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양재역 식영정의 홍어

 

나는 식영정의 홍어가 좋다. 내가 발이 넓지 않아서기도 하겠지만 어쨌든 지금껏 이보다 더 찰지고 맛있는 홍어를 먹어본 적이 없다. 식영정의 주인장님은 내게 진짜 국산 홍어가 어떤 맛인지, 그걸 제대로 삭히면 어떤 맛이 나는지, 홍어의 각 부위가 각기 어떻게 다른 맛을 내는지 가르쳐주신 분이다. 전에도 한 번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내게 있어 삭힌 홍어의 기준은 식영정의 홍어다. 콜라(Cola)의 기준이 코카콜라(Coca-Cola)고, 햄버거(Hamburger)의 기준이 맥도날드(McDonalds)인 것처럼 국산 삭힌 홍어의 기준은 식영정이다.
 
"홍어를 잘 못 먹는 사람은 홍어를 주문하지 말아."
 
많이 파는 게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분이다. 아무리 돈을 받았어도 남긴 음식을 아까워하시는 분이다. 이런 분이다 보니 음식에 정성이 안 들어갈래야 안 들어갈 수 없다. 이런 식영정 주인장님께서 부위별로 썰어져 나온 홍어의 각 부속들을 일일이 가리키며 설명해주셨으니, 그 설명 안에 버릴 말이 있을래야 있을 수 없었다.
 
"이건 홍어아가미여. 이건 홍어꼬리지느러미고, 이건 그 날개여. 이건 홍어애여. 이건 홍어코여."
 
순간 한 마디 거들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내가 아무리 무지렁이 같은 삶을 영위한다 해도 사회적 지위와 체면과 위신이란 게 있는데 차마 이 말만은 입밖에 내놓을 수 없었다. 입에 담지 못한 그 말, 그래서 한으로 남을 것 같은 그 말, 그래서 결국 나의 애를 갉아먹고 들어올 수밖에 없는 그 말…… 그 말을 지금 이 자리에서 공개하려 한다. 그리고 공식적이고도 공개적으로 해답을 구한다.
 
"주인장님, 그러면 홍어좆은요?"
 
정말 궁금했다. 만약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누구라도 답을 주신다면, 이 날 제가 참은 것이 진짜로 장한 행동이 될 터이고, 누구도 답을 주지 않는다면, 전 아마 답답해서 미칠지 몰라요. 그렇다고 다음에 가서 물어볼 수도 없다. 왜냐하면 내가 혼자 갈 리 없고 은영이와 같이 갈 것 같은데, 그 자리에서 내가 만약 홍…… 어…… 좆…… 이랬다간 은영이가 밥상을 엎고 일어날 거다. 나, 언제까지 이렇게 은영이의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할까? 내가 확 밥을 해버릴까? 지금껏 단 한 번도 내 손으로 밥을 한 적이 없기에 그 줏대가 아까워서 은영이에게 이렇게 빌붙어 살지만, 지렁이도 꿈틀한다고 자꾸 이런 식으로 나의 언로를 막으면 은영이고 뭐고 다 필요 없어! 주인장님! 여기 홍어좆 한 그릇이요! 그리고 오늘부터 밥은 내가 한다!
 
특히 홍어애가 맛있었다. 그 야들야들하면서도 부드럽고도, 입에 살살 녹으면서도 평생 품에 안고 싶은 고소함이라니…… 너, 혹시 은영이냐? 변태 같아 보이지만 그래도 이런 식으로밖에 찬양할 수 없습니다. 이 이상의 미사여구를 나는 모르겠습니다. 지금 제가 하는 말이 과장된 것 같겠지만 세상 누구라도 식영정의 홍어애를 참기름장에 살짝 찍어서 맛본다면, 그 맛을 평생 품고 싶을 수밖에 없습니다.

홍어전도 맛을 봤다. 역시 홍어의 탁 쏘는 맛은 홍어전이 최고였다. 이 날 홍어애탕은 맛을 못 봤다.
 
홍어를 한 점 씹다가 입안이 화해지면 맑은 청주 한 잔으로 입안의 화기를 억누르길 반복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야기에 빠져 술잔이 빈 걸 까먹고 홍어를 씹었다. 잠시 후 입안이 화해졌고…… 술잔을 보니 술이 없고…… 공교롭게도 그 때 술병까지 비었고…… 순간 나는 갈림길에 놓였다.

‘지금 내 입안에 불을 지피고 있는 이 홍어를 그대로 삼킬 것인가, 아니면 뱉을 것인가, 아니면 뱉어놨다가 다시 먹을 것인가, 아니면 이대로 계속 씹어서 넘길 것인가…… 이것이 문제로다.’

결국 나는 아까워서 계속 씹기로 했다. 그러자 입안에서 진짜 불이 났다. 이 불은 나중에 청주가 들어와서야 겨우 진화됐다. 물을 마셔도 됐지만 그러긴 싫었다. 이 귀한 홍어의 맛을 버리긴 싫었다. 덕분에 입천장이 다 까졌다. 그래도 나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내가 자신을 이만큼 아낀다는 것을 홍어는 알았을 것이다. 까진 입천장은 만 하루 반 만에 다 아물었다. 내가 사랑한 홍어는 만 하루 반 만에 내 몸의 피가 되고 살이 됐다. 
 
식영정 홍어의 가격은 가장 작은 것이 80,000 원이고, 다음이 100,000 원이고, 다음이 120,000 원이다. 만약 홍어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면서 홍어가 대충 이런 맛이구나 하는 경험하고 싶다면 다른 데서 홍어를 먹고, 만약 진짜 국산홍어를 가지고 제대로 삭혀서 제대로 맛을 낸 홍어로써 자신의 국산 삭힌 홍어의 기준을 삼고 싶다면 식영정에서 먹으면 된다. 먹으면서 주인장님께,
 
"이건 어느 부위에요?"
 
이 말 한 마디면 뒤이은 주인장님의 설명에 홍어박사가 될 수 있다. 물론 친구들 사이에서 말이다. 식영정의 주소는 '서울특별시 서초구 양재동 327-9번지'로, AT센터(AT Center) 근처, 서초우체국 정문 맞은편이 되겠다. 전화번호는 02-573-1477 이다.
 
이제 철이 지나버린 전어다. 아쉽지만 내년을 기약해야 한다. 올해는 이미 철이 지나버려 더 이상 맛볼 수 없는 전어구이를 이 시점에 언급한다는 것이 죽은 자식 고추 만지기라 걱정이지만, 그래도 식영정에서 먹은 전어구이만큼은 이대로 언급하지 않고 올해를 넘기기가 싫어 이렇게 적는다. 정말이지 기록으로 몇 년이고 남겨두고 싶은 전어구이였다. 단, 흠이 하나 있었는데, 이미 겨울로 많이 넘어간 늦가을에 먹은 전어라 뼈가 조금 억셌다. 그래서 꼬리 쪽 척추 2 마디 정도는 씹다가 하는 수 없이 뱉어야 했다. 내 이빨이 정과 모루 같지 않아 한이었다.

 

 

< 홍어전 >

글쓴날 : [10-11-21 01:43] 이한설기자[dondog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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