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 쌍겨리마을 김장체험 1/2 - 김장에 관하여

 

길게 이어진 탁자 위에 곱게 썬 무채가 한가득 얹혀있었다. 사람들이 탁자에 붙어 서서 무채를 버무렸다. 냄새를 보아보니 젓갈이 들어갔고, 색깔을 보아하니 고춧가루가 범벅이다. 나는 무슨 반찬인지 궁금해서 물었다.
 
“이건 깍두기도 아니고 뭘 만드시는 거에요?”
 
나는 내심,
 
‘여기다 생물오징어를 썰어 넣으면 그대로 오징어무생채가 되겠네.’
 
하는 생각에 ‘틀림없이 오징어무생채가 맞을 거야’ 하는 자신감으로 큰소리로 물었다. 그리고 ‘오징어무생채요’ 하는 대답을 기다렸다. 그러나 반응이 이상했다. 대답은커녕 짧은 침묵 후에 한바탕 웃음이 지나갔다. 대답은 하지 않고 다들,
 
“김장 처음 해보는 모양이네?” / “어쩌면 그렇게 모른대?”
 
이런 소리만 흘러나왔다. 순간 뭔가 잘못됐음을 직감했다. 머리나 가슴보다 벌게 지는 안면이 먼저 직감했다.
 
“이건 김치양념이에요.”
 
켁! 그렇다. 그건 김치 속을 채울 양념이었다. 변명을 좀 하자면, 내가 그걸 모르는 건 당연한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집이나 은영이집에서는 김치를 담글 때, 김치양념에다 무채를 넣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먹는 김치에나 가끔 무채가 섞여 나왔는데, 그럴 때면 나는 그 무채가 김치를 담을 때 같이 넣은 깍두기의 변형이라고 생각했다. 무채가 이렇게 양념에 포함되는 줄 몰랐다.
 
사실 무채의 20 분의 1 은 내가 채썬 것이었다. 마늘과 생강의 반도 내가 찧었고, 파의 반도 내가 썰었다. 이렇듯 김치양념 만들기에 깊이 관여한 나였지만 정작 김치양념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는 완전 바닥이었던 것이다. 나 같은 부류의 사람들을 위해 김치 담그는 방법을 간단하게나마 적어봐야겠다. 이번에 참여한 양평 김장체험에서 배운 것이다.
 


1. 배추를 절인다. 어떤 소금물에 얼마간 절이는지는 내 능력 밖이라 함구다. 우리가 김장체험마을에 도착하기 전에 벌써 마을어르신께서 배추를 절여두셨고, 우리는 그 절임배추를 갖고 편하게 김장체험을 했다. 물론 모든 배추가 마을에서 직접 키운 배추였다.
 
2. 무를 채썬다. 어느 정도 굵기에 어느 정도 길이로 채썰어야 하는지는 내 능력 밖이라 함구다. 끈기와 힘만 요구되는 작업이라 나도 한몫 낄 수 있었는데, 채칼에 손이 베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까딱 잘못하면 자신의 손가락을 채썰어서 김치와 함께 담글 수 있다. 순백색의 무채 위로 뚝뚝 떨어지는 핏물…… 그 무채로 담근 김치에는 무 채썰던 이의 원한이 서려있고, 그 김치를 먹은 이의 젖산과 유산균은 모두 핏빛이고, 대변에서는 무 채썰던 이의 피가 뚝…… 뚝…… 뚝……. 당신은 치질이라 하겠지만 그것은 무 채썰던 이의 원한……. 나는 변태가 맞다.
 
3. 마늘과 생강을 찧는다. 얼마나 많은 양을 얼마나 곱게 찧어야 하는지는 내 능력 밖이라 함구다. 이것 또한 그다지 큰 기술을 요하지 않는 작업이라 내가 엄청 많이 찧었는데, 기분 같아서는 골백번 찧고 찧어 즙을 내버릴까도 싶었지만 그래선 안 될 것 같아 건더기를 조금 남겨뒀다. 처음에는 웃으면서 찧었고 시간이 갈수록 매운 내가 나를 감싸 기침을 하면서 찧었다.
 
4. 고춧가루, 소금, 새우젓, 젓갈, 파 등의 김치양념 재료를 준비한다. 이들의 비율은 내 능력 밖이라 함구다. 이 대목에서 손맛이란 게 개입되는데, 내가 전혀 끼어들 수 없는 분야라 그저 구경만 했다. 하긴 이것 말고도 어떤 배추를 쓰는지, 어떻게 절이는지, 어떻게 저장하는지에 따라서도 김치맛이 좌우되니까 김치는 하여간 복잡다난한 종합예술임에 틀림없다.
 
