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영의 인천시청 입단. 흔하지 않은 한국의 미디어 데이.
인천시청 복싱팀에 입단한 이시영 선수의 성공과 긍정적인 인식의 확산을 기원하며

 

 

탤런트 이시영이 인천시청 복싱팀에 정식으로 합류했다.

2013년 1월 마지막 날 오전에 탤런트 이시영이 인천시청에서 송영길 인천시장과 함께 공식 입단식을 치렀다.

입단식 후 시청 로비에서 짧으나마 미디어 타임도 가졌다.

탤런트 이시영의 공식 입단 소식이 주는 신선한 충격 덕분인지 언론사 기자들의 취재 경쟁도 뜨거웠다. 한국에서는 흔하지 않은 미디어 데이 행사였다.

 

다소 긴장된 표정과 수줍은 미소로 포토타임을 갖는 이시영의 모습은 연예인의 그것이 아니라 새롭게 데뷔한 운동선수의 그것 같았다.

매우 조심스러우면서도 당찬 각오가 느껴지는 이시영의 마음가짐을 보면서,

그녀의 도전에 큰 박수를 보냈고 또 그녀가 멋진 도전을 통해 좋은 성과도 함께 얻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도 가져 본다.

 

물론, 그녀가 평범한 일반 운동선수였다면 그녀의 정식 입단은 큰 이슈거리가 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시영이 연예인이라는 것 외에도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많다.

우선 이시영의 도전 종목이 복싱이라는 점이 그렇다.

또 그녀가 이미 서른을 넘어 서 운동선수로는 환갑에 가까운 나이라는 점도 특이하다.

여성이라는 점도 당연히 빼놓을 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자체 실업팀에 정식 입단했다는 점이다.

 

 

1. 대한민국에서 여자 연예인으로 산다는 것.

 

대한민국 연예계의 대중은 모순적이다.

특히나 여성 연예인에게는 더욱 더 그렇다.

배우가 아닌 가수나 심지어 개그맨에게까지도 외모를 요구한다.

이제는 운동선수에게도 요구한다.

아니 모니터에 등장하는 모든 여성에게 나이를 불문하고 외모를 원한다.

세부 분야를 막론하고 얼짱이나 몸짱이 아니면 웬만해서는 시선이 쏠리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수술이나 시술을 통한 외모에 대해서는 가혹하고 폄하하기 일쑤다.

외모로 인기를 얻었다고 하더라도 외모에 대해서 식상해지기 시작할 시점이 되면

연기를 못한다고,

노래를 못한다고,

웃기지 않다고 비난한다.

것도 모자라 성직자 수준의 사생활과 몸가짐까지 요구한다.

이제는 학벌과 인격까지 거론한다.

사람이 아니라 거의 여신이 되어야 할 정도다.

 

도가 지나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이런 대중의 변덕과 까탈을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연예인이라는 의미의 영단어 엔터테이너(Entertainer)의 원래 의미는 ‘즐겁게 해주는 사람’이라는 의미다.

대중들은 즐거움을 원할 뿐이다.

즐거움의 코드에 부합한다면 어떻게 해서든 누리고 또 씹어대기 마련이다.

연예계도 우리 사회의 축소판 중 하나이기 때문에 사회의 부조리를 반영하는 점도 어쩔 수 없다.

 

어쨌거나 이런 외모 지상주의가 판치고 우리 사회 도처에 깔린 망국적인 벌(伐) 문화까지 응집된 연예계에서 이시영의 도전과 변신은 매우 신선하고 칭찬할 만하다.

물론 그녀도 기본적으로 연예인이기 때문에 대중의 관심과 좋은 평가를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시영 역시 다른 연예인들처럼 ‘외모 관리’를 위해 복싱을 시작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쨌든 그녀는 연예인으로서 몸매가 좋은 몸짱이 아니라 운동 실력을 갖춘 진짜 몸짱이 되는 길을 택했다.

또 운동을 통해 대중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엔터테이너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이미지를 생명으로 여기는 한국의 여자 연예인으로서는 굉장한 모험이다.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면 치명타가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대중의 시선은 지금으로서는 매우 호의적이다.

이시영을 향한 이러한 호의적 시선에 대해 그 누구보다 여성 연예인들 스스로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이시영의 선택이 연예계에 던져준 의미를 여성 연예인들 스스로 한 번쯤은 진지하게 돌아봐야 한다는 말이다.

대중이 원한다는 핑계로 스스로가 소모적인 무한 외모 경쟁을 벌이는 지금의 세태는 여성 연예인의 입지를 위축시키고 생명력을 갉아먹고 있다.

 

 

2. 차범근의 흔한 팬미팅과 이시영의 낯선 미디어 데이.

 

독일 교통의 관문 프랑크푸르트에서 있었던 차붐(차범근)의 리멤브런스(Remembrance) 행사에 엄청난 인파가 몰려 화제가 되었다.

대부분의 언론들이 ‘독일의 흔한 팬미팅’을 역설적 표현이라고 썼지만 이것은 상당부분 오해다.

