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줄거리 >
역마살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고려불화대전]을 매개로 하여 우리나라 불교를 알고자 한다. 알아가는 방식은 꼬리부터 끊어나가는 바텀업(Bottom-Up) 방식이며, 그 첫 수확으로 지장보살과 그 졸개들을 뗐고, 다음으로 관음보살을 뗐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처님을 떼기 위해 나아가는 중이다.
[고려불화대전]으로 우리나라 불교 때려잡기 제 3 탄 시~작~!

“큰일났다. 어서 분리하자.” / “또 분리해?” / “역마살이 지금 거의 다 왔단 말이야.”
비로자나불은 미륵불, 석가모니불, 약사불, 아미타불을 모아놓고 분리를 재촉했다. 마음이 급했다. 하지만 급한 건 비로자나불뿐이었다. 비로자나불을 제외한 다른 부처들은 그저 어리둥절해하고 있을 뿐이었다. 부처들은 가능한 한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저승으로, 이승으로, 미래로, 법신으로 또 다시 뿔뿔이 흩어지고 나면 언제 다시 만나 합체될 수 있을지 기약이 없었기 때문이다. 핫(H.O.T.)도, 세스(S.E.S.)도, 갓(G.O.D.)도 그렇게 흩어지고 난 후 영원히 재결합되지 않았다. 약사불이 비로자나불에게 물었다. 불만이 약간 가미된 어투였다. 약사불의 물음에 웅성거리던 좌중이 조용해졌다.
“비로자나불, 역마살이 도대체 누구야? 이름을 보아 하니 지옥도에서 갓 나온 떠돌이 중생인 것 같은데…… 살려면 돌아다녀야 하고, 돌아다니는 것만이 살 길인 그 불쌍한 중생을 우리가 왜 무서워해야 하는데? 그 역마살인가 맛살인가 하는 중생 때문에 우리가 왜 분리해야 하는데?”
약사불의 불평 섞인 물음에 비로자나불이 평소와 다른 급박한 법어로 대답했다. 비로자나불의 빠른 법어에 배경이 되는 목탁소리 또한 그에 맞춰 박자가 빨라졌다.
“그 놈은 우리나라 불교를 때려잡아서 몽땅 이해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는 놈이야. 한마디로 무식하고 불쌍하고 힘만 센 중생이지. 마땅히 보살들이 교화하고 우리가 너른 품으로 받아들여야겠지만 지금은 그럴 만한 시간이 없어. 지금 빨리 우리가 분리하지 않으면 이 중생이 우리를 한번에 다 파악해버리고 말 거야. 그러면 우리는 더 이상 신비주의를 쓸 수 없어. 신비주의가 필요 없는 부처야 아무 상관없겠지만 몇몇 신비주의가 필수인 부처에게는 큰일날 일이잖아? 그러니까 우리 빨리 분리하자.”
비로자나불의 대답에 약사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부처들이 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비로자나불도 부처들의 난상토론에 합류했다. 웅성거림 중간중간에 ‘역마살’이란 단어가 튀어나왔다. 그렇게 1 겁의 시간이 흘렀다.
“만장일치로 분리하기로 결정되었습니다.”
비로자나불이 자리에서 일어나 분리를 선포했다. 겨우 만장일치가 이뤄진 것이다. 모두 흔쾌히 받아들인 건 아니었다. 부처 중에 과반수는 그저 찬성에 손을 들어줬을 뿐 여전히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었다.
그렇게 부처들은 분리의 수순을 밟았다. 아미타불은 저승까지 걸어가야 하는 일이 까마득히 느껴져 발걸음이 무거웠고, 석가모니불은 다시금 찢겨나가는 자신의 분신들에 가슴 아파했고, 미륵불은 자신이 출현할 수 있는 훗날까지 다시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에 우울해했고, 약사불은 헤어지는 것이 아쉬워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산 아래 중생구제병원으로 향했다. 비로자나불 혼자 밝은 표정이었다.
분리가 완전히 끝나고 다시 1 겁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비로자나불은 모든 부처가 합체해 있던 지난날을 회상하며 웃음을 머금고 문밖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가, 갑자기 설설 끓는 아궁이에 엉덩이라도 댄 것처럼 화들짝 놀라며 펄쩍 뛰었다. 그리고 자신이 본 것이 영 믿기지 않는 양 두 눈을 비비고 다시 바라보았다.
‘아이고, 부처님…… 왜 하필 제가 먼저입니까?’
틀림없이 역마살이었다. 역마살이 자신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비로자나불은 한숨을 내쉬었다. 앞으로 하루고 이틀이고 끈덕지게 들러붙어있을 역마살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하늘이 노래졌다.
역마살이 비로자나불을 가장 먼저 찾은 이유는 불빛 때문이었다.
‘저 불빛은 뭘까?’