5. 채썬 무에 고춧가루를 넣고 잘 버무린다. 이 작업 또한 끈기와 힘만 요구되는 작업이라 끼어들 수 있었는데, 마음 같아서는 준비한 양념재료를 몽땅 붓고 한번에 싹 버무려버리고 싶었지만 그래선 안 된다고 했다. 고춧가루만 넣고 먼저 버무려야 무채에 빨간색이 잘 입혀진다고 했다. 오, 이런 큰 뜻이 있었다니! 큰 것 하나 배웠다.
 
6. 고춧가루만 넣고 버무린 무채에다 갖은 양념을 넣고 다시 잘 버무린다. 막 버무리다 보니 무채의 숨이 점점 죽어갔다. 괜히 쾌감을 느꼈다. 뭔가 큰일을 해낸 것 같아 희열이 느껴졌다. 이것으로 김치양념 만들기가 끝이다. 이번 김장체험에서 나를 포함한 3 명의 장정이 인간버무림기로서 활약했는데, 어찌나 호흡이 잘 맞던지 전국김치양념버무리기대회에 출전할까도 생각 중이다. 아니면 꿈을 낮춰서 전국순회김치양념버무리기봉사를 다녀도 괜찮겠다 싶다.
 
7. 절임배추와 김치양념을 잘 결합시킨다. 잘 결합시키는 방법은 내 능력 밖이라 함구다. 절임배추를 준비하는 작업과 김치양념을 준비하는 작업이 끝났으니 어쨌든 김장의 10 분의 9 는 끝난 셈이다. “자! 준비됐나?” / “준비됐다!” / “준비됐나?” / “준비됐다!” / “그러면 커다란 함성과 함께 결합시작!” / “와~~~ 와~~~” 긴 탁자에 2 열로 붙어 서서 벌리고 묻히고 벌리고 묻히고 벌리고 묻히고 둘둘 말아서 싸니까 하나 끝! 다시 벌리고 묻히고 벌리고 묻히고 벌리고 묻히고 둘둘 말아서 싸니까 또 하나 끝! …… 빠르게 쌓여가는 김치에 마음까지 푸근해졌다.
 
위 일곱 단계의 큰 작업 외에 자잘한 작업이 사이사이에 있었으니, 그 일부를 기술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양념 묻은 고무장갑을 꼈다 벗었다 꼈다 벗었다 하기, (2) 무 씻어서 다듬기, (3) 무가 모자라서 무밭에 가서 무 좀 더 뽑아오기, (4) 돼지고기보쌈에 쓸 절임배추 속고갱이와 김치양념을 따로 떼놓기, (5) 중간중간에 기념사진 찍기, (6) 하던 일을 꼬마에게 넘겼다가 뒷수습하면서 배로 일하기 등이다.
 
40 명 가까운 사람이 각각 5 Kg 씩 들고 가기 위해 반나절을 일했다. 그래서 놀이처럼 즐기면서 김장을 할 수 있었다. 김장…… 쉬운 듯하면서도 절대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요것밖에 안 했는데도 내 옷이 김치양념으로 칠갑했다. 은영이가 그랬다.
 
“김치를 담은 거야, 김치로 목욕한 거야?”
 
점심으로는 김장하면서 따로 챙겨둔 절임배추 속고갱이와 김치양념과 잘 삶은 돼지고기를 먹었다. 겉치레 없이 100% 순수 돼지고기보쌈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일반식당에서 파는 한방 어쩌고저쩌고가 아니라…… 놀부 어쩌고저쩌고가 아니라…… 그저 100% 순수 촌보쌈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많이 투박하긴 해도 그 맛이 엄청나게 달았다. 삶은 돼지고기의 양도 푸짐하게 제공됐다. 배불러 죽는 줄 알았다. 설마, 나만 푸짐하게 먹은 건 아니겠지? 내 대각선에 앉은 여자아이는 돼지고기를 더 가지러 갔다가 다 떨어졌다는 대답만 듣고 왔다던데…… 설마…… 진짜로 나만 푸짐하게 먹은 걸까? 곁들여 나온 국도 배춧국으로 내가 좋아하는 국이었고, 반찬도 산나물, 신김치, 구운 김으로 내가 좋아하는 반찬이었다. 내게는 정말 최고의 만찬이었다. 

