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트리트댄스 뮤지컬(Street Dance Musical)이라는 다소 생소한 형식의 공연 ‘리턴 오리지날(Return Original)’을 보고 왔다. 스트리트댄스 뮤지컬이 뭔지 잘 모르시겠죠? 쉽게 얘기해서 몇 년 전에 공연업계에 일대 파란을 일으켰던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 같은 류의 공연입니다. 비보이(B-boy)들이 펼치는 이야기와 감동이 있는 공연…… 하지만 대사 없이 춤추는 몸과 배경음악만 있는 공연……. ‘리턴 오리지날’은 이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를 만든 팀(Team)이 새로이 선보인 공연이다. 그래서 부분부분 서로 엇비슷한 느낌이 드는 장면이 꽤 많았는데, 줄거리는 완전히 달랐다. 이제 ‘리턴 오리지날’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상금 오십만 달러(Dollar)가 걸려있는 비보이 배틀대회(B-boy Battle)가 곧 열릴 예정이다. 여기에 우리편 고릴라크루(Gorilla Crew)가 출전하려 한다. 안 그래도 밀린 연습실 임대료 때문에 고민하던 차에 마지막으로 기댈 희망이 생긴 것이다. 하지만 대회출전을 준비하는 과정이 그리 녹록하지만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주요 선수 한 명이 나쁜편으로 가버리는 바람에 대회출전을 거의 포기해야 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원래부터 그 놈은 돈을 더 중시하는 싹수가 노란 놈이었다. 그런데…… 어쩌면 나라도 그 쪽에 붙었을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극 중에 나쁜편이라고 설정해서 그렇지 그 쪽도 특별히 나쁜 짓을 하고 다니는 그런 놈들이 아니었다. 단지 술을 좀 마실 뿐이고, 예쁜 여자가 많을 뿐이고, 돈이 넘칠 뿐이고, …… 그게 뭐? 그런 팀이 대회출전을 하려고 보니 모자라는 부분이 있어서 그 부분을 외부인사를 영입해서 채우겠다는데 그게 뭐? 외부인사가 들어옴으로써 다른 팀원들이 새로운 기술을 익히고, 팀의 기량이 전체적으로 한 단계 발전하면 이런 게 다 소위 말하는 윈윈(Win-Win)이고, ‘성공적인 외부인사영입’이고, ‘비용절감 차 주는 외주’고, ‘잘 된 스카우트(Scout)’, ‘분위기 쇄신’ 아닌가? 대구 출신은 무조건 삼성라이온즈(Lions)에서 뛰어야 하고, 부산 출신은 무조건 롯데자이언츠(Giants)에서 뛰어야 해? 그런데 지금 내가 왜 흥분하고 있냐?
어쨌든 그런 와중에 과거에 고릴라크루의 한 구성원이었던, 하지만 지금은 일반 직장인이 되어있는 한 친구가 고릴라크루를 찾아온다. 이 친구는 춤을 좋아하고, 또한 춤을 정말 잘 추는 친구다. 이 친구만 있으면 고릴라크루가 사는 거다. 이 친구 또한 번민 중인데, 직장인이 되고 난 후부터 항상,
‘이것이 과연 나의 길일까? 춤이 추고 싶다. 나의 소중한 인생을 이렇게 직장에서 하루하루 죽이고만 있을 순 없다. 하지만 돈을 벌어야겠지? 사람이 어떻게 춤만 추고 살 수 있겠어? 돈을 벌자…… 그래도 춤이 추고 싶다. 너무 추고 싶다.’
이런 고민에 빠져있었다. 안 그래도 자리를 못 잡고 있던 차에 고릴라크루의 현실을 알고 나니 이런 고민이 친구를 더욱 더 첨예하게 괴롭힌다. 이 대목이 공연에서 압권이었다. 공연 전체를 통틀어 최고의 명장면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물론 다른 장면도 좋았지만 그래도 관객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100% 춤에 녹여서 완벽하게 전달해낸 장면은 이 장면밖에 없었다. 이 장면에서 나는 춤을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 극에 빠져들었다. 다른 장면에서는 극에 빠져들었다기보다 춤을 구경하고 있다는 느낌이 꽤 컸다. 이런 장면으로만 극이 꽉 채워졌으면 좋겠는데…….