역마살은 석가모니불을 찾아 대웅전으로 가던 길이었다. 그러다 밝게 빛나는 불빛 하나가 저 멀리 있었고, 그 불빛을 쫓아 한번 가보는 것뿐이었다. 비로자나불이 불교의 궁극적인 진리를 상징하는 법신불이다 보니 세상 어디에 있든 진리의 빛을 온 천하에 비출 수밖에 없는데, 그러다 보니 결국 아무 것도 모르는 역마살이 빛을 쫓아오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모든 것이 자업자득이요, 사필귀정이었다. 이제와 후회해본들 아무 소용이 없었다. 지금 당장 진리의 빛을 끈다 해도 역마살이 오던 길을 멈출 리 만무했다. 빛을 따라오던 역마살이 빛의 원천 대적광전 앞에서 걸음을 늦추며 현판을 보았다.
‘대…… 적…… 광…… 전…… 그러면 비로자나불?’
역마살은 계 탄 기분으로 대적광전을 향해 힘차게 걸어갔다. 그 때 비로자나불은 심호흡을 하며 숫자를 세고 있었다.
‘다섯…… 넷…… 셋…… 둘…… 하나…… (끼이익!)’
대적광전의 문이 열리고 역마살이 안으로 들어섰다. 드디어 올 것이 온 것이다.
“비로자나불님, 계신가요?”
비로자나불은 역마살을 편하디 편한 자세로 맞았다. 자신이 비로자나불이 아닌 한낱 한량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굳이 강조하기 위해서 화려한 법의 대신 평상복을 입고, 자세를 흩뜨려 옆으로 돌아앉은 후, 한쪽 다리를 굽혀 손으로 안고, 역마살을 향해 고개만 살짝 돌려서 맞았다. 한 마디로 표현해서 되지도 않는 거만과 무례를 담은 부처의 자세였다.
“비고 자는 부처는 없는데…… 뉘신지……?”
비로자나불은 짐짓 모른 척하고 물었다.
“혹시 비로자나불님 아니신가요?” / “아닌데요. 여기에 비고 자는 부처는 없어요.”
역마살이 갑자기 씨익 웃어 보였다. 비로자나불은 역마살의 웃음에서 단아한 친근함과 들킨 것 같은 불길함을 동시에 느꼈다.
“비로자나불님, 그렇게 앉아계셔도 다 표시 납니다. 전혀 껄렁하게 보이지 않고요, 비로자나불님과 그 주위에 부처의 얼굴, 보살의 얼굴, ‘佛’ 자가 만 오천 개나 도드라져 있어요. 왜 아닌 척하고 그러세요. 그러지 마시고 무지한 저를 좀 깨쳐주세요.”

비로자나불은 겸연쩍은 듯 헛기침을 한 번 하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러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열두 보살이 우르르 몰려나와 비로자나불과 역마살 사이를 가로지르며 앉았다. 열두 보살 모두 비로자나불을 보고 있었기에 역마살은 보살들의 등짝을 볼 수밖에 없었다. 열두 보살이 자리를 잡고 나자 이번에는 일반대중이 대적광전 안으로 우르르 몰려들어와 역마살의 앞, 뒤, 양 옆에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역마살도 대중의 틈에 끼어 자연스럽게 청중의 한 사람이 되었다.
다들 자리를 잡고 나자 드디어 비로자나불의 설법이 시작했다. 역시 부처님이었다. 부처님의 설법은 지장보살이나 관음보살이 갖고 있던 선지식과는 격이 달랐다. 함부로 때려잡고 쳐서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이렇듯 바른 자세로 앉아 가르침을 받은 후, 물 흐르듯 조용히 대적광전을 떠나야 하는 설법이었다. 역시 비로자나불이었다.
석가모니불은 자신의 생애를 돌아보았다.
‘고마우이, 역마살. 자네 덕분에 내가 이렇게 뒤를 돌아보는 날도 있구려.’
역마살을 계기로 자신의 피 끓던 지난날을 반추해보게 된 석가모니불이었다. 괴로움의 본질을 깨닫기 위해, 그리고 거기서 해탈을 구하기 위해 석가모니불은 모든 것을 버리고 출가했다. 바로 그 출가를 감행하던 날 아침을 회상하며 석가모니불은 뜨거운 눈물을 삼켰다.
“여보, 꼭 그렇게 떠나셔야 하나요?” / “아빠, 꼭 그렇게 떠나야 해?”
진정 나의 반쪽인 여우 같은 마누라와 눈알에 끼우고 다녀도 아프지 않을 귀여운 새끼들을 뒤에 두고 기약 없는 길을 떠나는 마음이 어찌 무겁지 않을 수 있을까? 갠지즈강(Ganges River)을 건너는 동안 눈물도 참 많이 흘렸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그렇게 보낸 세월들…….
