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줄거리 >
역마살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고려불화대전]을 매개로 하여 우리나라 불교를 알고자 한다. 알아가는 방식은 꼬리부터 끊어나가는 바텀업(Bottom-Up) 방식이며, 그 첫 수확으로 지장보살과 그 졸개들을 뗐고, 다음으로 관음보살을 뗐고, 다음으로 부처님 중에 비로자나불과 석가모니불을 뗐다. 드디어 역마살의 역마도 종국에 다다르는데……

역마살이 석가모니불로부터 설법을 듣고 있던 그 시각, 서방정토 극락세계의 극락전에서는 아미타불, 관음보살, 세지보살이 한창 토론 중이었다.
“그러니까 세지보살, 세지보살 생각에는 역마살이 이 곳까지 올 수 있단 말이지? 찾아오지 않을 가능성은 전혀 없는 거야?”
세지보살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반드시 찾아온다는 뜻이었다. 극락세계에서 지혜와 광명이 으뜸인 보살이 고개를 가로저으니 더 이상 말을 붙일 수 없었다. 아미타불은 관음보살을 쳐다보았다. 관음보살을 쳐다보는 아미타불의 눈빛에는 이런 열망이 담겨있었다.
‘관음보살…… 관음보살만큼은 제발 역마살이 이 곳 극락세계까지는 올 수 없다고 말을 해줘, 제발 부탁이야. 내가 이렇게 간청하잖아. 여기는 극락세계야, 안 그래? 역마살이 어떻게 이까지 올 수 있단 말이야?’
하지만 관음보살 또한 아미타불의 눈빛에 고개를 가로저음으로써 대답했다.
역마살은 이미 불계에서 아주 유명한 존재가 되어있었다. 다른 부처들조차 마음 편히 대하지 못하는 비로자나불을 그 면전에까지 가서 웃으며 법을 구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진 것이다. 몇몇 보살은 “제 2 의 석가모니가 나셨다” 이런 말까지 공공연히 하고 다닐 정도였다. 그런 역마살이 아미타불을 찾아오지 않을 리 만무하지만, 그래도 가능하면 찾아오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아미타불의 바램이었다.
“올 수 있습니다. 곧 올 것입니다.”
고개를 가로저은 후 하는 관음보살의 대답이 너무 간단명료해서 단호하기까지 했다. 관음보살은 이에 덧붙여 말을 이어갔다.
“아미타불님, 그리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관음전에서 제가 먼저 만나봤는데 꽤 괜찮은 중생이었습니다.”
관음보살의 말에 아미타불이 다소 안심이 됐는지 한결 편안해진 음성으로 관음보살에게 명했다.
“관음보살, 보살들을 전부 모아봐. 모두 모아서 의논을 좀 해야겠어.”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세지보살, 세지보살은 대적광전과 대웅전에 가서 동정 좀 살피고 와.”
“예, 알겠습니다.”
관음보살과 세지보살이 극락전을 떠났다. 홀로 남게 된 아미타불은 극락전 내에 아무도 없음을 먼저 확인한 후, 극락전 내를 이리저리 배회했다.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그래, 설법을 준비하자. 역마살을 위한 설법을 준비하자.’
순간 모든 번뇌가 사라졌다.
‘한시라도 마음을 놓으면 이렇게 번뇌가 엄습하는구나.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나자신…… 나무나자신……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아미타불은 염불로써 자기자신에게 되돌아가 의지하려 했다. 그렇게 자기자신 속에 들어있는 자기자신에게 귀의하고자 했다. 그러기를 다시 1 겁, 드디어 모든 번뇌가 사라지고 아미타불이 다시금 열반과 조우했다.


