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인천 영종도 왕산해수욕장 - 깨끗해진 영혼

 

2011 년 6 월 25 일 토요일은 한국전쟁 발발 61 주년이 되는 날이다. 나는 이 날 새벽, 첫 지하철 안에서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캐리비안베이(Caribbean Bay)를 갈까, 바다를 갈까?’

 

영혼을 씻어내고 싶었다. 내 몸에서 영혼을 끄집어내 즐거운 곳에 가서 깨끗한 물로 빡빡 씻어내서 다시 집어넣고 싶었다. 요즘은 이 놈의 날이 어떻게 와서 어떻게 가는지 모르겠다. 한국전쟁 발발 61 주년 되는 날, 내가 심각한 고민에 빠져있던 지하철 안도 회사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이었다. 일을 하다가 자정을 넘겨버리면 택시비(Taxi) 3 ~ 4 만 원 말고는 집에 돌아올 방법이 없기에 그냥 일하는 곳에서 자버리기 일쑤인데, 이런 날이 일주일에 두세 번은 되고, 2 박 3 일 갇히는 날도 한 달에 두세 번이다. 특히 이 날은 금요일 밤에 일하는 곳에서 자고 토요일 새벽 첫 지하철로 집에 돌아오는 길이라 그 처량함이 더했다. 이 지하철 안에서 나는 결론을 내렸다.

 

‘영혼을 씻은 후부터는 다시는 일하는 곳에서 자지 않겠다!’

 

집에 돌아오니 은영이가 한잠에 빠져있었다.

 

‘캐리비안베이에 가려면 일찍 나서야 하는데…… 1 등으로 들어가서 줄서기 전에 탈 것들을 다 타야 되는데…… 은영이를 지금 깨우면 짜증부터 낼 거고…….’

 

결국 나는 바다로 결정했다. 2011 년 6 월 한 달 동안 외환카드(Credit card)만 들고 가면 캐리비안베이 입장권이 만 원이다. 평소에 너무 비싸 섣불리 가지 못하는 캐리비안베이를 이 때 안 가면 언제 가나 싶어 ‘한번 가야 된다, 한번 가야 된다’ 하고 있었지만 결국 이렇게 못 가게 됐다. 어떻게 6 월 한 달 동안 단 하루도 짬이 나지 않았을까? 새로 생겼다는 아쿠아루프(Aqua loop)를 너무 타고 싶은데…… 타고 싶어 미치겠는데…… 은영이는,

 

“몇 살이십니까?”

 

하고 묻지만 나이가 무슨 상관이람? 3 년 전인가, 4 년 전인가 나는 휴일이면 어김없이 캐리비안베이에 가서 몸을 씻고 하루를 시작했던 때도 있었다. 그런 천국 같은 나날도 있었던 나다.

 

 

 

 

캐리비안베이을 놔두고 바다를 선택한 이유는 물론 캐리비안베이에 가기엔 다소 늦은 감이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몸이 바다를 원했기 때문이다. 더 탁 트였으니까, 더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까, 더 사람과 부대끼지 않아도 되니까, 더 자연이니까, 더 내 지친 영혼에 도움이 될 것 같으니까. 우리집에서 가장 가까운 바다는 영종도다. 작년 여름에 우연히 가보고,

 

‘아니, 집에서 가까운 곳에 이렇게 괜찮은 해수욕장이 있었나?’

 

하고 놀랐던 을왕리해수욕장이다. 캐리비안베이냐, 바다냐 고민을 할 때, 바다는 바로 이 을왕리해수욕장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참고로 영종도에는 을왕리해수욕장 외에도 왕산해수욕장이 있다. 두 해수욕장이 곶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있어, 우선 가보고 마음에 드는 곳을 선택하면 된다. 

 

“선배, 진짜 바다에 들어가려고?”

 

은영아, 바다에 들어가지 않을 거라면 해수욕장까지 왜 가냐? 그냥 가까운 시화방조제나 월미도에 가면 되지. 나는 바닷물에 몸을 담그고 싶단 말이야! 어쩌다 바닷물에 몸 담그는 걸 싫어하는 너를 만나 내가 몇 년째 바닷물에 몸도 못 담그고 이렇게 살고 있는데, 불쌍하지도 않냐? 제발 몸 좀 소독하자, 제발!

 

“선배, 춥지 않겠어?”

 

비록 비가 오지만…… 장마 때문에 서늘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6 월 말이면 여름 중에 여름 아니겠어? 6, 7, 8 월이 여름인데 그 중에 6 월 말이면 한여름 축에 들지 않겠어? 그런데 듣고 나니까 기분이 좀 그렇네, 요즘 너 나를 너무 시뿌게 보는 거 아니야? 내가 고작 날씨 같은 것에 굴복할 놈으로 보여? 나, 이래봬도 역마살이야, 역.마.살.이라고! 집밖이 다 내 집인 놈이라고!

