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국제물류 중심항만을 지키는 부산경남본부세관

 

 

부산경남본부세관은 중앙동, 부산의 북항에 있습니다. 1833년에 부산세관으로

개청되어 올해 129주년을 맞는 다고 합니다.  

 

 

일제강점기시대 지은 붉은 벽돌의 르네상스식 옛 청사는 부산의 상징적 건물로

시민들의 사랑을 받았으나, 1979년 6월 부산 도시근대화계획에 따른 도로확장

공사로 철거되고 건물의 꼭대기 종탑부분만 여기 이렇게 남았습니다.

가까이 가보니 '개관 100주년 기념 타임캡슐'이 되어 1984년 6월 8일 봉인되고,

2084년 6월 8일에 개봉한다고 적혀있군요. 


세관건물의 넓은 사무실 1층 홀 끝에는  쉴 수있는 공간, 북카페가 있어서
각자 교통편으로 서울서 내려온 파.얼회원들이  모여 쉴 수 있었습니다. 
약속된 시간 2시, 최강수 홍보담당관이 먼저 나타나 인사를 나눈후,
서윤원 세관장님과의 간략한 인터뷰가 시작되었습니다.


-핵안보정상회의 안전 개최를 위하여
 
먼저 3월 26일~27일에 열리는 핵안보정상회의는 참석하는 각국 정상만 53명으로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정상회의 규모로는 최대인데, 불상사나 차질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테러물품의 항만 침투를 철저히 주시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테러물품은 항공보다 검색이 상대적으로 느슨한 선박을  이용할 가능성이 크고
인천의 항만 침투 보다는 수도권에서 먼 곳을 택해 들어 올 수 있다는 추정하에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회의 직전 보다는 2-3주전 먼 부산항이
타겟이 될 수 있으므로 총포화약 등 안보물품 반입을 경계근무하고 있답니다.



세관의 크기는 규모면에 있어서 서울, 인천, 부산, 인천공항, 대구, 광주를 손꼽을
수 있고, 부산 경남본부세관에는 11개의 지역세관이 있답니다. 제가 포스팅하면서
검색해보니 용당, 김해, 거제, 마산, 양산, 창원, 사상, 사천, 부산국제우편, 진주,
통영세관이로군요. 세관원 1100명중 700명은 부산에 근무하고 400명이 지역세관
근무를 하고 있는데, 부산경남지역에서 작년 14조억원의 세금을 징수 했다고 합니다.

속으로 와! 국세청~ 했는데 경제 국경을 지키는 세관의 수입징수는 국세청의
세수와는 좀 다르겠지요. 

세관의 기능은 신속하고도 친절하게 수출입 화물 및 여행자 휴대품을 통관시키고,

안보위해물품 밀반입 차단을 통해  국가 경제발전과 재정수입확보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미래의 부산항
부산에는 4개 항만이 있는데, 북항, 남항, 감천항, 신항이라 합니다.
수출입 컨테이너를 하루당 1400만Teu -1600만Teu를 4개항에서 처리하고 있는데,
전국 물량의 80% 라고 하는군요. 북항은 1일 70척 선박이 드나들고, 250척이
정박하는데 현재 세계 5위의 컨테이너 처리를 하고 있습니다. 2020년 북항 
재개발이 완료되고, 1995년에 시작한 부산 신항이 조기 조성되면 컨테이너는
더욱 엄청나게 늘어나겠지요. 가덕도에 30선석 규모의 컨테이너 전용부두까지
생길 예정이니, 신항의 컨테이너 물량은 대단하겠습니다. 
세계 12대 교역규모에 걸맞게 항만 규모를 넓히고 수출입 통관도 원활히 할 준비

테세를 갖추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관세행정은 몇년째 World Best로 평가되고있다
 
우리나라는 90년대초에 전산화가 완료되어 전세계 관세분야에선 넘버 원으로
남미, 중동, 몽골 등에서 우리 세관 시스템을 수입해 가고 있답니다.
정상적 물품은 신속 정확하게 처리해야하고, 불법 밀수품, 불량 유아용품, 짝퉁
등은 예리하게 적발해내야하는 고충도 있습니다.
마약, 총포 무기류, 화약, 국민건강 위해물 등을 적발하여 소비자들의 손에 닿기전에

차단시키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고 합니다.   