차붐의 위대함이라는 관점에서는 ‘독일의 흔한 팬미팅’이라는 표현이 역설적인 표현이겠지만,

스포츠를 사랑하고 즐기는 독일의 문화적 관점에서는 이 표현이 전혀 역설적이지 않다.

 

훌륭한 스포츠맨이 있다면 종목, 국적, 나이, 성별을 불문하고 사랑하고 존경하는 독일의 스포츠 문화를 차붐 팬미팅이 잘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독일은 엘리트 스포츠나 프로스포츠 분야에서는 다소 주춤하고 있지만 여전히 세계 최고의 생활 체육 국가다.

프로스포츠에서 조차도 ‘열정’과 ‘즐거움’을 최우선으로 하는 그들에게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 바로 아마추어 스포츠 정신이다.

 

이번 이시영의 미디어 데이는 대한민국에서는 흔하지 않은 풍경이다.

아니 거의 없는 사건이다.

엄격한 의미에서 대한민국의 스포츠 시스템에는 프로 스포츠나 아마추어 스포츠가 존재하지 않는다. 프로 스포츠는 대부분 기업이나 지자체의 일방적인 후원(Sponsorship)을 받고 있다.

프로 스포츠단 대부분이 대기업 소유다.

그리고 프로팀이나 후원 선수를 보유한 대기업의 목적이란 것도 프로 스포츠의 궁극적 목적인 수익 창출이 아니라 기업 홍보다.

 

소위 한국식 아마추어 스포츠의 현실도 다르지 않다.

대부분의 선수가 실업팀이나 지자체 소속이다. 아마추어 스포츠 팀의 목적도 프로팀과 별반 다르지 않다.

국제 대회나 국내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어 국가나 지역, 기업의 이미지를 높이고 홍보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그러다 보니 학원 스포츠 역시 ‘돈벌이를 위한 스포츠’와 ‘대학 진학을 위한 스포츠’의 준비 단계로 전락했다.

 

이번 대한축구협회의 협회장 선거는 대한민국 스포츠의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대한축구협회는 프로축구연맹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대기업 회장을 뽑았다.

매번 그랬다.

항상 정치인이 아니면 대기업 회장을 원한다.

어디에도 운동선수 출신을 위한 자리는 없다.

스포츠정신이 없는 스포츠만 남은 것이다.

그러는 사이 대한민국에서 순수한 의미의 아마추어 스포츠와 생활 체육은 존재 자체를 잃어버렸다.

 

아마추어 스포츠의 핵심은 ‘주된 직업이 운동이 아니라는 점’과 ‘운동의 목적이 돈벌이에 있지 않다’는 점이다.

학교 운동장이나 경기장에서 뛰어노는 남녀노소가 사라지고 있다는 점과 생활체육 단체들도 스폰서를 구하고 대회에 나가 주목을 받을 궁리만 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한민국에서 아마추어 스포츠와 생활체육은 이미 사라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시영의 도전은 아마추어 스포츠의 의미와 현실을 다시금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물론 이시영 역시 국제 대회와 국내 대회 출전을 위해 인천시청이라는 소속팀의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나라 아마추어 스포츠의 한계일 뿐이지 이시영의 잘못은 아니다.

이시영의 도전은 최소한 ‘그녀의 주된 직업이 연예인’이라는 점과 ‘돈벌이를 위해 복싱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아마추어리즘이다.

 


3. 헝그리 정신의 부활은 있다? 없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권투를 좋아하지 않는다.

초등학교 시절 친구와 재미삼아 권투를 하다가 얻어맞은 복싱 글러브의 충격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순수 격투기도 그리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종격투기는 더욱 더 싫다.

최근 대중들의 인기를 얻고 있는 ‘이종격투기’라는 어감 자체가 매우 거부감을 준다.

‘이종’라는 말에서 ‘변형’이나 ‘퓨전’, ‘창의’의 의미보다는 ‘변태’, ‘도박’, ‘폭력성’의 맛을 더 많이 느끼게 된다.

하지만 내가 싫다고 해서 ‘격투기’가 보여주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성찰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

격투기는 ‘인간이 두려움에 맞서는 방식이 도전 정신으로 승화된 스포츠’다.

 

사실 복싱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랜 스포츠다.

복싱은 고대 문명 단계부터 존재했고 고대 그리스의 올림피아드 시절부터 핵심 종목이었다.

그러니 아무리 인기가 사그라졌다 해도 올림픽에서 퇴출되기는 힘들다.

우리나라에서도 한 때 대단한 인기를 구가하던 스포츠다.

홍수환부터 시작해서 문성길, 유명우, 장정구 같은 기라성 같은 인물들을 배출했다.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에서는 12개의 금메달 전부를 석권한 믿기 힘든 기록도 갖고 있다.

 

2012년 런던올림픽 복싱 라이트급에서 한순철이 은메달 신화를 이루면서 주춤하던 인기도 다시 불씨를 살리고 있다.