얼마간 시간이 흐른 후, 극락전 바깥이 보살들의 발자국소리로 소란스럽더니 곧 극락전 안으로 보살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관음보살, 미륵보살, 허공장보살, 보현보살, 금강수보살, 문수보살, 제개장보살, 지장보살 …… 보살들의 면면을 볼 때, 한 국가의 국가원수가 죽어서 극락세계에 올 때보다 역마살의 출현이 더욱 중요하게 다뤄지는 분위기였다. 이 중 여덟 보살, 그러니까 보살들 중에 아미타불이 애지중지하는 여덟 보살을 가리켜 특히 [극락세계의 팔공주]라 부른다. 매 억겁마다 다시 뽑으니 그 때 그 때마다 다르다. 보살들이 어느 정도 모이자 바로 회의가 시작됐다.
…… 열띤 토론 끝에 역마살을 적극 환대하기로 결정이 났다. 그 일환으로 극락세계의 대표가 극락세계 입구까지 나아가 역마살을 맞기로 했다.
“그러면 누가 나가서 환대하는 게 좋을까요?”
관음보살의 질문에 여기저기서 의견이 분분했다. 보살만 가서 맞기엔 뭔가 허전하다는 의견이 있었다. 아미타불만 가서 맞기엔 극락세계가 너무 없어 보인다는 의견이 있었다. 전부 다 가서 맞기엔 다른 중생과의 형평성을 고려해봐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결국 아미타불과 대표보살 둘이 가서 맞기로 했다. 대표보살로는 세지보살과 관음보살이 낙점됐다. 회의가 거의 끝나갈 무렵, 세지보살이 급히 극락전 안으로 들어오며 합장하고 말했다.
“역마살이 오고 있습니다.”
아미타불은 놀란 기색, 급한 기색 하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관음보살이 뒤따라 일어났다. 아미타불이 극락전을 나서며 말했다.
“세지보살도 뒤따르라.”
엉겁결에 세지보살도 관음보살과 나란히 아미타불 뒤를 따랐다. 나머지 보살들은 이들을 배웅하며 합장했다.
“아무쪼록 잘 맞이해서 오세요.”
아미타불과 세지보살과 관음보살이 극락세계 입구에 자리를 잡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역마살이 모습을 드러냈다. 역마살은 이들을 발견하자마자 합장부터 해 보였다. 아미타불이 고개를 끄덕이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근본이 잘못된 중생은 아닌 것 같군.”
아미타불의 이 말에 세지보살과 관음보살이 긍정의 고개를 끄덕였다. 역마살이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오자, 아미타불이 이마에서 빛을 쏴 역마살을 비췄다. 아미타불의 환대에 역마살이 닭똥 같은 눈물을 뚝…… 뚝…… 뚝…… 뚝…… 흘렸다. 역마살이 아미타불의 빛에 100% 동기 된 것을 확인한 관음보살이 역마살에게 금련화를 내밀며 말했다.
“우리는 구면이네요. 잘 왔어요. 자, 금련화에 오르세요. 아미타불님의 설법을 들으셔야죠.”
역마살은 잠시 몸 둘 바 몰라 하다 못 이기는 척 금련화에 올랐다. 세지보살은 보병을 이고 행여 역마살이 금련화에서 떨어질세라 합장하고 지켜보고 있었다. 그렇게 역마살은 극락세계로 갔다.
[ 어? 그러면 내가 죽은 건가? 그런데 솔직히 우리나라 불교를 좀 깨치고 나니까 죽고 살고가 그리 큰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분들! 혹시 여러분께서는 윤회의 맛을 보셨나요? 번뇌가 사라집니다. 우리 모두 성불합시다. ]
그렇게 역마살은 아미타불로부터 설법을 들었다. 그리고 다음 차례로 약사불, 그 다음 차례로 미륵불로부터도 설법을 듣고 깨쳤다. 약사불과 미륵불로부터 설법을 들은 그 소설 같은 이야기는 다음에 다시 자리를 마련하도록 하겠습니다.

역마살은 우리나라 불교를 깨치기 위해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동안 본 것, 얻은 것들을 대중에게 모두 공개하고 싶었다. 이런 소식을 풍문에 전해들은 대한민국 국립중앙박물관이 역마살을 찾아왔다.
“역마살님, 저희 박물관에 두고 모두에게 보여주시는 것이 어떠한지요?”
“제게 너무 과분합니다. 저는 그저 사립변두리박물관이면 됩니다.”
“아닙니다. 저희들이 역마살님께서 본 것, 얻은 것을 모시겠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역마살이 보고 얻은 것들이 모두 사립변두리박물관에 두기에는 너무 소중한 것들이라는 걸 안 것이다. 역마살은 더 이상 거부하는 것이 예의가 아닌 것 같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조금 거만한 목소리로 이렇게 이야기하면서 대화의 종지부를 찍었다.
“그러면 그럴까요? 허.허.허. 그런데 조건이 있습니다. 제게 대한민국에서 가장 참한 은영이를 소개시켜주실 수 있나요? 가장 예쁜 은영이 말고 가장 참한 은영이어야 합니다, 허.허.허.”
그렇게 해서 역마살이 본 것, 얻은 것 모두가 대한민국 국립중앙박물관의 [고려불화대전]으로 공개됐고, 은영이가 역마살의 품에 안기게 됐다. 역마살이 은영이를 얻은 데는 관경십육관변상도의 도움도 컸다. 관경십육관변상도란 역마살이 불계를 떠도는 동안 생각한 은영이의 16 가지 모습인데, 이런 고심 덕분에 역마살은 은영이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16 가지 모습의 내용은 이렇다.
1. 일상관 : 지는 해를 보고 서쪽에 있는 은영이를 생각함.
2. 수상관 : 물을 보고 은영이의 유리지를 생각함.
3. 지상관 : 유리로 되어있는 은영이의 대지를 명료하게 생각함.
4. 수상관 : 보배로 되어있는 은영이의 나무를 생각함.
5. 팔공덕수상관 : 은영이 연못의 팔공덕수를 생각함.
6. 총상관 : 은영이에게 있는 보배누각을 총체적으로 생각함.
7. 화좌상관 : 은영이가 앉아있는 연화대좌를 생각함.
8. 상상관 : 불상의 모습을 보고 은영이의 모습을 생각함.
9. 편관일체색상관 : 은영이를 통해 모든 부처의 모습을 생각함.
10. 관세음상관 : 은영이를 보좌하는 관세음보살을 생각함.
11. 대세지상관 : 은영이를 보좌하는 대세지보살을 생각함.
12. 보상관 : 은영이가 극락에 태어나는 모습을 생각함.
13. 잡상관 : 1 장 6 척의 은영이와 관음보살, 세지보살을 생각함.
14. 상배생상관 : 상품의 왕생자들이 은영이에게서 태어나는 모습을 생각함.
15. 중배생상관 : 중품의 왕생자들이 은영이에게서 태어나는 모습을 생각함.
16. 하배생상관 : 중품의 왕생자들이 은영이에게서 태어나는 모습을 생각함.
그러니까 역마살은 은영이를 만나기 전부터 이미 은영이의 성격, 신체, 재산내역, 상품의 자식을 순풍 낳을 수 있는지, 죽은 후 극락에 갈 수 있는지 등을 모두 알고 있었던 셈이다. 은영이를 얻기 위해 역마살이 도대체 몇 겁의 세월을 건넜으며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