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린보이 박태환 마린시티 인천에 입단하다
다시 한 번 날개짓 하는 박태환을 기다리며
송영길 인천시장으로부터 축하 꽃다발을 전달받고 있는 박태환 

 

- 인천시청은 박태환에 환호했다

 

지난 3월 28일 오후 인천시청 1층 홀에서 수영 선수 박태환의 인천시청 입단식이 열렸다.

1월에 있었던 탤런트 이시형의 복싱팀 입단식보다 더 많은 팬과 취재진으로 붐볐다.

이시형의  공개 입단식은 갑자기 결정되었고 오전 업무시간에 열린 것과 달리, 박태환의 입단식은 미리 예고가 되었고 점심시간에 열려 시청 직원들과 일반인들이 더 많이 찾은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도 박태환이 갖는 스타성이나 최근의 논란이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시형 역시 인기 탤런트고 여성으로서 쉽지 않은 복서로서의 길을 택했기에 많은 주목을 받았지만, 스포츠 스타로서 박태환이 갖는 위상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언론과 팬들의 열띤 취재와 응원 열기 속에서도 입단식을 치르는 박태환의 태도는 시종일관 조심스러웠고 다소 의기소침해 보였다.

모두가 말하지 않지만 또 모두가 알고 있는 불편한 진실 때문이었을 것이다.

기자들의 질문 역시 단 한 개에 불과했다.

아직은 20대 중반에 불과한 이 어린 선수가 감당하고 있는 삶의 무게와 정상에서 내려다 봐야 하는 내리막길이 안타깝고 아프게 느껴졌다.

 

최근 논란이 되었던 수영연맹의 포상금 미지급 파장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수영에서 부정출발로 실격되어 쓸쓸히 퇴장하던 10년 전의 그 모습이 다시 떠올랐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를 기억하고 따듯하게 응원하며 격려하고 있는 인천시청과 사람들이 고마울 뿐이었다.

 

인천시청 로비는 취재진과 환영 인파로 열기가 뜨거웠다

 

- 넌 박태환을 벌써 잊은 거니?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박태환은 수영 자유형 200m와 400m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어떤 종목이건 은메달이라는 건 대단한 성과다.

그것도 두 개나 된다.

게다가 종목이 수영이고 세부 종목은 자유형이다.

굳이 가치를 매기자면 수영 자유형 은메달은 태권도 금메달만큼이나 값지다.

 

2006년 카타르 도하 아시안게임 수영 자유형에서 3관왕에 오르고 대회 최우수선수로 선정될 때까지 한국은 수영의 불모지였다.

아시아의 물개라 불린 조오련이나 최윤희가 있었다지만 탈(脫) 아시아 급은 아니었다.

게다가 동양인에게는 넘사벽(죽어도 넘을 수 없는 벽)이라 여겨지던 자유형이었다.

 

아테네 올림픽에서의 실격으로 ‘저 어린 아이가 얼마나 긴장했을까?’하는 안쓰러운 시선을 받는 게 전부였던 중학생 소년이 2년 만에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을 때, 한국인들은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했다.

김연아, 박지성, 최경주와 함께 박태환은 2000년대 한국 스포츠의 세계적 중흥을 이끈 빅4가 되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박태환은 남자 수영 자유형 400m에서 마침내 한국 수영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게다가 펠프스가 출전한 200m에서도 은메달을 땄다.

올림픽 수영에 세부종목을 40여개나 만들어 놓은 수영 강대국들을 비난하던 우리가 박태환의 강세 종목인 자유형 800m도 올림픽에 넣어달라고 우기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기대보다는 조금 못 미쳤다.

그래도 최선을 다했고 잘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벌써 그의 위대함과 고마움을 잊은 듯하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자제하고 있는 듯한 박태환과 그의 부모님이었다

 

- 사실 우리는 모두가 늙어간다

 

많은 스포츠 분야에서 일본에 앞서 있지만 수영이나 피겨 스케이팅에서는 일본의 세계적 선전을 부럽게 바라보기만 하던 우리에게 박태환과 김연아는 엄청난 자부심과 기쁨을 주었다.

그런데 대부분의 스포츠가 그렇지만, 자유형 수영이나 피겨 스케이팅의 경우는 특히나 더 전성기가 이르고 짧다.

 

폭발적인 순발력과 근력, 유연성을 함께 요구하는 분야기 때문이다.

선수 생명이 짧고 숨겨진 경쟁자가 넘쳐날 수밖에 없다.

그렇게 2012년 런던 올림픽은 박태환에게 벚꽃이 지는 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쑨양이라는 중국 선수가 혜성 같이 나타나 박태환의 왕좌를 빼앗아 버렸기 때문이다.

쑨양은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도 박태환에게 버거운 상대가 될 것이다.

 

아쉽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두뇌의 능력은 서서히 퇴화하고 지혜의 연륜은 나이가 들수록 성숙하지만 몸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인간이 몸으로 만드는 예술인 스포츠가 더 위대하고 극적인지도 모른다.

박태환은 다음 올림픽을 기약할 수 없는 게 사실이다.

수영 선수로서의 숙명이다.

 

그렇다고 해서 박태환이 올림픽에서 목에 건 4개의 메달과 그의 성취가 뿜어내는 빛나는 아름다움이 퇴색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20대 중반의 나이에 이미 은퇴를 바라보게 되었지만, 그의 미래는 여전히 밝고 그의 미소는 여전히 앳되다.

