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수의 전통상설연희공연 - 판(The Pan)

 

공연 ‘판(The Pan)’은 전통연희상설공연이다. 다양한 류의 전통공연 가운데 해당 분야에서 괜찮은 공연을 하나씩 골라내, 그 공연 중에 가장 재미있고 극적인 부분만 쏙 떼어내서 일부 수정을 거친 후 이어놓은 일종의 [전통공연 다양하게 맛보기] 공연이었다. 그렇다고 각각의 쪼가리 공연들이 영양가 없이 싱겁게 나열되기만 했냐 하면 그건 아니고, 김덕수라는 이름 석 자가 걸려있는 공연인 만큼 각각의 쪼가리 공연들 모두 마치 쪼가리 전후에 원래의 공연이 이어져있는 것처럼 진지하고 의미 있게 진행됐다. 공연 순서는 이렇다. 축원…… 일고화락…… 판소리…… 삼도농악가락…… 희로애락…… 판놀음…….
 
제 1 막 축원은 굿판이었다. 이런 걸 무당이라 하고 굿이라 해도 되나 모르겠지만 여하튼 무당 같은 여자들이 무대 위에서 군무를 추며,
 
“여기 모이신 관객 모두에게 명을 주고 복도 주시옵소서~”
 
하는 굿으로 공연의 막을 올렸다. 어여 손님 받아라, 제대로 놀고 가신단다!
 
제 2 막 일고화락은 여러 종류의 북과 장구를 마구 두들기는 공연이었다. 장구소리의 도움을 받은 북소리가 공연장을 쩌렁쩌렁 울렸고, 이 장단을 가만히 음미하고 있으니,
 
‘이런 걸 심금이 울린다고 하는 거구나.’
 
싶도록 감동적이었다. 일고화락의 장단에 심취해있다 보니 내 심장이 나도 모르게 북장단에 맞춰서 뛰었다. 그리고 다분히 의도적이었겠지만, 절정의 순간에 갑자기 멈춰버린 연주와 그에 뒤따르는 침묵과 그 침묵을 타고 빙그르르 미끄러져 내려오는 여음이 애간장을 녹였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해보지만 여음은 이내 허공 속으로 사라져버렸고, 여음을 향한 애달픔이 나의 애간장을 다시 한 번 녹였다.
 
제 3 막 판소리는 ‘춘향가’ 중에 심봉사가 눈을 뜨는 대목이었다. 중간에 판소리 하시는 분이 ‘얼씨구’, ‘지화자’, ‘좋다’, ‘예쁘다’ 같은 추임새를 넣는 방법을 가르쳐줬는데, 나중에 막상 써먹으려고 보니 이것들이 중구난방이 됐다. 이렇게 하면 어떨까? 공연자가 선창을 하고, 관객이 따라는 거다. 공연자가,
 
“지화자!”
 
하면 관객들이 “좋다” 하고, 공연자가,
 
“얼씨구!”
 
하면 관객들이 “예쁘다”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면 공연이 훨씬 더 활기차게 진행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쉬움이 남았다.
 
제 4 막 삼도농악가락은 공연자들이 무대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며 공연을 펼치리라 예상했다. 하지만 다들 사물놀이처럼 가만히 앉아서 연주하는 바람에 살짝 실망했다. 그래도 충분히 공감이 가고 신나는 공연이었다.
 
제 5 막 희로애락에서는 ‘한오백년’과 ‘뱃놀이’가 불려졌다. 특히 ‘한오백년’이 귀에 착착 감겼다. 오랜만에 듣는 ‘한오백년’은 마치 과거로 가는 기차화통처럼 나를 25 년 전으로 이끌고 갔다. 조용필 1 집에 수록되어있는 ‘한오백년’…… 내가 조용필의 광팬(Fan)이었던 건 다들 아실 테고…… 공연이 끝난 후 나는 나도 모르게 자꾸 ‘한오백년’을 읊조리게 됐는데, 이상하게 은영이가 아주 싫어했다. 들으면 우울해지고 슬퍼지고 그래서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다나 어쨌다나? 내가 너무 감정을 실어서 불렀나? 내가 요즘 많이 힘드나?
 
제 6 막 판놀음이 가장 신명 나는 공연이었다. 함경도 봉산, 경기도 양구, 경상북도 안동, 그리고 마지막 한 곳은 어딘지 잘 모르겠는데 여하튼 이 네 곳의 탈춤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지명도가 높고 가장 익살스러운 인물을 각 탈춤에서 하나씩 뽑아 ‘우리나라 탈춤의 올스타전(All star)’을 벌였다. 여기에 농악이 가미되고, 접시돌리기가 가미되고, …… 특히 접시돌리기는 관객까지 참여시켜 제대로 놀았다. 나는 손이 부르트도록 박수치고 웃었다. 다 끝나고 나니 자리에서 일어나기 싫을 정도였다.
 
“어이~ 자리에서 그렇게 빨리 일어나는 사람들이여! 그대들의 피는 진정 그렇게 빨리 식는가?”
 
우리가 공연을 즐긴 건 10 월 30 일 오후 2 시였고, 공연장은 광화문아트홀(Art hall)이었다. 집에서 공연장까지는 약 1 시간 반, 그래서 12 시면 집에서 나서야 하는데 은영이가 학교에서 늦게 오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나 먼저 집을 나서고, 은영이는 같은 버스(Bus), 같은 지하철로 20 분 늦게 뒤따랐다. 나는 공연장에 겨우 맞춰서 들어갈 수 있었고, 은영이는 조금 늦었다.
 
공연을 즐기는 동안 나는 전화기를 한시도 놓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연락이 없는 은영이…… 막간을 이용해서 공연장 밖으로 뛰어나가봐도 은영이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하는 수 없이 공연을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즐겼다. 나중에 알고 보니 공연장 내에서는 전화가 터지지 않았다. 전화가 왔었다는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이럴 수가 있나? 공연이 끝나고 밖으로 나오니 은영이가 표를 맡겨두지 않았다고 붉으락푸르락했다. 누가 그렇게 전화가 안 터질 줄 알았나? 내 딴에는 생각해서 그렇게 한 건데…… 여러 명이 표를 맡기던데 그러다 만약 은영이가 딴 자리에 가서 앉으면 어쩌나 싶어서…….
 
나는 원래 이런 류의 공연을 좋아한다. 은영이는 뮤지컬(Musical) 공연이 아니라면서 구시렁거렸다. 이럴 때마다 나는 늘 이야기한다.
 
“문화사대주의…….”
 
이래봬도 나는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민속문화연구회’, 일명 ‘탈반’에 혼자 무소의 뿔처럼 찾아가서 가입한 사람이다. 그 때 우리집안이 발칵 뒤집어졌었다. 이유는 그 곳이 많이 왼쪽이었기 때문이다.
 
‘그게 무슨 상관이지? 나는 그저 탈춤, 사물놀이, 농악 같은 게 좋을 뿐인데?’
 
하지만 알고 보니 분위기가 진짜로 그랬고, 결국 나는 1 년도 못 버티고 탈퇴했다. 이런 전력을 갖고 있는 나로서는 ‘판’ 같은 공연이 안 땡길래야 안 땡길 수 없다. 앉아서 즐기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이 두둥실 떠올랐다.

 

글쓴날 : [10-11-14 07:48] 이한설기자[dondog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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