 

1878년 설치된 두모진 해관에서 발전한 부산세관은 태평양과 유라시아 대륙을

연결하는 국제 관문 위상을 정립하고 부산 원도심 기능회복,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북항을 재개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1세기를 대비한 동북아 국제물류,

비지니스 중심항만 구축을 위해 신항 공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부산엔 4개의 항만에 36개의 부두가 있어서 현재 186척이 동시 접안할 수 있고,

동시 하역작업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시속 60-70 킬로미터의 감시정이 전국에 38척이 있는데, 16척이 부산경남지역에

있다고 합니다. 전에는 경남 1호, 경남 2호로 불리워졌으나, 뮐렌도르프호 등으로

감시정 명칭을 바꿨다고 해요. 저희가 항만감시현장 투어의 일환으로 거제에서

탈 배가 조선 초대 관세청장 뮐렌도르프호라며, 궂은 날씨에 행운을 빌어주셨습니다.


 

 

 -관세국경을 철통 같이 지킨다 

감시종합상황실에 안내되어 경제국방을 위해 빈틈없이 노력하고 있는 세관
직원들의 경계근무를 관광했습니다.  핵안보안전지원을 위한 감시도 말이지요.
유출되어선 안될 사항은 저희도 사진 찍지 않았습니다.    


 


73대의 CCTV가 찍어내는 46인치 12대의 모니터로 항만들을 감시합니다.
클릭하면 자동차 번호판도 나오고, 자동차 안에 탄 사람의 얼굴도 나올 정도
입니다. 카메라 성능이 대단했습니다.


밀수는 물론 부정무역을 단속하고 마약탐지견을 동원하여 마약류 반입을 철저히 단속합니다. 유관기관이 상호 협력하여 불법외환거래 단속을 통하여 국민경제, 사회 안전망 구축에 힘쓰고 있습니다.

 



1998년 이후, 원시적 방법의 적발에서 이제는 종합감시체제로 바뀌었습니다.
이동식 x-ray로 컨테이너 물품을 확인합니다. 그리고 GPS 감시로 차량 이동경로가
전부 흔적으로 남습니다. 
 
사전정보 검색 프로그램으로 친절 신속히 세관업무를 처리하되 점점 조직화되고
진화되는 외환 밀반입, 마약류, 총기류, 건강위해식품, 명품짝퉁 등을 적발해냅니다.

그리고 동영상 화면으로 밀수범 추적을 아주 흥미롭게 관람했습니다
우범성을 사전 심사하여 '선택과 집중'으로 주시하면서 처리해내는 걸 알았습니다. 

 

 

전세계 어디든 우리나라 선박 이동 위치와 움직임을 follow up 할 수 있음도 구경했는데요.

과학문명의 발달 전개가 어디까지일지 정말 신기했습니다.


 

 

꼭대기층 사무실에 올라가 북항과 남항을 구경했어요. 부산사람이 아니어서

듣고도 방향감각이 없어 지금은 잊어버렸습니다만, 용두산공원 전망대도 보이 더군요.

용두산 부근이 200년간 초량왜관이 있었던 자리라지요. 그들은 당시에 단돈 50원으로 산을

매립하여 치외법권지역인 왜관을 넓혔다고 나중에 세관 박물관장님께 들었습니다.

 


 

이 차는 이제 컨테이너 검색기, 판독실로 들어갈 모양입니다.
 

-판독실
x-ray 통과 물품 확인을 하는 세관직원의 눈은 이 분야 베테란급이겠지요.
사람이 엑스레이 선상에서는 뼈만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물품도 그렇게 보이더군요. 

우리는 도무지 알아볼 수 없는 엑스선 사진으로 변별을 해내니 그저 놀라울 뿐입니다.


이 부두만 해도 엄청나게 적재된 컨테이너들을 보았습니다. 1980년대 이후의
관세청 역사는 효율적 검사를 하기위한 시스템을 만드는 역사였다고 합니다.
옛날에 컨테이너 하나를 검사하는데, 빨라야 4시간이 걸렸다고 하니까요, 몇명의 세관원이

직접 올라가서 일일이 들쳐보는 상태에서는 무역강국의 코리아는 꿈도 못꿀
일입니다. 통관절차 간소화와 자동화 시스템으로 우리의 수출물량은 신속하게
오대양 육대주로 건너가고 수입컨테이너도 마찬가지로 신속처리되어 물류비용을
줄이게 된 것입니다.