춤으로써 괴롭히는 악몽과 춤으로써 못살게 구는 직장귀신들 틈에서 친구는 춤으로써 고민을 한다. 춤으로 고민하기에 진정 온몸으로 고민할 수 있는 것이다. 악몽은 친구를 가만히 두지 않고 계속해서 쥐어짰고, 직장귀신은 친구를 갖고 계속해서 꼭두각시놀음을 했다. 따로따로 괴롭히다가 때로는 한꺼번에 덤벼들어 괴롭히는 악몽과 직장귀신의 틈바구니 속에서 친구는 힘들어서, 괴로워서 몸부림친다. 그러다 결국 몸에 맞지 않던 옷을 벗어 던지듯, 씹히기만 하고 목구멍으로 절대 넘어가지 않던 질긴 오징어를 뱉어내듯 친구는 그렇게 직장을 때려치우고 고릴라크루에 합류한다. 이 대목에서 직장인인 내가 아주 강한 쾌감과 함께 대리만족을 느꼈다. 땡큐(Thank you)!
이 후 고릴라크루는 대회출전을 위해 연습에 매진한다. 그리고 승승장구한다. 그러다 마지막 결승전에서 나쁜편과 비보이 배틀을 한 판 벌인다. 이 싸움에서 고릴라크루가 승리한다. 그리고 막이 내린다.

참 괜찮은 공연이었다. 오랜만에 실컷 웃고, 실컷 소리치고, 실컷 즐겼다. 그런데 공연장이 너무 크고 너무 형식적이고 너무 정형화되어있다 보니 아무래도 ‘리턴 오리지날’의 감동이 가슴 깊숙한 곳까지 들어오진 못했다. 공연을 즐기긴 하되 함께 가슴이 뛰진 않는 느낌……. 이런 공연은 정말 지하실 공연장에서 즐겨야 하는 것 같다. 그 때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를 즐겼던 홍대입구 지하 1 층이나 ‘동키쇼(The Donkey Show)’를 즐겼던 클럽(Club)이면 딱 좋았을 것 같다. 만약 악몽 장면을 그런 곳에서 봤더라면 나, 까무러치지 않았을까?
그리고 전체적으로 3 무리가 등장하는데, 그 중 하나는 주인공이자 우리편인 고릴라크루, 다른 하나는 나쁜편 춤꾼들, 마지막으로 직장상사들이다. 그런데 나쁜편 춤꾼들과 직장상사들을 거의 하나로 처리하면서 극의 사실성이 많이 떨어졌다. 마치 일일드라마에서 이중사돈이 맺어지고, 직장상사가 알고 보니 여자친구의 친척인데, 그 직장상사의 누나가 우리 형이 좋아하는 여자인 것처럼 말이다. 좀 떼면 좋겠다. 우리 직장인들은 그렇게 춤꾼으로 지낼 시간이 없다. 몰라…… 친구가 다니는 회사가 좀 껄렁껄렁한 회사인 것 같던데 그러면 또 모르겠다.
2010 공연관광축제(KOREA in MOTION)의 일환으로 ‘리턴 오리지날’을 봤다. 2010 공연관광축제란, 아시아(Asia) 최고의 비언어극(넌버벌 퍼포먼스 : Nonverbal Performance)으로 통하는 우리나라의 유명 공연들이 10 월 16 일부터 31 일까지 16 일간 향연을 펼치는 축제다. 늘 열리는 공연인데 뭐 그리 호들갑이냐 하겠지만…… 큭큭큭…… 문제는 가격이다. ‘코인모데이’라고 해서 축제기간 중에 금, 토, 일 이렇게 주말에만 특정 공연을 찍어서 10,000 원에 관람하도록 해준다. 이 사실을 알고 매주 찾아가 공연을 즐기고 싶었지만 시간관계상 그럴 수 없고, 우리가 마음 먹고 축제를 즐긴 10 월 30 일 토요일은 오후 2 시 ‘판(The Pan)’, 오후 4 시 ‘미소’와 ‘사랑하면 춤을 춰라’, 오후 7 시 ‘리턴’이 각각 10,000 원이었다. 이 중에 우리는 ‘판’과 ‘리턴’을 즐겼다.
“은영아, 코인모데이가 뭘까? 10,000 원으로 공연을 관람하게 하는 날이니까 동전(코인:Coin) 뭐 아닐까?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안내장을 보면서 내가 이러고 있으니까 은영이가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선배, 코리아 인 모션에서 첫 글자만 따서 코인모 아니야?”
켁! 이럴 수가…… 내가 어떻게 이런 걸 예상치 못할 수가 있지? 내 명석한 두뇌는 다 어디로 간 거지? 진정 내가 명석하지 않음을 즐길 나이에 도달한 거야? 세월이 가기는 가는 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