 

“선배, 다시 한번 생각해보지?”

 

일없다.

 

 

 

 

< 뒤에 보이는 저 건물이 있는 곳이 을왕리해수욕장이다. 여기는 왕산해수욕장이다. >

 

 

집에서 을왕리해수욕장, 왕산해수욕장까지 가는데 1 시간 남짓 걸렸다. 영종도가 생각보다 큰 섬인데다 해수욕장들이 영종도 내에서도 육지에서 가장 먼 서쪽 끄트머리에 있고, 영종도 중간에 인천공항이 있어 빙 두르도록 도로가 나있음에도 이 정도밖에 안 걸렸다. 우리집에서 캐리비안베이까지 가는 데도 1 시간 남짓 걸린다…… 아니다, 캐리비안베이 이야기는 그만하자, 죽은 자식 고추를 하도 만져 물러터지겠다. 큰 도로를 벗어나자 [왼쪽에 을왕리해수욕장, 오른쪽에 왕산해수욕장]을 알리는 표지판이 서있었다. 우선 안 가본 왕산해수욕장으로 들머리를 잡았다.

 

 

 

 

< 바다에서 노는 사람들 >

 

 

“봤지! 봤지! 다들 물에 들어가있잖아!”

 

은영이에게 소리치면서 사실 나도 놀랐다. 그 쌀쌀한 날씨에 바닷물에 들어가있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하긴 바닷물에 들어간 사람이 있든 말든 나는 바닷물에 들어갔을 테지만 그래도 나 이외에 바닷물에 들어가있는 사람이 있는 게 심리적으로 훨씬 낫다. 바람까지 엄청나게 부는 날이었다. 우산이 휙휙 뒤집히고 접혔다. 이 때서야 생각이 난 태풍 메아리의 북상 소식…….

 

 

< 나는 외롭지 않았다. >

 

< 나 - 준비운동 중 >

 

“선배, 진짜로 들어갈 거야? 안 들어가면 안 돼?”

 

니는 말해라, 나는 옷을 벗는다.

니는 말해라, 나는 들어간다.

니는 말해라, 으~ 춥긴 춥다.

 

결국 나는 바다에 들어갔다. 작년에 그 더운 날에 갔음에도 발 한 번 담가보지 못한 바다를 이 비 오고, 바람 불고, 서늘한 날에 가서 몸을 담글 줄이야……. 그러기에 사람은 하고 싶은 것이 있을 때 바로 해야 한다. 안 그러면 마음 속 깊은 곳에 쭉 남아있다가 어느 순간 터져 나와서 이렇게 더 안 좋은 순간에 하게 된다. 먹는 걸 참고 참다 결국 잠이 오지 않아서 먹고 자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나만 그런가? 쪽팔리는 얘긴가?’

 

하긴 이번에 웃통을 벗으니까 좀 쪽팔릴 정도로 뱃살, 허리둘레살이 장난이 아니었다. 은영이가 찍어준 내 몸통 사진을 보고 나 스스로가 덮어버릴 정도였다. 다른 건 다 공개해도 이 사진만은 절대로 공개를 못 하겠다. 내 몸이 이제…… 중년으로…… 가고 있다. ‘탄탄’이라는 단어보다 ‘출렁출렁’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리게 변하고 있다.

 

< 나 - 영혼을 씻으러 가는 중 >

 

물빛이 많이 탁했다. 서해에는 갯벌이 많아 원래 그렇다지만 내가 영혼을 씻어내고 싶던 바다는 이런 바다가 아니었다. 그래도 바다는 바다, 나는 먼저 준비운동부터 하고 바닷물로 온몸을 적셨다. 이렇게 온몸을 적시고 나니 차라리 덜 추웠다. 그리고 허리춤이 잠길 때까지 걸어 들어갔다. 은영이에게서 꽤 많이 멀어졌다. 은영이가 뭐라고 하는데 잘 들리지 않았다. 귀를 아무리 쫑긋 세워도 바람소리에, 파도소리에 은영이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나를 찍기 위해서 사진기를 드는 것 같길래 바로 피사체 형태으로 몸을 변형시켰다.

 

‘바다 안에서는 서있는 모습보다 수영하고 있는 모습이 낫겠지? 자유형이 잘 나올까, 평형이 잘 나올까? 머리를 해변 쪽으로 두는 것보다 가로로 해서 몸 전체가 나오도록 찍는 게 더 나을 거야. 왼팔보다 오른팔을 들어야 얼굴이 잘 나올 거야. ……’

 

이러다 드는 생각 하나!

 

‘역마살, 넌 영혼을 씻으러 왔니, 사진을 찍으러 왔니?’

 

 

 

 

내가 비록 몸이 갈대 같아 그 때 그 때 생각이 바뀔 때마다 몸을 바꾸는 경향이 있지만, 아차 싶을 때는 또한 바로 몸을 바로잡는 경향도 있기에 나를 향하고 있는 은영이의 사진기를 애써 외면하며 영혼의 정화에 힘썼다.

