기에 급급하였다. 그러나 현실세계에 나타나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새로운 발견을 영원히 강건너 불보듯이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세계의 변혁은 혁명을 일으키고 있지만 종교는 결코 변화할 수 없는 정체된 도그마의 모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문명과 괴리현상을 빗는 모습들이 여지저기에서 나타나고 있다. 바야흐로 인류는 전환점(turnig point)에 놓여 있다. 마틴 루터처럼 새로운 시대에 인간에 필요한 종교는 쉬운 것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그 때 그 당시를 거슬려 올라가 보면 안다. 그렇지만 그런 생각과 인류의 복지와 안위를 위한 부단한 노력은 필연적으로 있어야 한다.
세계는 초산업사회를 맞이하여 성의 혁명, 인종의 혁명과 심각한 기술상의 혁명을 동시에 경험하고 있다. 새로운 혁명은 개인의 실생활에 여태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일과 사태를 초래하면서 전무후무한 새로운 환경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가히 미래의 충격이라고 말할 수 있을 인류가 내딛고 가야할 새로운 길인 것이다. 이 전환의 시기에 세계와 우주를 보는 관점과 가치관 을 재정비하고 시대에 맞는 새로운 제도를 조직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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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날 : [10-11-27 12:21] | 김민영기자[Malipres@hite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