하지만 복싱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쇠퇴하고 있는 현실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

이시영인 복싱 선수로 지금과 같은 주목을 받게 된 것은 그녀가 연예인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좋은 성적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복싱이 인기스포츠였다면 그녀가 지금의 나이와 경력으로 좋은 성적을 거둔다는 것이 불가능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최근 들어 유독 복싱에서 순수 아마추어 선수들의 두각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것이 ‘복싱의 인기 없음’에서 상당부분 연유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아마추어 선수들의 ‘도전 정신’까지 폄훼하고 싶지는 않다.

이시영의 이번 인천시청 입단 역시 그녀의 도전 정신에 더 후한 점수를 주어야 한다.

 

많은 인기를 누려 시리즈로 제작된 할리우드 영화 가운데 ‘록키’를 빼놓을 수 없다.

스포츠 영화로는 사실 상 최고의 반열에 올려 놓을 수밖에 없다.

영화 ‘록키’의 감동은 역시나 ‘헝그리 정신’에서 비롯된다.

 헝그리 정신이라고 하면 한국에서는 ‘배고픔’과 ‘가난의 설움’을 이기려는 악착같음을 생각하지만,

사실 헝그리 정신의 핵심은 만족과 안주를 거부하는 도전 정신이다.

2002년 월드컵에서 히딩크 감독이 말한 ‘나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는 말도 탐욕스런 근성이 아니라 도전 정신의 표현이었다.

 

그러니 복싱의 부활이 ‘폭력의 유희화’나 ‘도박 산업으로의 회귀’가 아니라 ‘도전 정신의 확대’ 덕분이라고 한다면 충분히 환영하고 즐거울 일이다.

우리 사회에 도전 정신을 가진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이러한 도전 정신의 표출 방식으로 권투를 즐기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정말로 행복한 일이다.

그리고 이시영의 도전이 이러한 멋진 분출의 시발점이 되길 바란다.

 


4. 한국 여성 스포르탄(Sportan)의 힘을 찾아서.

 

요즘 언론의 스포츠 기사들이 실망스런 점은 스포츠 소식 그 자체보다는 젯밥에 관심이 많다는 것이다. 특히 여자 스포츠 분야가 심하다.

메인을 차지하는 기사의 상당 부분이라는 것이 ‘얼짱 선수’, ‘섹시 치어리더’, ‘얼짱 아나운서와 리포터’다.

이제는 하다하다 ‘얼짱 통역’까지 뜬다.

물론 황색언론의 잘못이 제일 크다.

대중의 그릇된 관심도 거들고 있다.

 

그런데 한국 여성 스포츠의 쇠퇴를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요즘은 여자 선수들이 경기에 나설 때도 외모에 지나치게 신경을 쓴다.

물론 외모 때문에 주목 받고 있는 선수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관심과 인기는 결코 오래 갈 수 없다.

실력이 있어서 외모도 함께 인정 받는 경우라야 마땅하다.

사실 김연아나 김연경, 이상화 선수의 외모에 대한 관심은 실력에서 비롯된 것이다.

 

스포츠에 대한 관심은 스포츠 선수들의 실력과 경쟁에서 비롯되는 것이 맞다.

선수의 외모가 스포츠에 대한 관심을 높여준다는 생각은 아주 크고 그릇된 오해다.

왜 농구나 배구, 그 중에서도 여자 농구나 여자 배구 경기에서 선수보다도 치어리더나 통역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지 고민해 봐야 한다.

점점 더 많은 얼짱 몸짱 선수가 배출되는 여자 골프가 왜 오히려 쇠퇴하고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박세리가 미모의 선수가 아니어도 우리는 그녀를 충분히 사랑하고 존경한다.

두 번째 도전에서 아쉽게 바벨을 내려놓아야 했던 장미란을 그 누구도 비난하지 않았으며 대중들은 그녀를 로즈란이라고 까지 부른다.

주영의 기도 세리머니는 비난받아도 장미란의 그것은 그 누구도 비난하지 않는다.

 

한국 여성 스포르탄(Sportan 스포츠 전사라는 의미)들은 한국 여성의 위대함과 희생 정신을 보여주는 산 증인이었다.

열악한 환경에서 차별받고 고통받으면서도 한국의 여성들은 묵묵히 도전하고 극복하고 이겼다.

우리 사회에서 이런 훌륭한 여성 스포르탄들이 점점 사라지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리고 그 스포르탄이 사라진 자리를 여성 치어리더들이 대신하고 있다.

 

이번 이시영의 도전이 우리나라 여성 스포르탄들에게 긍정적인 자극과 분발을 촉구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역시나 실력보다는 얼굴이구나’ 하는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지 않았으면 한다.

‘나이 많은 보통 여성도 스포츠 분야에서 도전을 하니 뒤늦게라도 좋은 성과를 낼 수 있구나’ 하는 긍정적인 마인드가 확산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글쓴날 : [13-02-01 12:36] 김세호기자[saengtaeng@pb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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