그가 한국인에게 준 행복과 자긍심은 영원히 빛날 것이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선전을 다짐하고 있는 박태환

 

- 망은(忘恩)하는 국민에게 미래는 없다

 

운동선수를 스포츠 마케팅에 이용하려는 기업의 속성을 비난할 수는 없다.

박태환의 전성기가 끝났다고 여겨 후원을 중단한 대기업에게 서운할 수는 있어도 비난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스포츠연맹은 다르다.

그들은 수익을 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선수가 없으면 연맹도 존재 의미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박태환에게 약속한 올림픽 포상금을 지급하지 않은 수영연맹의 행태는 매우 괘씸하고 뻔뻔하달 수밖에 없다.

박태환이 등장하기 전 한국수영연맹은 존재 자체가 미미했다.

박태환의 존재감이 수영연맹의 존재감보다도 크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런데 부정 출발 논란 속에서도 은메달을 따내느라 몸과 마음이 지친 박태환이 환영식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포상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규정을 말하지만 사실 금메달을 따지 못한 것과 환영식에 참석하지 않은 것에 대한 괘씸죄다.

수영 연맹은 자신들이 누구를 위해 그리고 누구 덕분에 존재하는지조차 모르는 듯하다.

썩을 대로 썩고 지리멸렬한 한국의 스포츠 연맹이나 협회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다.

여기에 박태환이 이른바 SKY를 거부하고 단국대 행을 택한 것에 대한 뒤늦은 복수도 한몫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한국 스포츠는 오랜 시간 학원 스포츠로 지탱해왔다.

학원 스포츠를 통해 협회나 지도자들이 영향력을 행사하고 기득권을 유지했다.

그러다보니 스포츠 분야에도 SKY(여기서 S는 한국체대로 대체된다) 파벌이 존재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른바 빅4 스포츠인 축구·야구·농구·배구 선수들이 대학을 거부하고 프로로 직행하기 시작하면서 이른바 스포츠 SKY의 위상이 흔들릴 위기에 처했다. 

 

개인 인터뷰 없이 서둘러 빠져나가는 박태환

 

- 운동선수도 SKY를 나와야 하는 불편한 현실

 

그렇게 되자 대학들은 빅4 이외의 종목에 주목하게 되었고 한 때는 주로 여자 골프 선수들이 타깃이 되었다.

2000년대 들어 주목을 받은 스포츠 스타 중 김연아는 고려대로 갔고 손연재는 연세대를 택했다.

국가대표 수영 선수를 다수 입학시킨 연세대가 박태환에게 손을 내밀었지만, 고민을 거듭한 끝에 박태환은 지도자 자리를 약속한 단국대 행을 택했다.

 

지나간 이야기지만, 박태환이 만약 연세대 행을 택했다면 지금처럼 연맹에게 푸대접을 받는 고립무원의 신세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박지성 역시 명지대가 아닌 연·고대에 들어갔다면 더 쉽게 국가대표가 되었을 것이다.

연세대 황상민 교수가 애꿎은 김연아 선수를 사례로 든 것은 분명 잘못이지만, 그가 말하고자 했던 학원 스포츠의 폐해와 허상은 맞다.

 

쇼트트랙에서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는 한체대·연세대 vs 경희대 간의 파벌 싸움에서 억울하게 희생양이 된 안현수는 우리나라 역대 최다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될 것이라던 당초의 기대를 뒤로 하고 러시아로 떠났다.

여론은 조국을 등진 안현수에게 연민을 보였지만, 빙상연맹에는 엄청난 비판과 비난이 쏟아졌다.

 

이번 박태환 선수의 인천시청 입단이 씁쓸했던 것도 같은 이유다.

아시안 게임을 앞둔 인천시청이 성공 개최 차원에서 영입했다고 하지만 하락세에 접어들어 지원이 끊긴 박태환을 인천시청이 품었다는 게 더 맞을 것이다.

빙상연맹이나 스폰서들이 박태환을 내친 것이나 다름 없다.

인천시청의 이번 영입은 칭찬 받아 마땅한 일이나 감춰진 이면의 씁쓸함을 지울 수가 없는 이유다.

 

박태환이 인천에서 다시 한 번 날아오르길 기대한다

 

- 다시 한 번 날아오르는 박태환을 기다리며

 

박태환에겐 부침이 많았다.

2004년 아테네에서 실격으로 수줍게 물러났고,

2006년 카타르에서는 신데렐라가 되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세계적인 영웅이 되었지만

2009년 로마 선수권에서의 부진으로 비난을 한 몸에 받았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는 다시 3관왕에 오르며 비난을 잠재웠다.

2012년 런던에서는 선전했지만 쑨양의 비상을 막지는 못했다. 

그는 늘 노력했고 겸손했지만,

여론과 언론은 항상 그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언제나 영웅과 천재를 기다리고 그 소수 덕분에 많은 것을 얻으면서도,

그 영웅과 천재에게서 더 이상 뽑아낼 게 없으면 버리는 것이 우리의 자화상이다.

그렇지만 나는 늘 그를 응원한다.

그가 보란 듯이 이겨내길 기원한다.

 

나를 포함한 한국인들은 그에게 많은 것을 빚졌다.

인천시청은 이번에 대한민국 국민을 대신해 그 빚을 조금 갚은 것뿐이다.  

그래서 2014년 조국에서 열리는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다시 한 번 그가 훨훨 날아오르는 모습을 나는 기다린다.

 

글쓴날 : [13-04-02 21:03] 김세호기자[saengtaeng@pb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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