 

누구는 바다를 두고 엄마 품 같다고 하지만 그런 사람은 아마 어촌이 고향인 사람일 거다. 아니면 어촌이 고향인 사람을 절친한 친구로 두고 있는 사람이거나, 아니면 감수성이 한참 예민할 때 어촌이 고향인 사람이 쓴 글을 읽고 감명을 받아 [ 바다 = 엄마 품 ]이라는 등식을 머리에 심고 사는 사람일 거다. 나는 바다가 엄마 품이라는 데 공감이 가지 않는다. 그런데 왜 이상하게 머리가 복잡해지면 망망대해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걸까? 머리가 아무리 복잡해져도 엄마가 떠오르진 않는데…… 이런 걸 보면 바다가 엄마보다 상수인 것 같은데……. 아, 맞다, 내겐 [ 바다 = 은영이 품 ]인 것 같다. 그러면 이런 등식이 성립되겠다.

 

 

[ 남들의 엄마 품 = 바다 = 나의 은영이 품 ]

 

그러므로,

 

[ 남들의 엄마 품 = 나의 은영이 품 ]

 

여기서 품을 떼고 나면,

 

[ 남들의 엄마 = 나의 은영이 ]

 

즉, 결론은

 

[ 은영이는 역마살에게 모성애가 있어야 한다. ]

 

 

어쩐지 요즘 많이 손해를 보는 기분이 들더라니 당연한 것이었군, 당연히 받아야 할 사랑을 내가 덜 받으며 살고 있었군, …… 내가 많은 손해를 감수하며 살고 있음을 왕산해수욕장의 바다에서 깨닫고 내린 결론은 이거다.

 

‘내겐 은영이가 있었구나…….’

 

요즘 나도 모르게, 내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느낀 고통을 그대로 집으로 가지고 와 집에서 풀려고 하는 것 같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게 참 잘못된 생각이다. 행복한 가정이 있는데 왜 사회생활의 고통을 집으로 가져와야 할까? 다 잊어버리고 집에 들어와야 하지 않을까? 지금껏 공부는 공부, 집은 집, 일은 일, 집은 집으로 살아왔는데, 언제부턴가 일에서 느낀 피곤을 자꾸만 집으로 가져와 풀려고 하는 것 같다. 이제부터 그러지 말아야겠다. 집에서는 행복 말고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싶다. 2010 년까지 그렇게 살아왔듯이 말이다.

 

갑자기 따뜻한 행복감이 느껴진다. 영혼이 어느 정도 깨끗해진 것 같다. 역시 바다로 나가길 잘 한 것 같다.

 

 

 

 

아직 한철이 아니라서 해수욕장이 다소 을씨년스러웠다. 사람과 바다 사이를 가로막는 횟집의 장벽이 유난히 특출해 보였고, 차나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간부터 보는 횟집 호객꾼들의 몸짓이 더욱 절박했다. 서로 호객꾼을 내보내지 않기로 합의를 하면 안 되나? 왜 그렇게 다들 피곤하게 사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빨리 피서의 계절이 와서 다들 행복해지고,

 

나의 바다야, 나의 하늘아, 나를 안고서 그렇게 잠들면 돼.

나의 바다야, 나의 하늘아, 난 너를 사랑해, 나의 곁에 있는 너.

 

이런 행복한 날들이 연출됐으면 좋겠다.

 

 

 

< 우리도 언젠가 이렇게 느긋하게...... >

 

 

 

 

 

 

 

< 야구장 >

 

 

이상, 사색하기엔 좋지만 그렇다고 결코 마음이 밝아지진 않는 날에 왕산해수욕장에서 역마살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바로 옆 을왕리해수욕장으로 향했다.

 

“선배, 또 바다에 들어갈 건 아니지?” / “안 들어갈 거면 해수욕장에 왜 가냐?”

 

< 왕산해수욕장 주차장 >

 

 

http://dondogi.blog.me/100127137363 : 경기 인천 영종도 인천대교기념관

http://dondogi.blog.me/100110890928 : 경기 인천 영종도 용유임시역, 잠진도선착장, 마시안해변

http://dondogi.blog.me/100110891478 : 경기 인천 영종도 을왕리해수욕장 - 물에도 못 들어가고

http://dondogi.blog.me/100060168275 : 경기 인천 영종도 인천국제공항 라운지(Lounge)

http://dondogi.blog.me/100126922446 : 경기 인천 신도 구봉산

http://dondogi.blog.me/100093440994 : 경기 인천 신도,시도,모도

http://dondogi.blog.me/100125442420 : 경기 인천 무의도 종주

 

 

 

 



원작성자 : 역마살

원    글 : http://blog.naver.com/dondogi/100131408716

글쓴날 : [11-06-27 23:56] 파워블로거타임즈기자[pbatimes@pb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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