“문수보살, 역마살이 기특하지 않나?”
석가모니불은 왼편에 서있는 문수보살에게 물었다. 문수보살은 최고의 지혜를 상징하는 보살이다.
“이처럼 불교를 깨치기 위해 난리인 중생이 다 있다니, 참으로 지혜롭습니다.”
“보현보살, 보살 생각은 어떠한가?”
석가모니불은 오른편에 서있는 보현보살에게도 똑같은 물음을 했다. 보현보살은 부처의 이(理), 정(定), 행(行)을 맡고 있는 보살이다.
“이치에는 맞지만 안정을 깨고 있고, 행동지수가 지나치게 높습니다.”
“그렇군. 그런데 만약 역마살이 오면 우리가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석가모니불은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 이에 지혜의 상징인 문수보살이 대답했다.
“오늘 오전에 500 나한의 대표로서 16 나한이 공양하기로 되어있습니다. 이들과 함께 역마살을 접견하시는 것이 어떠한지요. 나한의 면면을 직접 대면하는 것이 역마살에게도 깨달음에 이르는 지름길이 될 터이고, 석가모니불님께서 역마살과 일대일로 대적하시는 부담 또한 덜 수 있으니 일거양득인 것 같습니다.”
이에 석가모니불이 흡족해하며 대답했다.
“역시 문수보살의 지혜는 아무도 못 따라가.”

대적광전에서 설법 듣기를 마친 역마살은 다음 목적지인 대웅전을 향해 걸어갔다. 역마살이 대웅전 앞에 도착한 시각은 점심 무렵이었다. 역마살은 대웅전 앞에 줄 서있는 16 나한을 보고 17 번째에 섰다. 나한이란 불제자로서 수행 끝에 최고의 단계인 아라한과를 얻어 일체의 번뇌를 없애고 지혜를 얻은 성자를 말한다. 16 나한의 손에는 제각기 다른 공양물이 들려있었다. 이에 역마살은 자신의 빈손을 한번 쳐다보고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손바닥을 탈탈 털었다.
“왜 이렇게 기다리게 하는지 모르겠어.” / “그러게. 벌써 30 분이 지났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처음 오는 날 이렇네.” / “누가 아니래, 원원만존자.”
“조금만 더 기다려봄세, 세공양존자.” / “그러세.”
역마살 앞에 서있는 16 번째, 15 번째 나한이 나누는 대화가 역마살의 귀에까지 들어왔다.
16 나한은 평소와 달리 문이 굳게 닫혀있는 대웅전에 대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한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심각했다. 그러다 대웅전 안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드디어 문이 열렸다. 일순간 나한들의 표정이 밝아지고, 흐트러졌던 줄도 다시 곧아졌다. 지금껏 대웅전의 문이 열리지 않은 이유가 자신의 뒤에 있는 역마살 때문이란 사실을 16 나한은 모르고 있었다. 물론 역마살도 모르고 있었다.
역마살은 16 나한과 함께 대웅전 안으로 들어갔다. 16 나한은 대웅전에 들어가자마자 제일 먼저 석가모니불 앞으로 나아가 공양물부터 바치고 자리에 가서 앉았다. 16 번째 나한 후 역마살 차례가 됐다. 역마살은 빈손으로 나아가 절만 하고 눈치껏 자리를 찾아 앉았다. 16 나한은 역마살을 힐끔힐끔 곁눈질하다가 자기들끼리 눈을 맞추며 무언의 대화를 나눴다.
‘누구야?’ / ‘몰라.’ / ‘누구지? 누구 아는 나한 없어?’ / ‘전혀 모르겠는데?’ / ‘아까 내 뒤에 서있었어. 우리랑 같이 들어올 거라곤 생각지 못했는데…….’ / ‘누구지?’ / ……
혼란스러워하는 16 나한과 달리 석가모니불, 문수보살, 보현보살, 역마살의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안온했다. 이 둘 간의 대비로 대웅전이 양분된 느낌마저 들었다. 잠시 후, 석가모니불이 16 나한 중에 첫 번째 나한인 빈도로존자를 호명했다.
석가모니불 : “비도로존자, 그래 그 동안 별일 없었는가?”
빈도로존자 : “예, 별일 없었습니다.”
석가모니불 : “못 보던 나한이 보이는데?”
빈도로존자 : “329 원상주존자, 427 원원만존자, 464 세공양존자가 굳이 온다고 해서…….”
석가모니불 : “그래? 지겹다고 오기 싫어하는 나한도 있다던데 기특하구나.”
빈도로존자 : “그런데 17 번째 저 중생은 도대체 누구…….”
석가모니불 : “역마살이다. 더 이상 알면 다친다. 자, 수업을 시작하자.”
석가모니불의 설법이 시작됐다. 그렇게 역마살은 석가모니불로부터도 설법을 들을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