 


김장체험이 얼추 끝나고 나자 군고구마와 군밤 시간이 돌아왔다. 운동장에 피우고 있던 몸녹임용 장작불에 은박지로 싼 고구마와 칼집 낸 알밤이 투하됐다. 그리고 인고의 기다림 후에 맛본 군고구마와 군밤은 그 맛이 어찌나 달던지 입에서 살살 녹았다. 더욱이 시골인심이라 그런지 먹어도 먹어도 군고구마와 군밤이 남아있었다. 정말 실컷 먹었다. 은영이, 나, 어떤 한 아저씨 이렇게 세 사람은 다른 거 하나도 안 하고 군고구마와 군밤이 떨어질 때까지 장작불 곁을 떠나지 않았다. 이것도 정말 최고의 경험이었다.

 

목공예체험도 했다. 운동장 한 켠에 자리를 마련해두고, 동그란 나무판과 압화와 압이파리와 목공풀을 나눠주면서 나무판 위에다 예술을 하라고 했다. 예술을 해서 주니까 그 위에다 말랑말랑한 보호제를 바른 후 기계에다 넣어서 15 분간 구워냈다. 거기다 고유 매듭을 다니까 과연 열쇠고리 겸 핸드폰(Hand phone) 고리 겸 장식물이 됐다. 압화로 쓰인 꽃은 물들인 수국과…… 수국과…… 무슨 꽃이었는데 그새 까먹었다. 압이파리는 네잎고사리인가? 무슨 고사리였는데…… 어쨌든 그런 거였다.
 
재료를 처음 받아 들었을 때, 나는 마침 지갑에 갖고 다니던 우리 사진을 생각해냈다.
 
“사진을 넣어도 되나요?”
 
된단다. 그래서 얼른 사진을 꺼내 이리저리 오려냈다. 그리고 우리 둘의 얼굴을 나무판 중앙에 붙이고, 그 주위에다 압화와 압이파리를 이용해서 치장했다. 그러니…… 완전 무슨 관 위에 올려놓는 장식물이나 비석에 박아 넣는 죽은 이의 사진 같았다. 그래도 (나 혼자 생각에)정성스레 곱게 치장하는 나의 모습에 다들 감탄해마지 않았다.
 
‘아니,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다들 이 정도는 하는 것 아닌가요? 은영이를 보셔서 아시잖아요, 이 정도가 어디 대수겠습니까? 제 심장 일부를 떼내 붙이라고 해도 떼내 붙이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물을 겁니다. 혹시 간은 필요 없냐고.’
 
(나 혼자 생각에)구워져 나온 결과물을 보고 은영이도 감탄해마지 않았다.
 
‘은영아, 널 사랑하는데 이 정도가 어디 대수겠니? 내 심장 일부를 떼내 붙이라고 해도 그럴 수 있어. 그리고 난 물을 거야. 혹시 간은 필요없냐고, 나는 오장육부를 조금씩 떼내 여기다 내 뱃속을 만들 자신이 있다고…….’
 
그런데 이렇게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작품에다 오점을 남겼으니, 흑흑흑…… 뒷면에 날짜를 적을 때, 11 월을 10 월로 적었다. 그래서 커다랗게 곱표 치고 그 밑에다 다시 적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 멋진 하루를 보냈다. 김장은 김장대로 배우고, 김치는 김치대로 가져오고, 돼지고기보쌈은 돼지고기보쌈대로 제대로 먹고, 군고구마와 군밤도 배터지게 즐기고, 기념물은 기념물대로 챙기면서 30,000 원이었다. 오전 10 시 반부터 오후 4 시까지 농촌마을에서 푸지게 놀고 30,000 원이라니! 30,000 원이 그렇게 값어치 있는 돈이었나? 우리가 간 마을의 이름은 섬이쌍겨리마을이고, 행정주소로는 경기도 양평군 단월면 석산2리다. 김장체험을 하고 싶으면 양평나드리(
www.ypnadri.com)에서 예약을 하면 된다. 양평나드리는 일반여행사가 아니라 양평에 소재하고 있는 농촌마을들이 연합해서 만든 농촌체험상품 소개 및 예약용 단일창구다. 수도권에 살면서 농촌에 관심이 많다면 정말 유용한 곳이다.

 

글쓴날 : [10-11-21 01:24] 이한설기자[dondog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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