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양재역 식영정의 보리굴비

자꾸 생각나는 밥이 있다. 은영이는 그깟 밥 하나 갖고 뭐 그리 호들갑이냐 그러지만, 엄연히 개인마다 취향이라는 게 있는데 그걸 깡그리 무시하고 자기 뜻대로 재단해버리는 은영이가 밉다. 하긴 상상하기에 따라선 인간의 일반적인 식생에 크게 벗어나는 독특한 취향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얼음을 띄운 푸르죽죽한 녹찻물에 밥을 말아서 그 위에 기름진 굴비 한 조각 얹고 한입에 털어 넣기. 직접 먹어보지 않고 이렇게 글로만 읽거나 사진으로만 본다면 진짜 그럴 수도 있겠다. 그래, 은영아, 인정하마. 하지만 나는 그 불협의 맛이 너무 좋고, 깔끔한 뒷맛이 너무 좋고, 평범하면서도 특이한 요리법이 너무 좋다.
 
내가 밥을 물에 말아먹는 걸 원래부터 좋아한다. 밥맛이 없을 땐 물에다 밥 한 숟갈 말아서 그 위에 적당히 삭은 김치를 쭉 찢어서 얹고 한입에 넣으면, 으~ 그 맛이 정말 끝내준다. 김치의 시그러운 국물이 떨어져 어느새 밥 말은 물이 벌겋게 변해도 그 희석된 시큼함이 좋아서 한 방울도 남김없이 마시는 나다. 끝내 바닥에 남는 깨끗하게 씻긴 고춧가루를 젓가락으로 하나씩 집어먹는 희열 또한 웬만한 후식의 기쁨을 넘어선다. 지금은 안 그렇지만 내 어릴 적 봄에는 동네의 시어빠진 김장김치란 김장김치는 죄다 우리집으로 공수됐었다. 그만큼 내가 신김치를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한다.
 
이쯤에서 돌발문제 하나! 이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국이 무슨 국일까요? 맞습니다, 김칫국입니다. 이것저것 기교를 부린 김칫국 말고 파와 김치와 며르치만 넣고 끓인 김칫국입니다. 늘 바쁜 우리 할머니와 엄마는 김칫국을 한 냄비, 아니 한 솥 끓여두고 동생과 나더러 뜨세 먹으라고 했다. 그래도 질리지 않던 그 김칫국의 맛이 어느 정도 지루해지려 하면, 거기다 구운 김 한 조각을 넣고 밥을 말아먹었다. 김 때문에 김칫국의 맛이 한층 더 깊어지고, 그렇게 새로운 국처럼 김칫국을 즐겼는데, 어라? 지금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죠? 이야기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거죠? 여하튼 이런 내가 미치지 않을 수 없는 식영정의 '얼음 띄운 녹찻물에 만 밥에 굴비 한 조각'이었다.
 
식영정의 이 맛을 집에서 낸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다. 녹차에다 얼음을 띄워서 밥을 마는 것까진 어떻게 해보겠는데, 조기를 어떻게 구해서, 그 조기를 어떻게 염장해서, 그 굴비를 어떻게 말려서 요리해낼지 자신이 없다. 그 맛과 정성을 알고 그 어려움을 알기에, 녹찻물에 밥 한 숟갈과 굴비 한 조각을 돈으로만 사려니 영 개운치 않아 주인장님을 뵈러 갈 갈 때마다 빵이라도 하나 만들어서 간다. 문제라면 식영정이 양재에 있다는 점이다. 우리집에서 1 시간 반은 가야 하는 먼 길, 그 근처에 갈 일이 있으면 일부러라도 짬을 내,
 
"안녕하세요, 녹찻물에 밥 한 그릇 말아주세요. 찬은 굴비만 있으면 됩니다."
 
이러면서 밥을 한 그릇 청하겠건만, 이 놈의 인생은 어찌된 심판인지 서울에 들어갈 일이 없다. 서울의 변두리 인생…… 이래 갖고 무슨 수도권에 산다고 하는지…… 친구들은 전부 내가 자수성가해서 서울에 잘 자리잡고 있는 줄 아는데 내 인생은 여전히 4 호선 끄트머리다. 아! 완전히 끄트머리는 아니구나. 내 뒤에도 몇 정거장 더 있다. 지금 이 대목을 읽고 누가 반박할 수도 있겠다.
 
"지하철 끄트머리로 가면 실패한 인생이냐?"
 
분명 그건 아니다. 나 또한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렇게 서울과 연관 지을 때마다 실패한 인생 같다. 서울에 갔다 올 때마다 몸도 마음도 사당이나 양재쯤에 뉘고 싶지만, 결국 나는 과천 지나, 인덕원 지나, 평촌 지나, 쭉 가야 한다. 특히 다음날이 노는 날이 아니면 그 서글픔이 배가 되고, 밤 11 시에 사당을 지났다면 그 서글픔이 배의 배가 된다.
 
녹찻물에 만 밥과 굴비 한 마리로는 식영정의 멋을 제대로 느낄 수 없기에 ‘보리굴비정식’이 있다. 1 인분에 30,000 원으로 2 인분부터 주문할 수 있다. ‘보리굴비정식’에는 보리굴비 외에도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음식이 한 상 차려진다. 참고로 굴비 앞에 이렇게 '보리'라는 글자가 붙은 이유는 보리를 이용해서 말린 굴비기 때문도 아니요, 보리조기라는 특별한 어종으로 만든 굴비기 때문도 아니다. 주인장님께서 설명해주셨는데, 옛날에는 겨울 한철 말린 굴비를 타지로 낼 때 모두 통보리에 묻어서 냈다고 한다. 그러면 썩지도 않고, 깡마르지도 않고, 자연적으로 숙성되면서 굴비를 낼 수 있다고 한다. 통보리라는 것이 원래 살아있는 것이라 그렇게 이로운 작용을 한다고 한다. 아하! 그러면 이렇게 생각하면 되겠다. 굴비의 본고장이 서울의 양재일 리 없으니 먼 곳에서 이 곳까지 고이 모셔져 온 굴비라고, 그래서 모셔올 때 옛날방식 그대로 통보리자루에 담겨서 왔다고…… 물론 이건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그렇게 상상하고 먹으면 훨씬 맛이 나지 않을까?

 

 

 

 

글쓴날 : [10-11-21 01:39] 이한설기자[dondog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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