부산세관 이용득 박물관장(오른편), 부산경남본부세관 최강수 홍보담당관(왼편)

부산세관 박물관은 우리나라 개항사와 함께한 부산항 및 세관 역사를 재조명하여
세관행정의 이해와 홍보,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설립한 박물관입니다. 관장님이

열정적으로 우리에게 부산 개항의 역사와 사료들을 설명해주섰습니다.


1875년 일본은 운요호(운양호)사건을 일으키고, 조선정부에 조약체결을 강요하였습니다.
하는 수 없이 고종 13년인 1876년 강화도에서 일본과 조선 사이에 강화도 조약(병자수호조약)이 체결되었지요. 이 조약에 의해 조선은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에서 벗어나 개항정책을 취하게 되었습니다. 일종의 무관세조약이었으나, 치외법권을 인정한 불평등조약이었기 때문에 일본 식민주의 정책의 시발점이 되었다고 합니다.


1678년, 대마도민들의 간청을 받아들여, 초량에 왜관을 설치하도록 허가해준 기존의

초량왜관은 강화도조약이후  일본 외교관들이 머무는 일본인 전관 거류지로 개방되었대요. 1878년, 개항장 동래부 두모진에서 조선정부측과 일본인 상인들간에 무관세 문제로 충돌하는 '두모진 해관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두모진해관을 조사해보니 참 씁쓸하게도 3개월만에 일본인상인들의 난입시위로 문을

닫게되었더군요. 일본 외무경측도 '두모진 해관의 설치가 강화도조약에 대한 위반행위'라는

항의서를 조선 정부에 제출함과 동시에 군함을 이끌고 부산항에서 함포를 발사하며 무력시위를 했으니,사전 지식없이 억지로 체결한 조선의 첫 국제조약은 가슴에 피멍울이 들게 했습니다. 1878년에 설치된 두모진해관이 부산세관의 전신이라 합니다.

 



 

1934년 도계교인 영도다리가 개통되었는데, 모여든 군중 보이시죠.

이번 일본의 쓰나미를 보면 일본열도가 한반도의 방파제 역할을 하듯 영도가

부산항의 방파제 역할을 해서 부산항은 국내 여타 항구보다 피해가 적은듯 하군요.



 

 

관부연락선 이름의 변천에서 일본의 야욕을 읽을 수 있다고 힌트를 줘서 곰곰히 읽어봤어요.  일기환-대마환-신라환-고려환-경복환-창경환-덕수환-금강환-흥안환-천산환- 곤륜환

대마도에서 신라, 고려, 그다음에는 경복궁, 창경궁, 덕수궁이름으로, 금강산, 그 다음에는

흥안령, 중국의 천산산맥, 곤륜산맥으로 중국의 서쪽까지 뻗치고 있습니다.


 

 

총세무사 뮐렌도르프(독일인), 그외 세관직원은 대부분 영국인들이 조선의 관세업무를

맡았다고 합니다. 조선의 인재없음이 서글프게 닥아오지요. 뮐렌도르프는 목인덕이라는

조선의 이름과 참판벼슬을 받았습니다.

 



1979년에 도시계획으로 철거해버린 부산세관 건물, 박물관장도 굉장히 아쉬워했습니다.

우리나라가 경제개발과 산업화 시대를 지나면서 역사유적을  함부로 없애버린 곳이 한둘이

아닙니다. 

 


 

1994-5년 세관의 시스템변화로 수출입신고서도 달라졌습니다. 그중 은화가 눈길을

끌었는데요. 5개의 은화는 멕시코, 미국, 스페인, 일본, 필리핀의 은화로 5개국 은화는

크기가 똑 같습니다. 멕시코에 가장 큰 은광산이 있으므로 멕시코 은화가 표준가치를

지닌다고 했어요.

 



부산세관에는 방대한 역사자료와 통계가 구비되어 있습니다. 명품 짝퉁의 비교전시, 필로폰 제조기까지 갖춘 마약류, 사향, 녹각과 서각(무소의 뿔), 1876~ 1945년 일제강점기에서부터 2000년대까지주요수입품과 주요수출품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중앙의 북은 세관신문고입니다.  관세청은 적극적인 민원처리로 국민의 권익 보호에 기여한 공로로 국민고충처리위원회와 서울신문사 주관하는 옴부즈만 우수상을 받은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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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컨텐츠는 관세청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원작성자 : 리버룸

원    글 : http://blog.joinsmsn.com/liberum/12583061

원    글 :
http://blog.joinsmsn.com/liberum/12583966

글쓴날 : [12-03-16 00:39] 파워블로거타임즈기자[pbatimes@pb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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